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버린 국민인가" 한인 500명 감염, 인니에선 무슨 일이

고찬유 2021. 7. 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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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새 한인 코로나 500명, 사망 5명 
델타 변이 확산, 느슨해진 방역도 한몫 
부정확한 안티젠 검사 맹신도 버려야 
전세기 편성, 백신 접종, 산소 확보 총력
지난달 27일 인도네시아 동부자바주 수라바야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 앞에 마련된 매트리스에 환자들이 누워 있다. 동부자바한인회 제공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확산으로 혼란과 위급에 빠졌다. 최근 한 달 새 한인 감염자만 500명대로 추산되고, 신고된 사망자만 5명에 이른다. 공관에 대한 불만도 누적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6일 기준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에 신고된 코로나19 확진 한인은 최근 한 달 100명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뒤 확진 판정을 받은 한인은 약 300명이다. 사태 초기인 지난해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15개월간 신고 인원이 총 124명인 걸 감안하면 뚜렷한 급증세다. 여기에 미신고 인원 등을 감안하면 총 감염자는 한 달 새 적어도 5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인도네시아에는 약 2만 명의 한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0명 중 최소 2.5명이 감염된 셈이다.

6월부터 7월 5일까지 인도네시아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추이. 인도네시아 정부

가장 큰 이유는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인도네시아의 코로나19 2차 확산이다. 올해 1월 30일 1만4,518명으로 최고치를 찍은 뒤 5,000~6,000명 선으로 떨어졌던 인도네시아의 일일 확진자 숫자는 6월 말부터 연일 기록을 경신하며 3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전파력이 높은 델타(인도) 변이가 주범으로 지목된다. 생산 현장 등 상대적으로 현지인과 접촉이 많은 한인들도 그 영향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병상 및 설비 부족 등 열악한 이 땅의 의료 현실도 안타깝다.

정확도가 떨어지는 검사 결과를 맹신하는 분위기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시간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널리 이용되는 항원(안티젠) 검사의 음성 결과만 믿고 증상이 있는데도 버틴다는 것이다. 자카르타 거주 한인 의사는 "안티젠 음성이 나오면 코로나19 감염이 아니라며 미열 등 증상을 감기 정도로 여기다 폐렴 같은 중증으로 악화하거나 부지불식간에 다른 사람을 전염시키는 사례가 꽤 많다"며 "안티젠 검사가 음성이더라도 조금이라도 증상이 있으면 반드시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해야 하고,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사관도 '증상이 있으면 조기에 PCR 검사를 받으라'고 공지하고 있다.

그간 느슨해진 개인 방역 관리도 이유로 꼽힌다. 교민 대부분 방역 관리에 충실했으나 올 들어 상사가 회식을 주재하고, 한국에서 온 출장자들을 접대하고, 항공편으로 여행을 다니고, 지인끼리 거리낌없이 만나는 등 일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도 일부 감지됐다. 결국 남 탓에 앞서 자신과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지난달 1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한 보건소에서 주민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상황이 악화하자 한인들의 불만은 대사관 등으로 향하고 있다. 백신 접종 방법 및 장소 공지, 코로나19 대처 방안이 더디고 무성의하다는 것이다. PCR 음성 결과지가 없으면 귀국 비행기를 탈 수 없고, 백신 접종 격리 면제 대상국에서 인도네시아가 제외됐다는 우리나라 정부 정책과 백신 접종 증명서가 없으면 이날부터 입국이 금지된다는 인도네시아 정부 방침이 알려지자 "대사관은 뭘 하나" "우리가 왜 백신을 구걸해야 하나" "우리는 버린 국민이냐"는 원성이 비등하다.

대사관 관계자는 "수시로 바뀌는 접종 장소와 인도네시아 정부 방침을 정확히 확인하느라 뒤늦게 공지를 할 수밖에 없었고, 입국 절차 강화는 타인을 위한 방역 정상화로 이해해달라"며 "답답하고 억울한 교민들의 불만과 제안을 무겁게 받아들여 가용 인력을 최대한 동원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대사관은 인도네시아 입국 시 백신 접종 증명서 제출 대상에서 미성년 가족은 제외해달라는 요청 등을 인도네시아 정부에, 인도네시아로 출국하는 교민에 대해 한 번에 완료되는 백신을 우선 접종해달라는 건의 등을 한국 정부에 한 상태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시민들이 의료용 산소통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산소통 가격은 최근 3배 가까이 올랐다. 드틱닷컴 캡처

자카르타에 있는 재인도네시아한인회는 대사관과 협력해 코로나19 경증 환자용 전세기 추가 편성, 백신 접종 희망자 수요 조사, 의료용 산소 및 산소발생기와 병상 확보 등에 나섰다. 박재한 회장은 "대사관에서 인도네시아 정부와 협의 등 사전 작업을 해준 덕분에 가능한 일"이라며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1차 확산 때처럼 교민들의 지혜를 모아 최대한 준비해 슬기롭게 위기를 헤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수라바야에 있는 동부자바한인회 이경윤 회장은 "중증 교민을 위한 병상을 얻기 위해 병원을 돌아다니며 사정하고 응급실 앞에 대기하기도 한다"고 했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누군가는 애쓰고 있다. 우리의 적은 사람이 아니라 바이러스다. 분노는 답이 아니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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