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휴가 달랬더니 "퇴사해"..흔적도 없이 쫓겨나는 임산부

최윤아 2021. 7. 1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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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데이터, 빈칸을 채우자]출산휴가 시행 68년, 아직도 사용률 통계는 없다
"출산여성 건강권의 기본, 지표 보완해야"
게티이미지뱅크
데이터는 권력이다. 데이터는 현실을 압축해 보여주고, 단박에 상대를 설득한다. 그래서 데이터는 때로 기만이 된다. 데이터가 없으면 명백히 존재하는 현실도 지워진다. 데이터가 투박하면 현실의 날카로운 불평등도 뭉개진다. <한겨레>는 다섯차례에 걸쳐 치안, 산재, 채용, 출산 영역 등에서 지워진 젠더 데이터를 찾아내 바로잡으려 한다. 여성의 삶이 나아지고 있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꼭 필요한데도 여전히 빈칸으로 남아 있는 통계, 성별 분리가 되어 있지 않아 여성 현실을 읽어내는 데 무용한 반쪽짜리 데이터를 추적한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쏟아내는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은 이런 반쪽 현실을 아예 모르거나 애써 외면한 결과다. 남성이 기본값인 각종 데이터에 젠더 데이터 복원을 요구한다.
① ‘성별 분류’조차 않는 112신고 통계
② ‘산재=건설=남성’이 지운 것들
③ 합격자 성비 5 대 5? 사라진 면접자
④ 출산휴가 시행 68년, 통계가 없다
⑤ “이게 왜 문제죠?” 담당자가 물었다
ㄱ씨는 병원에서 임신 사실을 확인한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 커피를 돌렸다. 기쁜 소식을 가족만큼 가까운 동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커피를 받아 든 팀장은 곧바로 메신저로 ㄱ씨를 호출했다. 팀장 입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출산)예정일 언제죠? 예정일 한달 전까지 다니고, 인수인계 잘해주세요.” ㄱ씨가 “저를 자르시는 거냐”고 재차 묻자 팀장은 답했다. “잘린다고 말하면 서로 마음이 안 좋잖아요. 그동안 잘 지내왔으니 서로 윈윈 합시다. 대신 위로금 조로 퇴직금을 조금 더 챙겨줄 테니 마음 잘 달래고 태교 열심히 해요.” ㄱ씨는 결국 임신 7개월차에 회사를 나왔다. ㄱ씨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출산휴가는 사실 가장 기본적인 제도 아니냐. 이 회사에서 7년을 일하면서 출산휴가를 사용한 여직원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나만은 출산휴가를 갈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했다.
“우리 회사뿐 아니라 중소기업 한두군데만 봐도 실제 출산휴가 쓰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임신부를 위한 최소한의 복지인 출산휴가도 못 쓰는 게 대한민국 여성이 처한 진짜 현실이다.”

출산 전후 휴가는 임신한 여성 노동자에게 사업주가 출산 전후 90일(쌍둥이는 120일) 유급휴가를 의무적으로 주도록 한 제도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때 처음 생겨 올해로 시행된 지 68년이 넘었다. 그 연식만큼 제도가 성숙했는지를 따져보기는 쉽지 않다. ‘출산휴가 사용률’ 집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일터에서 여성들이 어려움 없이 출산휴가를 쓰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출산휴가 기간이 60일에서 최장 120일로 연장되고, 배우자 출산휴가(배우자인 남성 노동자 유급휴가 10일)도 도입됐으나, 제도만 성큼 앞서 나갈 뿐 실제 현장이 이를 잘 따라오고 있는지 점검할 ‘지표’ 자체가 없는 셈이다.

출산휴가의 중요성은 육아휴직에 뒤지지 않는다. 출산휴가를 회사로부터 거부당하면 많은 경우 퇴사로 이어진다. 출산휴가는 거부하면서 최장 1년인 육아휴직을 선뜻 내줄 회사는 없다. 사실상 출산휴가를 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경단녀’(경력단절여성) 여부를 결정하는 셈이다. 출산휴가는 임신한 여성이 조직과 부딪히는 첫 관문이고, 향후 일·가정 양립 가능성을 점쳐보는 ‘테스트베드’이며, 사회가 모성보호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셈이다.

관련 통계 생산을 담당하는 부서는 크게 통계청과 고용노동부 두곳이다. 먼저 통계청은 ‘육아휴직 사용률’은 집계하지만 ‘출산휴가 사용률’은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 통계청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동안 전체 육아휴직 대상자 가운데 실제 육아휴직자 비율을 따져 ‘육아휴직 사용률’을 산출해 지난해 처음 공개했다.

반면 출산휴가 사용률은 여태 단 한차례도 집계하지 않았다. 육아휴직에 견줘 기간이 짧은 출산휴가는 통계를 내기가 더 복잡하고, 우선순위에서도 밀린다는 이유에서다. 통계청 관계자는 “출산휴가 사용률 통계를 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육아휴직보다 복잡한 건 사실이다. 정확한 분모(출산휴가 대상자)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별도 프로그램이나 알고리즘을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육아휴직 사용률 통계도 공공과 민간이 한데 뭉쳐져 있어 아직 불완전하다. 먼저 육아휴직 사용률을 더 섬세하게 다듬고 차후에 출산휴가 사용률 통계를 검토해볼 의향이 있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도 출산휴가 사용률 집계에 손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고용보험 가입자 중 출산휴가 급여 수급 인원 데이터로 추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별도로 보유한 사용률 지표는 없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2010년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출산휴가·육아휴직 같은 일·가정 양립 지원 제도에 관한 실태조사를 매년 하고 있다. 조사 문항 가운데는 출산휴가에 대한 인지도, 활용 여부에 대한 문항이 있다. 그러나 이 조사로 출산휴가 사용 실태가 정확히 파악된다고 보기 어렵다. 전체 사업장 72만곳 가운데 0.71%인 5117개 기업만 표본으로 추출했고, 무엇보다 임신한 여성 노동자 당사자가 아닌 인사담당자에게 응답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 조사를 수행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마저 “제도를 활용하는 것은 근로자 개인이고, 활용 가능 정도나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 등은 근로자의 판단인데 이를 인사담당자가 응답하다 보니 근로자의 인식을 정확하게 담아내지 못할 수 있다”고 한계를 지적했을 정도다.

이런 방식으로 파악한 출산휴가 ‘활용률’은 12.4%였다. 활용률은 전제 표본 기업 가운데 지난 1년간 출산휴가 활용 실적이 있는 사업체 비율이다. 한 직장에서 여성 10명이 임신해 단 한명만 출산휴가를 쓰고, 나머지는 거부당했더라도 이 사업체는 출산휴가를 쓴 것으로 집계되는 방식이다. 한 연구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출산휴가 사용률 통계를 내달라고 통계청에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도 관련 통계가 나오지 않아 연구자들도 활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정규직 여성 가입률 88.1%, 비정규직 여성 가입률 46%(2020년 8월 기준)인 고용보험을 통해 출산휴가 사용 현황을 간접적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자료를 보면, 고용보험 가입자 중 출산휴가 사용 인원(출산휴가 미사용 규모는 파악 안 됨)은 2016년 8만9836명, 2017년 8만1092명, 2018년 7만6414명, 2019 7만3306명, 2020년 7만949명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이 기간 출생아 수는 2016년 40만6243명에서 2020년 27만2400명으로 줄었다. 출생률 감소에 따른 영향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같은 기간 여성 육아휴직 사용자는 8만2155명(2016년)에서 8만4617명(2020년)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여성 노동자가 일터에서 맞닥뜨린 출산휴가라는 문턱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육아휴직은 분할 사용이 가능해 사용 인원이 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면서 “단순히 사용 인원만으로 일터에서 모성보호 제도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출산휴가 사용 대상자 가운데 몇%가 실제로 출산휴가를 갔는지를 보여주는 사용률 지표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터에서는 출산휴가를 보장받지 못해 임신 초·중기에 퇴사하거나, 복귀 후 퇴사를 조건으로 출산휴가를 사용하는 등의 사례도 상당하다. 신 교수는 “정부는 자꾸 모성보호 제도의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홍보하는데, 공공부문·대기업처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일자리가 오히려 소수이고,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이 다수인 게 우리나라 여성이 처한 진짜 상황”이라고 했다.

같은 기간 일터에서는 출산휴가 관련 고충 건수가 늘었다. 서울시 위탁을 받아 여성 노동자를 상담·지원하는 ‘서남권직장맘지원센터’에 따르면, 출산휴가 관련 고충 건수는 집계가 이뤄진 첫해인 2017년 821건에서 2020년 1385건으로 늘었다. 특히 출산휴가를 사용하고 복직하는 과정에서 고충을 겪었다고 상담을 요청한 건수는 2017년 146건에서 2020년 306건으로 두배 늘었다. 김문정 서남권직장맘지원센터장은 “2016년 센터 개소 이후 매년 상담 건수가 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 육아를 이유로 사직서 제출을 강요받고 있다. 현실에서 여성이 출산휴가 제도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지표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전기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출산휴가는 출산 여성의 건강권 확보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제도다. 고용보험 제도 안에 있는 여성뿐 아니라, 자영업자·특수고용직처럼 고용보험 밖에 있는 여성이 출산 후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을 갖는지에 대해서도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는 이 두 지표가 모두 부족한 상태로 보인다”고 말했다.

‘출산휴가 거부당했다’ 경험담 넘치는데 처벌은 극소수

포털사이트 주요 맘카페에 ‘출산휴가 거부’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사례가 쏟아져 나온다. ‘임신했다고 하니 퇴사 권유 받았다’ ‘출산휴가 후 복직하려고 하니 내 자리가 없다고 한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후 돌아오니 주말근무가 있는 부서로 강제 발령이 났다’.
근로기준법은 사업주가 출산휴가를 주지 않을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 출산 휴가 도중에 해고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도 출산휴가를 거부하거나, 출산휴가 기간 도중 노동자를 해고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건수는 극소수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2193명이 출산휴가 도중 고용보험 수급 자격을 상실했다. 상실 원인 중에는 경영상 필요에 의한 퇴사(423명), 근로조건 변동, 임금체불 등에 의한 자진퇴사(120명) 등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같은 기간 출산휴가 기간 중 해고를 이유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건수는 단 4건이다. 출산휴가 미부여로 검찰에 송치된 건수도 30건에 그친다.
상당수 여성이 출산휴가 권리행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에 대한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이런 간극에 대해 김문정 서울서남권맘지원센터장은 “사업주가 출산휴가를 거부해도 많은 근로자가 어차피 처벌이 미약할 것 같아서, 혹여 이직할 때 걸림돌이 될까 봐 진정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진정을 하게 되면 사업주가 출산휴가를 주긴 하는데, 근로자가 복귀할 때 불이익을 줘서 퇴사하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런 케이스들이 고용노동부 스마트근로감독에는 자발적 사직으로 잡힌다는 점”이라고 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서 출산휴가 중 고용보험 상실자 가운데 ‘개인사정으로 인한 자진퇴사’가 843명에 달했는데, 적지 않은 수가 비자발적 퇴사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고용노동부가 임신·출산기 여성 근로자의 퇴사가 자의로 인한 것인지 타의로 인한 것인지를 좀 더 섬세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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