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 물질고아원장' 고 성찬경 시인의 특별한 예술작품

이은주 2021. 7. 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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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오브제전 13일 개막
경기도 화성 엄뮤지엄서
'사물, 아름다움의 구원'
고물로 만든 작품 50여 점
성찬경 시인이 선풍기와 오토바이, 철제의자 부속품 등으로 제작한 조형물. [사진 엄뮤지엄]

고 성찬경(1930~2013) 시인의 오브제 전시 '성찬경: 사물, 아름다움의 구원'이 경기도 화성 엄뮤지엄(관장 진희숙)에서 13일 개막한다. 시인이 생전에 고물을 재료로 만든 다양한 조형물 50여 점을 소개하는 자리다.

성찬경 시인은 서울 응암동 자택에 '응암동 물질고아원' 이라고 새긴 양철 간판을 내걸고 마당에 온갖 고물을 모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틈만 나면 고물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며 새로운 조형물을 만들었다. 해외에 나갔다 오면서도 나사 같은 것을 주워왔을 정도다.
부인이자 수필가인 이명환에 따르면, 시인은 이미 1960년대에도 아내가 결혼 때 혼수로 가져온 은수저로 십자고상을 만들었고, 고장 난 전축에서 여러 개의 걸작을 탄생시킨 "고단수 기술자"이자 "태생적 예술가"였다. 전축의 목제 다리, 턴테이블, 카트리지, 볼륨 조절 버튼, 스피커의 내장 재료들은 모두 나중에 여러 개의 기상천외한 오브제로 탄생했다. 대학교수(성균관대 영문학과)였던 그의 이런 일상은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에 소개되기도 했다.

유족들은 지난 2016년 3주기를 기념해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그가 생전에 남긴 오브제들을 모아 '응암동 물질고아원' 전을 연 바 있다. 5년 만에 엄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의 시와 드로잉, 오브제 작업을 함께 조명한다.

오토바이와 선풍기, 철제의자의 부속품, 옷걸이, 나뭇조각으로 만든 사람 형상의 조형물 '무제'를 비롯해 쇠파이프와 쇳조각으로 만든 '풍차와 싸우는 돈키호테' 등 작품 하나하나가 흥미진진하다. 주전자 몸통과 통나무 조각으로 만든 '아이 두상', 각종 나사와 철물과 도시락통을 재료로 만든 '나사 도시락'도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내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성찬경 시인이 스테인리스 주전자 몸통과 나무 조각으로 만든 '아이 두상'.[사진 엄뮤지엄]
철사와 쇳조각, 쇠파이프 등으로 만든 '풍차와 싸우는 돈키호테'. [사진 엄뮤지엄]
미술관 전시장 전경. [사진 엄뮤지엄]

신미성아 엄뮤지엄 학예사는 "시인은 생명이 다한 사물들의 존재 가치를 '돋보기 관점'으로 바라보고, 상상력을 발휘해 고물들을 시적인 감성을 입은 조형물로 재탄생시켰다"면서 "작품에서 드러나는 나사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관심이 탄성을 자아낼 정도"라고 말했다. 시인의 오브제는 '나사'로 촘촘하게 엮고 이어간 이야기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진희숙 관장은 "시인은 최소한의 도구를 이용해 손으로 자르고 구부리는 등 모든 작업을 다 손으로 했다. 작품은 모두 크기가 작지만 물질과 사물에 대한 사색의 세계를 풍부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생전에 고철로 작업하고 있는 성찬경 시인의 모습. [사진 엄뮤지엄]

성찬경 시인은 1956년 조지훈 시인 추천으로 데뷔했으며, ‘화형주둔곡’과 ‘벌레소리 송’ ‘묵극’ ‘거리가 우주를 장난감으로 만든다’ 등의 시집을 펴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슬하에는 시인이자 여러 밴드에서 음악활동을 해온 성기완, 지휘자 성기선, 시나리오 작가 성기영 등 오남매가 있다. 장남 성기완은 "아버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합 예술가였으며, 아버지의 예술은 일상생활 자체였다"며 "아버지는 '사람들이 물질을 학대하고 자꾸 버리는데 나 한 사람이라도 속죄하는 의미로 물질에 쉴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엄뮤지엄은 이번 전시에서 동시대 예술가 안성석(36·뉴미디어)의 3D 애니메이션 영상설치와 최혜란(32·회화)의 벽화작업도 함께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하는 시각예술창작산실 공간지원 프로그램의 하나로 기획됐다. 관람은 코로나19 방역 수칙에 따라 예약 방문제로 운영한다. 전시는 9월 26일까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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