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태양광 165배 늘리겠다는 ‘2050 탄소중립’ 탁상공론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2021. 7. 1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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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희의 환경칼럼] 원자력의 온실가스 배출 태양광의 27% 불과한데
탈원전 고수하면서 산, 강, 규제 지역 빼고
남는 모든 땅, 주택·건물에 태양광 패널 덮겠다니
충북 청주시 오창읍 일대에 설치된 영농형 태양광 모습. 일반 농지 가운데 지자체의 도로 이격 규제 적용을 받지 않는 곳에는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하겠다는 것이 정부안이다. /신현종 기자

본지 취재팀이 ‘탄소 제로 30년 전쟁’ 기획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정부의 ’2050 탄소중립안’을 입수해 보도했다. 국책 연구기관 중심으로 전문가 72명이 참여해 작성한 자료다.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이걸 토대로 10월까지 최종안을 확정하게 돼있다. 핵심은 태양광·풍력의 대대적 확충이다. 태양광·풍력 발전량을 2019년의 48배로 늘려 2050년 전력 수요 가운데 61%(752.3TWh)를 담당하게 한다는 것이다.

태양광의 경우 한국은 이미 2019년 누적(累積) 설비가 중국·미국·일본·독일·인도·이탈리아·호주·영국 다음의 세계 9위(11.2GW)였다. 국토 면적 대비 밀도는 네덜란드·일본·독일에 이어 4위다. 이걸 30년 동안 다시 50배 가까이 늘려가겠다는 것이다. 어떤 근거에서 가능하다는 것인지 수소문하다가 문제의 수치들이 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 작성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에기연의 신재생자원지도 연구팀장이 지난달 29일 세미나에서 밝힌 ’2050년 재생에너지 잠재량(태양광 623.5TWh, 풍력 128.8TWh)’이 정부안과 소수점 아래까지 일치했다. 이만 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설비는 태양광 480.1GW(기가와트=10억와트), 풍력 41.6GW였다.

국내 최대 솔라시도 태양광 단지(전남 해남)는 여의도 절반 정도 면적(1.58㎢·48만평)에 태양광 패널 25만장을 깔았다. 480GW면 솔라시도 설비 용량의 4880배가 된다. 에기연 자료를 보면 2050년까지 지붕 태양광만 갖고도 144GW를 설치하는 걸로 돼 있다. 일반 토지는 지자체들의 입지 규제가 까다로워 설치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리기 어렵다. 지붕 태양광은 별도의 부지 구입비가 필요 없고 입지 규제를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그렇더라도 144GW는 터무니없는 수치다. 2019년까지 설치한 전국 38만가구의 지붕 태양광(총 354MW)과 일반 건물 3500곳의 지붕 태양광(75MW)에다, 공공기관 태양광(443MW)까지 모두 지붕 태양광이라고 간주하고 이걸 다 합친 것의 165배만큼 설치해야 2050년 목표치인 144GW가 나온다.

정부안 작성에 참여한 두 명의 관계자 설명을 들어봤더니 태양광 모듈 효율이 지금보다 1.7배로 개선되는 걸로 가정했다고 한다. 같은 면적에 그만큼 더 큰 용량을 장착할 수 있다. 아직 실용화 단계는 아니지만 건물의 남향 벽면에도 건물일체형 태양광(BIPV)을 다는 것으로 전제했다. 말하자면 전국 모든 건물의 지붕과 남쪽 벽면을 효율 높은 태양광 모듈로 덮는다는 것이다.

건물만 아니라 바닥 토지에도 310GW 설비를 다는 것으로 상정했다. 계산은 이렇게 나왔다. 전국 국토에서 산지, 하천, 경사 20도 이상, 표고 1000m 이상, 절대농지(농업진흥지역), 취락지구, 문화재보호구역, 천연기념물 서식지, 자연보전구역 등을 다 뺀다. 그다음 전국 지자체들이 일반적으로 채택하는 ‘도로에서 300m 이격’ 규제도 적용한 후 남는 땅에 모두 태양광을 채운다는 것이다. 절대농지가 아닌 일반 농지에는 농사도 지으면서 태양광발전도 할 수 있는 영농형 태양광(띄엄띄엄 설치로 일반 태양광의 세 배 면적 필요)을 설치하는 것으로 전제했다. 토지형과 별도로 저수지 면적의 10%, 담수호의 20%엔 수상(水上) 태양광 25GW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물리적, 제도적 조건이 되는 모든 토지와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하겠다는 구상이다. 사실 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 작성한 수치는 어디까지나 ‘잠재량’이었을 뿐이다. 정부는 그 ‘잠재량’을 실행 가능한 ‘계획 목표치’로 둔갑시켰다. 건물이나 토지 소유주 가운데는 태양광이 싫다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지금도 태양광 때문에 곳곳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태양광 강제 설치법이라도 제정해야 가능한 일이다. 한국이 태양광 전체주의 국가로 바뀔 판이다. 20년마다 나올 태양광 폐기물은 어쩔 것이며, 신재생 전력의 간헐성은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나.

태양광을 가능한 한 많이 설치하자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의 인구밀도는 세계 최상위권이다. 거기에다 국토의 63%가 산지다. 탄소 중립이란 국제적 목표에 우리도 동참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우리 국토의 자연 조건에 맞는 실천 방안을 찾아야 한다. 태양광과 원자력이 부담을 나눠 지게 하는 것이 방법일 것이다. 유엔 산하 기후과학기구(IPCC)는 발전 설비의 건설~운용~폐기 과정을 모두 따져 원자력 전기의 단위 전력당 온실가스 발생량을 석탄발전의 68분의 1, 태양광의 3.7분의 1로 계산했다. 이렇게 최적의 기후친화적 에너지인 원자력을 굳이 배제하고 태양광·풍력만 갖고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고 하니 책상 위에서 황당한 수치들을 꿰맞춰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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