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조선업이 일깨워준 위기와 기회

한겨레 2021. 7. 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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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세계는 지금 l 함부르크
코로나19로 인한 크루즈 산업의 침체로 독일 대형 조선소들이 동시다발로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 항만의 전경. KOTRA 함부르크무역관 제공

2020년은 대한민국이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2018년 이후 2년 만에 전세계 선박수주량 1위를 되찾은 뜻깊은 한 해였다. 영국의 글로벌 해운·조선산업 분석기업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세계 선박발주량 1924만CGT(738척) 중 약 43%인 819만CGT(187척)를 수주해 2위 중국(793만CGT, 353척), 3위 일본(137만CGT, 86척)을 앞질렀다. CGT(표준선환산톤수)는 선종과 선형의 난이도에 따라 건조 때의 공사량을 동일 지표로 평가하기 위한 방법으로, 총톤수에 환산계수를 곱해 나온 톤수를 가리킨다.

한국의 수주 경주는 2021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2021년 1분기 한국의 조선업 수주량은 전년 동기 대비 923% 증가한 532만CGT로 세계 수주량의 약 52%를 차지했으며, 수주액도 전년 동기 대비 약 750% 증가한 119억달러(약 13조2800억원)를 기록했다. 물론 이 수치에는 2020년 1분기 글로벌 조선업 수주량이 코로나19 창궐로 급감한 데 따른 기저효과가 반영됐다. 하지만 2021년 1분기 수주량이 코로나19 위기 전인 2019년 1분기보다 2.5배 이상 급증한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수주 측면에서 한국 조선업은 회복세를 보인다. 과연 한국 조선업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 불황의 터널을 지나 다시 호황을 맞이할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한-독 조선업계 엇갈린 희비

 반면 독일 조선업계에서 감지되는 분위기는 180도 다르다. 코로나19 위기에서 독일 대형 조선소들이 동시다발로 구조조정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1795년 설립된 독일 최대 조선소 마이어베르프트(Mayer Werft)는 코로나19로 인한 수주 급감 속에 2020년 5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 회사는 크루즈 산업의 침체로 2020년 7월과 12월에 생산을 일부 중단했고,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총노동자 약 7천 명 중 절반에 해당하는 3500명을 대상으로 연말까지 단축근무제(Kurzarbeit·단축된 노동시간만큼 줄어든 노동자의 급여 일부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제도)를 시행했다.

감염병 대유행 속에 선사들의 선박 인수 지연도 뒤따랐다. 영국 선사 피앤드오(P&O)는 마이어베르프트가 건조한 8억유로(약 1조853억원) 상당의 특급 크루즈선 아이오나호(IONA) 인수를 기존의 2020년 5월에서 10월로 늦췄다. 마이어베르프트가 향후 약 5년간 13억유로를 절감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면서 이 회사가 있는 니더작센주 정부는 총 2천만유로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2020년 11월부터 연이은 백신 소식에 2021년을 희망차게 시작했지만 장기화하는 팬데믹 속에 크루즈 산업의 빠른 회복은 불가능했다. 해당 조선사는 기존 단축근무를 다시 2021년 6월 말까지 연장했고 총노동자 수의 약 25% 수준인 1800명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2021년 3월에는 자사가 개조한 미국 크루즈 선사 로열캐리비안(Royal Caribbean) 소속 크루즈선 오디세이호가 이스라엘로 출항했으나, 선원 2명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출항 직후 발이 묶이기도 했다.

비단 마이어베르프트뿐만 아니라 MV조선소, FSG조선소, 블롬플루스포스(Blohm+Voss) 등 북독일 지역 대표 조선소들이 공통으로 코로나19발 구조조정 위기에 처했다는 점은 그 심각성을 일깨워준다. 2021년 4월에는 세계적 슈퍼요트 제조사 노비스크루크조선소(Nobiskrug Werft)도 파산을 신청해 새 투자자를 물색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조선업’이란 동일 업종에서 한국과 독일 사이에 왜 이런 온도차가 나타날까? 그 해답은 양국 조선업의 ‘고객’, 다시 말해 전방산업(선박 수요 산업)이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업의 전방산업은 해운업인데 해운 선사가 주요 고객이다. 따라서 한국 조선소의 사업 포트폴리오도 컨테이너선, 유조선, 벌크선 등 화물선이 중심을 이룬다. 반면 독일 조선업계는 레저산업에 속한 크루즈 선사를 주요 고객으로 두고 크루즈선, 페리, 요트 등을 집중적으로 건조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전통적인 선박 수요 산업인 해운업에, 독일은 조선업의 틈새시장인 레저산업에 특화된 것이다.

한국 조선업은 코로나19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은 글로벌 해운업의 호황을 함께 누리고 있다. 글로벌 해운선사들이 2020년 상반기 코로나19로 물류 수요가 줄어들 것에 대비해 운항을 축소했으나, 하반기부터 글로벌 수요가 회복되자 오히려 상황이 역전돼 선박 공급이 부족한 현상이 심화됐다. 그 결과 세계 컨테이너 운임지수(WCI)는 2020년 5월28일 기준 1575.97달러/FEU(40피트 컨테이너)에서 약 1년이 지난 2021년 5월27일 기준 6256.94달러/FEU로 4배 가까이 오르며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020년 초 1천달러/TEU(20피트 컨테이너) 수준에서 형성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도 2021년 5월28일 기준 3495.76달러/TEU(20피트 컨테이너)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HMM, 덴마크의 머스크라인, 독일의 하파크로이트 등 글로벌 해운선사들은 2020년부터 기록적인 영업이익을 달성하고 있다. 선주들도 수익성이 향상되니 자연히 선박 발주를 늘리면서 해운업의 온기가 조선업에 전해진다.

그러나 독일 조선업은 레저 선박이 중심을 이루다보니 글로벌 해운 경기와는 상관관계가 낮다. 기본적으로 조선업은 도크, 대형 크레인 등 선박 건조를 위해 대형 설비를 갖춰야 한다는 점에선 자본집약적이다. 또한 선주의 요구에 맞춰 설계부터 제조까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문설계 생산방식(ETO)으로 운영되기에 복합적인 기술력이 요구되는 기술집약적 산업이다.

동시에 조선업은 복잡다단한 제조 공정을 거치는 거대 장치산업으로 자동화에 한계가 있어 아직은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하다. 이런 특성으로 글로벌 조선업의 중심축은 1970년대부터 유럽에서 아시아로 서서히 이동했으며, 전통적인 제조 강국 독일의 조선업도 1970년대 가격경쟁력에서 앞선 아시아 국가들이 조선업계 강자로 떠오르자 불황에 직면했다.

독일은 가격경쟁력이 부족한 화물선 건조 비율을 계속 줄여나가면서 다수의 조선소를 통폐합하고 경쟁력 있는 곳들만 일부 남겨 크루즈선, 페리, 요트, 풍력 특수선 등 고부가가치 선종 건조에 집중했다. 그 결과, 독일은 마이어베르프트 등 크루즈선·페리 건조에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조선소를 보유하며 다년간 침체한 글로벌 조선업 경기에서도 2019년까지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했다. 2019년 말 수주잔량 기준 약 177만CGT로 세계 6위, 유럽 3위 규모의 독일 조선업에서 크루즈선과 요트 등 레저용 선박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해 선박 인도액 기준으로 90.5%였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크루즈 등 관광업이 일시 정지되면서 독일 조선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카니발, 로열캐리비안 등 독일 조선업의 주요 고객인 글로벌 크루즈선사의 2020년 매출이 70% 이상 급감한 가운데 독일 조선소에선 수주 절벽 현상뿐 아니라 건조 중인 선박의 인도도 취소되는 일이 속출했다. 자연히 선박 기자재 납품업체들의 사업 환경도 함께 악화했다.

이처럼 독일 조선업은 가격경쟁력이 약한 화물선을 거의 취급하지 않으면서 글로벌 해운 업황과 괴리가 커져 2020년 3분기부터 진행된 해운업 경기 회복에도 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독일 조선해양기술협회(VSM)에 따르면 독일 조선업계 내 수주량이 코로나19 위기 이후 약 80% 줄었고, 2021년 5월4일 발간된 조선해양기술협회의 ‘2020-2021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조선소는 2020년 주력 선종인 크루즈선을 단 1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2020년은 대한민국이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2018년 이후 2년 만에 전세계 선박수주량 1위를 되찾은 뜻깊은 한 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월3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방문해 LNG 화물창을 시찰한 뒤 쇄빙LNG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조선업 경기 전망을 낙관할 수 없는 이유도 분명히 존재한다. 첫째, 전방산업인 해운업 호황의 지속 가능 여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2020년 하반기 이후 호황은 코로나19로 줄어들 교역의 대응책으로 글로벌 해운선사들이 선복(적재공간) 공급을 줄이면서 발생한 이른바 ‘불황이 가져다준 호황’ 성격이 녹아 있다. 둘째, 막대하게 풀린 글로벌 유동성이 회수되는 시점이 오면 경기 둔화에 따른 교역 감소로 전방산업인 해운업이 위축 국면에 접어드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동시에 유동성 축소가 선박금융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한국 조선업의 회복을 저해할 수 있다.

고객 다변화로 수주 감소에 대비

 마지막으로 한·중·일을 주축으로 한 아시아 지역으로의 선박 수주 쏠림 현상이 언제까지 계속될 거라 확신할 수 없다. 조선업의 노동집약적 성격이 선박 제조 공정의 스마트화 속에 약화할 수 있고, 무엇보다 독일 조선업계를 중심으로 공공 발주와 유럽연합 내 발주를 통한 조선업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같이 막대한 자체 발주 규모를 가질 수 없는 한국은 글로벌 조선업의 최대 흐름인 친환경 선박 건조 역량을 강화하고, 일정 수준의 선종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언제든 다가올 수 있는 화물선 해외 수주 감소에 대비해야 한다.

김승현 KOTRA 함부르크무역관 과장 shkim7@kotra.or.kr">shkim7@kotr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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