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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강국 티켓' 누리호, 개발해 놓고 창고서 썩히나?[과학을읽다]

김봉수 입력 2021. 07. 04. 10:51 수정 2021. 07. 0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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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병 도진 한국 우주개발 정책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첫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개발 사업이 주춤하고 있습니다. 일단 '최소 성능'은 확보한 초기 모델이 오는 10월 처음으로 우주로 날아 오를 계획이지만, 본격적으로 우주 개발에 써먹을 정도의 고성능으로 개량하는 작업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대로라면 소형 위성 몇개를 저궤도에 올리는 역할 밖에 못 합니다. 개발해 놓고도 창고에 썩히면서 2030년 예정된 한국 첫 달 착륙선 수송, 고성능ㆍ고궤도 위성 발사 등 자체 수요도 제대로 소화할 수 없습니다. 누리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개량사업 좌초 위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마무리된 누리호 사업 관련 예산안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에서 1조5000억원 가량의 성능 개선 사업 몫을 전액 삭감했습니다. 다만 '반복 발사', 즉 내년 이후 2026년까지 현재와 성능이 똑같은 발사체 4개를 더 제작해 쏘라고 약 6000억원의 예산을 통과시켰습니다.

누리호는 한국의 독자 기술로 개발한 첫 우주 발사체입니다. 쉬운 일이 아니었죠. 다른 나라들이 절대 기술 이전을 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2013년 성공한 나로호 발사 때도 미국ㆍ일본 등 우방들에게서 기술을 이전받으려고 했지만 외면 당해 결국 러시아의 엔진을 수입해 쓰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독한 마음 먹고 혼자 시작할 수 밖에 없었죠.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연구자들과 국내 산업체 기술자들은 엔진과 연료통, 페어링 등 모든 부품을 설계, 가공하면서 백지 상태에서 출발했습니다. 2014년 75t 규모 엔진이 연소 불안정으로 문제를 일으키면서 16개월간 설계를 바꾸는 등 '생고생'을 했고, 겨우 그 문제를 바로 잡았습니다. 100리터의 연료를 단 1초에 완전 연소시켜 출력을 내는 고성능 엔진을 개발 경험이 전혀 없는 연구자들이 외부의 노하우 전수 없이 단번에 뚝딱 만들어 낼 수는 없겠죠.

두께가 겨우 2mm에 불과한 특수 알루미늄합금을 용접해 연료통과 본체를 만드는 일도 처음 도전하는 분야라 정말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1단부에 75t짜리 엔진 4개를 묶어야 하는 데 이 과정에서 설계가 문제가 돼 통째로 재제작에 들어가는 바람에 발사 일정 자체가 연기되는 등 차질을 빚기도 했죠.

◆ 성능 한계, 개량 필수

이렇게 우여 곡절 끝에 지난달 1일 마침내 1단, 2단, 3단부가 모두 조립된 완성체 인증모델이 선보였고, 발사체에 기립 시험을 마쳤습니다. 이제 실제 비행모델이 오는 10월20일께 발사되는 일만 남았습니다. 다만 이때는 모형 탑재체만 실리고, 내년 5월 두번째 발사때에만 실제 위성인 차세대 중형위성 2호를 궤도에 올리는 실질 임무를 수행합니다.

문제는 성능ㆍ기술에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누리호는 75t 추력을 내는 엔진 4개를 묶은 1단부, 75t짜리 1개로 된 2단부, 7t짜리 3단부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추력이 300t에 불과해 지상 500km의 저궤도에 1.5t의 위성을 쏠 수 있는 성능 밖에 되지 않습니다. 연료도 오염 물질이 많이 나오고 재활용에 불리한 케로신(등유)을 쓰고, 연소 방식도 1950년대 개발된 개방형 가스발생기 사이클 방식을 써 연료 효율ㆍ압력이 떨어집니다. 최근 우주 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 스페이스X, 블루오리진 등이 개발하고 있는 최첨단 로켓들이 청정ㆍ고효율 액체메탄을 연료로 쓰고 연소 방식도 고효율ㆍ고압력의 폐쇄형 다단연소방식을 쓰는 것에 비하면 사실 '초보' 수준인 게 맞습니다.

따라서 본격적인 우주 개발을 위해선 좀더 용량이 크고 성능이 좋은 엔진과 발사체 개발이 필수입니다. KARI와 과기정통부는 이에 따라 1조5000억원을 들여 향후 5년간 현재 개발 완료단계인 다단연소 방식 엔진의 적용을 통해 최고 도달 고도를 700km 이상으로 높이고 화물 적재량도 2.8t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 1차 관문 통과 못해

그러나 이 계획은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는 500억원이 넘는 사업(국비 300억원)들은 국회 제출 전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치도록 돼 있는 데, 1차 관문을 넘어서지도 못한 겁니다. 앞으로 최소 1~2년간 관련 연구기관ㆍ민간업체들의 연구개발(R&D) 전문 인력들은 손을 놓고 있을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인력 유출과 기술 사장이 우려되는 것은 당연하죠. 고질병이 도진 것이었습니다. 여론에 민감한 예타 제도가 장기적ㆍ안정적 투자가 필수 불가결한 우주 개발 투자를 좌우하면 안 됩니다.

전문가들은 실패할 가능성도 있는 우주 기술 R&D의 특성상 핵심 기술들은 예타를 거치지 않고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또 성과주의식 예산 제도(PBS)를 폐지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구 풍토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외풍 등 '고질병' 또 도졌다

안타까운 것은 누리호 개량 사업의 좌절에 '외풍'이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반대표를 던진 예타 심사위원들은 '불확실성'을 가장 우려했다고 합니다. 즉 오는 10월과 내년 5월 발사가 실패할지도 모르는 데, 벌써 개량 사업을 검토할 수는 없지 않냐는 지적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벤트의 실패와 관계없이 꾸준히 R&D를 지속해야 나중에라도 성과가 나오는 연구 현장을 전혀 모르고 하는 비전문적인 의견입니다. 다들 비전문가들이 아닌데도 왜 이런 얘기가 나왔을까요?

아마 내년 3월 대선을 염두해 둔 심사위원들이 있었던가 봅니다. 대선을 앞두고 2조원대 예산안을 처리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수 있죠. 차기 대통령이 당장 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우주개발보다는 코로나19 피해 복구에 집중하자고 나서는 게 어찌보면 가장 큰 '불확실성'입니다. 또 다른 우주 개발의 큰 축인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구축을 위한 4조원대 예산안이 얼마전 예타를 통과했다는 것도 악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입니다. 한꺼번에 우주 분야에서 너무 큰 지출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죠. 국회 통과에서 불리한 대목이라 KPS라도 살리려면 누리호를 죽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이 우주강국들이 경쟁하는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로 가는 '입장권'으로 여겨지는 누리호의 앞날도 '사공이 너무 많아' 구름이 낀 것 같네요. 조만간 고성능 로켓으로 개조된 누리호가 한반도의 맑은 하늘을 뚫고 달이나 화성까지 한국인들의 발자욱을 남길 수 있는 그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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