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전동차 입찰의 민낯..안전보다 최저가 우선

서동철,박윤구 2021. 7. 1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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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노후지하철 교체 사업
납기 못맞춘 업체가 또 수주
기술력보다 최저가로 따내

◆ 탈선위기 韓 철도산업 (上) ◆

국내 철도 제조업이 '최저가 낙찰제의 덫'에 걸려 경쟁력 상실 위기에 내몰렸다.

국내 철도 제조업체들은 기술력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최저가격을 써내야 수주하는 '제 살 깎기'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업체들은 연구개발(R&D) 비용을 줄이고, 저가의 외국산 부품 수입을 늘리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전동차(지하철) 시장에서 한국 제조사들 경쟁력은 갈수록 후퇴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전 세계 전동차 시장은 연평균 10.3% 성장해 2027년 240억달러(약 27조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지만 국내 시장 '파이'는 연간 5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최저가 낙찰제로 인해 노후 전동차를 교체하는 사업에서 생산능력 이상으로 물량을 수주한 뒤 납기일을 맞추기도 쉽지 않은 기업이 또다시 수주를 따내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4월 진행된 부산 지하철 1호선의 노후 차량 200량 교체 사업에 3사가 입찰해 A사가 발주에 성공했다. 1단계 기술평가에서는 A사 85.7점, B사 85.25점, C사 92.75점으로 C사가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러나 통과 기준 '85점'만 넘으면 그만이다. 2단계에서는 2260억원을 써낸 A사가 최저가 입찰에서 승리했다. B사는 2365억원, C사는 2509억원을 각각 제시했다. 2단계로 이뤄진 '규격·가격 분리 동시입찰제'는 1단계에서 기술과 사업 능력을 평가하지만 최저 기준만 넘으면 일괄 통과한다. 2단계에서는 오직 최저가로 입찰한 업체가 낙찰받는다.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은 예산 문제로 인해 이 같은 입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A사는 2019년 서울 지하철 5·7호선 전동차 교체 사업을 수주했지만 생산능력을 넘어선 수주로 공급이 지연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7월 현재 서울시 5·7호선의 차량 교체는 계획보다 251일 지연됐다. 5·7호선 전동차 납품업체인 A사가 연간 생산능력 200량의 4배가 넘는 총 952량을 수주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이런 점이 반영돼 A사는 부산 1호선 교체 사업 1단계 평가에서 기존 납품 능력과 품질을 보증하는 '이행실적' 항목에서 3사 중 최저점을 받았으나 실제 수주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서동철 기자 / 박윤구 기자]

R&D 줄이고, 저가부품 수입 2배로…K전동차 벼랑끝 '출혈경쟁'

韓 전동차 저가수주의 덫

전동차 발주 年450량 수준인데
국내 3社 생산능력은 年1300량
최저가 적어내야 납품하는 구조

입찰 발주가격 1량에 9.7억원
수출단가 17억에 한참 못미쳐
매출 더 올려도 갈수록 적자만
4년간 관련 일자리 30% 감소
최저가 경쟁입찰제 도입 이후 신형 전동차 공급이 지연되면서 사용 내구 연한(25년)을 넘긴 구형 전동차 1000여 칸이 여전히 도심 속을 달리고 있다. 2중 충돌 에너지 흡수장치, 무정전 안내방송 시스템 등 각종 안전 장치와 공기 질 개선 장치도 없는 전동차들이 계속 운행되면서 시민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철도공사 차량사업소에서 열차들이 차량 정비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승환 기자]
한국의 전동차(지하철) 제조시장은 기형적이다.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3개사의 생산능력에 비해 시장 규모는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할 상황이지만 업체들은 최저가 입찰제에 매달려 제 살만 깎아먹는 상황에 처해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발주가 예정된 전동차량은 2260량(약 2조4634억원) 규모다. 이를 두고 3사가 경쟁하고 있다. 연평균 전동차 발주물량이 약 450량 규모인 셈인데 이는 철도차량업체의 총생산능력의 34% 안팎에 불과하다.

국내 철도차량 제작사의 연간 생산능력은 2020년 말 현재 A사가 200량, B사 300량, C사 800량 등 총 1300량이다. 국내 발주량만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여기에 최저가 경쟁 입찰제도까지 맞물리면서 해당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는 물론 투자의 동력마저 상실하고 있다. 최저가를 적어내야 차량을 납품할 수 있는 구조이다 보니 철도 제작사들은 '치킨게임'을 이어가고 있다. 당연히 연구개발(R&D) 투자는 갈수록 소홀해지고 있다.

최저가에 따내야 하다 보니 수출가격 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납품가격이 정해지고 있다. 2015~2021년 국내에서 실시된 전동차 입찰의 칸당 발주가격은 평균 9억7000만원이다. 같은 기간 국내 유일의 수출업체인 C사의 수출단가 17억2000만원의 56%에 불과하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C사는 2018~2020년 매출은 매년 늘어났지만 3년 연속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A사와 B사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큰 폭으로 늘었지만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됐다. 업계 관계자는 "저수익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투자는 위축되고 경쟁력은 약화된다. 이는 다시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낮은 가격에 물량을 수주한 철도차량업체들은 손실을 메우기 위해 저가 부품을 수입하게 되고, 그 여파는 영세한 국내 철도 부품기업에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철도 부품기업은 국내에서 공급처를 확보하지 못해 R&D 투자 여력이 사라지고, 품질 경쟁력까지 저하돼 수출 판로마저 막혀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철도차량 부품 수입은 2배 이상 늘었지만 수출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6년 철도차량 부품 수입액은 7673만달러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1억5717만달러로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수출은 1억7701만달러에서 7970만달러로 감소했다.

만성화된 적자 구조로 전동차량제조업체들은 R&D에도 소홀한 상황이다. 지난해 국내 철도차량업체들의 R&D 비용은 약 895억원으로 2019년 약 1170억원 대비 23% 이상 급감했다.

김철수 한국교통대 교수는 "고장이 잘 나는 부품에 대해서는 센싱 시스템을 접목해 수명을 진단하는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할 필요가 있지만 현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전동차량 발주물량은 점차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 새로운 기회는 열리고 있다. 포천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전동차 시장 규모는 2019년 181억6000만달러에서 2027년 238억3000만달러로 연 평균 10.3% 성장할 전망이다.

하지만 경쟁력 저하로 C사 외에는 해외 진출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한석인 우송대학교 교수는 "저가 수주로 생존 위협에 직면한 기업들은 기술개발과 신규 투자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있고 해외에서는 중국 같은 후발주자에게도 밀리고 있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부품업체 대신 중국 등에서 조달한 저가 부품 사용이 늘자 중소 철도부품업체들이 문을 닫거나 고용을 줄이면서 일자리도 사라지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철도장비 제조업 일자리는 30.6%나 감소했다. 2015년 7297명이던 철도장비 제조업 취업자 수가 2018년에는 5064명에 그쳤다. 특히 같은 기간 전동차량 완성차 3사의 고용 인원에는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일자리는 대부분 중소 철도장비업체에서 줄어든 셈이다.

[서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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