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ASML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반도체 장비업체 ASML를 찾아 생산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ASML은 반도체 노광장비 전문 업체로 극자외선(EUV) 장비를 유일하게 생산해 독점 공급한다. /사진=/뉴스1

"지금부터 밀려오는 IoT(사물인터넷)는 인류 최대의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인식 전환)를 불러일으킬 겁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지난 2016년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회사인 영국 ARM 인수 직후 한 말이다. 당시 인수금액만 약 240억파운드(약 33조원)였다. 반도체 업계에선 꽤 굵직한 인수합병(M&A)이었다.

ARM은 반도체 설계분야에서 세계 최고다. 반도체 회사지만 칩은 만들지 않고 회로 설계만 한다. 당시만 해도 일반에게 생소한 회사였지만 반도체 시장에선 '숨은 실세' '그림자 거인'으로 통할 만큼 실력자다. 전 세계에 유통되는 스마트폰 95% 이상에 ARM 회로기술이 쓰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을 방문했다. ARM이 반도체 설계분야의 숨은 실력자라면 ASML은 반도체 장비업계에선 글로벌 톱이다. 이 회사는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든다. EUV는 파장이 짧은 극자외선을 활용,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노광기술이다. 7나노·5나노 등 초미세공정 기술 개발은 EUV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누가 EUV 장비를 많이 확보하느냐가 반도체 경쟁력을 좌우한다. 글로벌 메모리 강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물론 파운드리 세계 1위 대만 TSMC도 앞다퉈 구매할 정도다. 벌써 올해와 내년 주문예약까지 꽉 찼다고 한다. 작년 이재용 부회장의 ASML 방문 이후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네덜란드로부터 EUV를 포함, 3조원 이상 반도체 장비를 샀다.

얼마 전 네덜란드 정부가 지난 2019년부터 지금까지 EUV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에 이어 조 바이든 현 미국 정부의 압박 영향이라고 한다. 당초 기업 매각에 개입을 꺼려온 영국도 중국 기업의 자국 반도체 회사 인수에 제동을 걸었다. 반도체 굴기를 놓고 벌어지는 미·중 패권다툼이 우리에게 딱히 나빠 보이진 않는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