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당시 일본군 34만명, 그들에겐 미군이 점령군"

유석재 기자 2021. 7. 6.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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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정치학회장 심지연, 이재명의 '美점령군' 주장 반박
2020년 12월7일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가 본지를 찾아 인터뷰하고 있다. /이태경기자

1945년 광복 당시 남북한에 진주한 미군은 과연 ‘점령군’이고 소련군은 ‘해방군’이었나. 정치권을 중심으로 불거진 역사 논쟁은 당시 미군과 소련군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에서 시작됐다. 한국정치학회장과 국회입법조사처장을 지냈으며 ‘해방정국의 정치이념과 노선’ 등 저서를 낸 심지연(73) 경남대 명예교수는 “점령이라는 단어에는 오해의 소지가 많고, 더구나 미군을 점령군, 소련을 해방군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과 소련군이 ‘점령군’이었다는 것은 맞지 않나?

“점령군이라는 것은 A라는 한 국가의 군대가 B라는 다른 국가를 불법적으로, 또는 물리적으로 지배하고 있을 때 B의 입장에서 A의 군대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그러나 한국현대사에서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많다. 1945년 당시 한반도에는 국제적으로 승인된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한반도는 일본이 주권을 행사하는 식민지였으며 일본군과 대항하는 무장 투쟁 세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반도의 일본군 때문에 점령이 필요했다는 것인가.

“맞는다. 1945년 8월 한반도에 주둔한 일본군은 34만7000여명이었고, 이 중 남한에 23만명이 있었다. 이 일본군의 항복을 받고 무장을 해제하려면 연합군이 한반도를 물리적으로 점령해야 했다. 이런 정황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점령군이나 해방군으로 단정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 해석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일본군의 입장에서 볼 때 ‘점령군’이라는 뜻인가?

“그렇다. 미군과 소련군은 일본군을 점령하려 온 것이지 한국민을 점령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점령군’과 ‘해방군’은 사실 동전의 양면이다. 미·소 모두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점령’이란 의미에서 ‘점령군’이며, ‘일본의 식민 통치에서 한민족을 해방했다’는 점에선 동시에 ‘해방군’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군은 점령군'이라고 했던 이재명 경기지사는 비판을 받자 ‘미군과 소련군 모두 점령군’이라고 했다.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일본군의 입장에서 미군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비판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소 양쪽의 포고문을 비교하며 점령군이냐 해방군이냐를 따지는 경우도 있다.

“포고문 한 장만 가지고 그런 논의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외국군이 진주한 이후 그 지역 주민들이 과거 식민 통치 아래 억압받던 자유를 얼마나 누렸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집회·결사의 자유라는 면에서 보면 소 군정은 공산 계열 정당·노동조합만 허가한 반면, 미 군정은 공산당까지 포함한 모든 정당, 단체를 허가했다.”

―이재명 지사는 ‘친일 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 체제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 세력과 결탁해 벌인 일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이 참여한 선거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유연하게 보완해 나갈 수 있는 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했기 때문에 지금 남북한의 체제가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여권의 ‘색깔론’ 주장은 어떻게 보나.

“여당의 대선 유력 주자가 한쪽으로 치우친 역사 해석을 내놓은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색깔론으로 폄훼하는 것은 지나치다. 철 지난 이념 사관을 먼저 제기한 쪽이 누군가. ‘색깔론’을 말함으로써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민주화 운동가를 ‘용공’으로 몰았던 일을 연상시키며 자신이 부당하게 핍박받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래지향적인 화합과 발전을 이야기해야 할 시점에서 돌연 76년 전의 과거로 회귀한 셈이다. 이념적인 대립 구도를 만들려는 모습을 보고 지금 젊은 세대가 공감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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