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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탈원전에 뒤죽박죽된 탄소중립 정책

김승범 기자 입력 2021. 07. 1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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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9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최근 작성한 ’2050년 탄소 중립(탄소의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 시나리오안(案)’은 곳곳에서 무리수가 드러났다. 이 계획대로라면 2050년까지 지금보다 490GW 이상 태양광·풍력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땅덩어리가 우리의 98배인 미국에서 작년 한 해 태양광을 19GW 설치했다. 우리가 앞으로 매년 16GW 태양광·풍력을 늘리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다. 정부는 2017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을 2030년까지 20%로 높이기 위해 48.7GW의 신규 설비를 설치할 계획”이라며 “110조원이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2050 탄소 중립 목표만큼 태양광·풍력을 설치하려면 최소 수백조원은 들 것이다. 하지만 시나리오에는 비용에 대해선 언급조차 안 돼 있다.

탄소 중립은 중요하다. 하지만 국민은 좁은 국토에 목표대로 태양광·풍력 설비를 설치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돈을 부담해야 하는지 궁금해한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력 공급 계획을 세웠다가 전기가 끊기는 일은 없을지, ‘에너지 안보’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도 걱정이다.

답을 ‘탈(脫)원전’으로 정해놓은 상태에서 시나리오를 짜다 보니 전력 수요 예측이 정부의 종전 전망치와 차이가 나고 뒤죽박죽이 된 것도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시나리오는 국내 전력 수요가 2050년까지 30년간 연평균 4.5%씩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산업·건물·수송 등 전 분야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필요한 에너지는 전기로 충당하다 보면 전력 소비가 이렇게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부가 작년 12월 내놓은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9차 계획)’에서는 2020년부터 2034년까지 전력 소비량이 매년 평균 0.6%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경제성장률 하락에 따른 수요 감소, 에너지 관리 시스템 개선 등으로 전력 소비가 크게 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9차 계획 수립 당시 2050 탄소 중립은 선언만 했을 뿐 구체적 이행 계획이 없어 반영하지 않았다”고 했다. 탄소 중립이라는 주요 변수를 뺀 채 전력 수요를 예측한 것이다. 전력 수요 증가율 전망치가 낮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렇게 만든 9차 계획은 원전 폐쇄가 핵심이다. 앞으로 전력 소비가 많이 늘지 않을 테니 전체 발전량의 30%를 책임지는 원전을 없애도 전력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탈원전 주장의 근거가 됐다. 탄소 중립으로 9차 계획보다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만큼 탈원전 속도 조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데도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탈원전에 끼워 맞춘 수요 예측을 토대로 전력 공급 계획을 충분히 세우지 않았다면 나중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빚어질 우려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탄소 중립 목표 이행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2050 탄소 중립’은 작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으로 시작됐다. 선진국이었다면 미리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한 다음 추진했을 것이다. 이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 운용이 처음은 아니다. 독일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전에 대한 국민 불안감이 커지자 탈원전 정책을 논의하기 시작, 25년 동안 사회적 논의를 거쳐 탈원전을 결정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대선 공약이라며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탈원전을 밀어붙였다. 이번에는 탄소 중립이다. 탄소중립위원회는 10월 탄소 중립 시나리오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보고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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