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언론사 참 마음에 드네요, 후원하겠습니다."

이상원 기자 2021. 7. 21.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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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바우처법은 정부 광고비를 언론사가 아니라 국민에게 나눠주자는 기획이다. 각자 마음에 드는 언론사에 돈을 후원하는 것이다. 법안을 발의한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미디어 바우처가 기사로 승부한다는 점에서 언론을 평가하는 정확한 지표라고 주장한다. ⓒ시사IN 신선영

지난 5월28일 김승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미디어 바우처법의 정식 명칭은 ‘국민참여를 통한 언론 영향력 평가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다. ‘언론사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전통적 지표는 시청률(방송)이나 유료 부수 조사 결과였다. 그러나 포털이 주된 뉴스 소비 플랫폼으로 떠오르면서 그 의미는 퇴색되어왔고, 유튜브 시대를 맞으며 다시 흔들렸다. 조사 자체가 ‘오염’됐다는 주장도 불거졌다. 지난해 말에는 한국ABC협회(ABC협회)가 유료 부수를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ABC협회 조사는 정부가 각 언론사에 집행하는 광고 단가를 정하는 데 참고 자료로 쓰였다. 이 조사에 문제가 있다면 세금이 부적절하게 쓰인 셈이다. 미디어 바우처법은 정부 광고비를 언론사가 아니라 18세 이상 전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주자는 기획이다. 각자 마음에 드는 언론사에 이 돈을 후원하는 것이다.

김승원 의원에게는 ‘세금의 합리적 집행’ 이상의 목적도 있다. 그는 일부 대형 언론사의 영향력이 과도하며, 그들이 여론을 주도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눈길을 끌고 사실관계를 뒤틀어 눈길을 끄는 매체 환경도 이 법안을 통해 정화하려 한다. 불호를 표시하는 ‘마이너스 바우처’로 ‘나쁜 기사’를 징벌하고, 매체당 후원금 상한을 둬 거대 언론을 견제하자는 생각이 법안에 담겨 있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우려가 나온다. 기존 광고비가 삭감될 예정인 대형 매체만 그런 것은 아니다. 후원과 불호를 투표하는 과정이 진흙탕 싸움이 되고, 기자들이 지나친 부담을 갖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김 의원은 낙관적이었다. 국민의 ‘집단지성’을 믿는다는 것이다. 권력이 대중에게 이동하는 시대에 부합하는 제도라고도 덧붙였다.

언제부터 법안을 준비해왔나? 계기는?

지난해 11월 ABC협회에서 부수 조작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정부·공공기관 광고비 2500억원이 인쇄매체에 들어가는데, ABC협회 부수 공사 자료를 참고해 각 매체의 광고 단가를 정한다. 이 부수가 부풀려졌다면 가짜 기준에 의해 정부 예산을 분배해온 셈이다. 대안을 고민하던 중 논문과 기사를 통해 미디어 바우처라는 제도를 알게 됐다. 정부 광고비를 배분하는 데에 국민 후원을 반영하자는 취지다. 법안에 들어간 제도의 정식 명칭이 ‘국민참여를 통한 언론 영향력 평가제도’인 이유다.

어떻게 사용하는 제도인가?

18세 이상 국민 모두에게 같은 액수의 전자 바우처를 지급한다. 마음에 드는 기사가 있으면 후원 버튼을 누르면 된다. 바우처 금액 4분의 1을 ‘마이너스 바우처’로 지급한다. 이건 불호를 표시하는 것이다. 정부는 각 언론사가 독자들에게 받은 바우처 총액에서 마이너스 바우처 총액을 뺀 만큼의 광고비를 지급한다. 다만 한 사람이 바우처 절반 이상을 한 매체에 후원할 수는 없다. 1만원씩 지급한다면 5000원 미만만 한 매체에 후원 가능하다. 정부가 편성한 바우처 총액의 1%(일정 매출액 이상인 매체는 0.5%) 이상을 한 매체가 가져가는 것도 금했다. 일부 유력 매체의 바우처 독식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추가 재원이 드는 것 아닌가?

정부 홍보에 쓰이는 광고비 1조원은 어차피 드는 돈이다. 정부가 언론사에 지급하던 광고비를 국민에게 줘, 직접 선택하게 하는 방식으로 바꿀 뿐이다.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이 필요한데 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만 돈이 든다. 30억~50억원 정도다. 좋은 제도라며 ‘무료로 구축해주겠다’는 업체도 있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고(웃음). 다만 이 정책은 포털사이트에서 모든 언론의 기사가 공정하게 노출되는 게 전제 조건이다. 포털의 일방적 기사 노출을 피하고 더 많은 언론사 기사가 검색에 걸려야 한다. 네이버, 다음과 협의하고 있다.

김승원 의원실이 지난 3월 갓 나온 신문이 폐지로 팔리는 현장을 촬영한 사진. ⓒ김승원 의원실 제공

기사별 후원 방식은 기사를 많이 쓰는 매체에 유리하다. 〈시사IN〉 같은 주간지, 월간지나 전문지는 기사 수가 적어서 불리하다. 기사를 쪼개 검색에 많이 걸리게 하려는 어뷰징 수법도 등장하지 않을까?

시민들이 어뷰징 기사에 바우처를 줄 것 같지는 않다. ‘돈이 나간다’고 생각하면 기사를 꼼꼼하게 본다. 후원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기사에 대한 판단력과 이해도가 높아지고, 기자들은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더 좋은 기사를 쓰게 될 것이다. 근거가 있다. 지난 5월 한국언론재단의 ‘미디어 바우처 제도에 대한 국민 의견’ 조사를 보면, ‘가짜뉴스를 파헤치는 기사’ ‘정치인과 기업의 비리를 고발하는 기사’ 등이 후원하고 싶은 기사 수위권에 올랐다. 임팩트 있는 기사에 주겠다는 것이다. 기사 수가 적더라도 아이템을 깊이 파서 부조리를 밝혀내고 정보의 진위를 판단하는 매체라면 적지 않은 후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각 언론매체의 ‘실제 영향력’을 믿을 수 있는 지표로 가려내는 것이 법안 목적인가? 아니면 일부 매체의 ‘실제로 과한’ 영향력을 교정하려는 의도도 있나?

세금이 헛돈으로 쓰이지 않도록 하는 게 법안의 우선적 목적이다. 국민 참여를 통해 매체 영향력을 정확히 판단한 뒤 적절한 홍보비를 집행하자는 것이다. 다만 지역 언론, 탐사 전문 언론 등 다양한 영역에 최소한의 할당량을 줘 골고루 분배하자는 취지도 담았다. 언론 생태계에서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은 황소개구리다. 조·중·동 3사와 몇몇 경제지의 매출액·광고비가 업계 전체의 80%에 달한다. 인쇄매체 전체에 집행되는 정부 광고비 2500억원 중 조·중·동이 매체당 87억원에서 97억원 가까이씩 가져간다. 과도하다. 미디어 바우처 법안에 따르면 이 수치가 (후원 상한 조항에 의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매체의 영향력을 정확히 측정해 광고를 싣는다면 매출액이 높은 회사에 정부 광고도 많이 돌아가야 한다. 후원 상한 조항으로 분배를 강조한 이유는?

여론 다양성을 위해서다. 강한 매체를 억제하고 약한 매체를 후원해 공정한 언론 생태계를 만들면 다양한 여론이 반영된다. 이렇게 벌어지는 풍부한 논의가 국정 의제로 섭렵될 수도 있다. 민주주의 성숙에 이롭다. 중소·지역 언론이 탄탄하게 취재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된다. 지역의 작은 언론사 중에는 지자체·공공기관의 광고비에 의존하다시피 하는 곳도 적지 않다. ‘시장님’ 정책에 반대하는 기사를 썼다가 광고를 안 주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광고 분배를 시장이 아니라 국민이 판단하게 한다면 언론은 시장 대신 국민 판단에 주목하게 된다. 지자체 정책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고발 기사를 양심에 따라 과감히 쓸 수 있다. 언론이 공공기관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공공기관이 언론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자연히 부정부패도 줄어든다.

독자들의 후원을 의식해 기사 논조가 흔들리지 않을까? 지지자를 만들기 위해 정치적·이념적 극단에 빠질 수 있다.

극단적 기사는 대개 왜곡이나 과장이 있을 것이다. 분명 제목을 자극적으로 쓰거나 사실관계를 뒤튼 기사들은 주목을 받는다. 마이너스 바우처가 이 점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고 본다. (극단적) 기사에 열광해 후원하는 사람은 후원을 하고 ‘이건 아니다’라며 비토하는 사람은 마이너스 바우처를 준다. 결국 이런 기사는 영향력이 감소하고, 양극단보다는 합리적이고 실생활에 유용한 기사가 신뢰를 얻을 것이다. 지금은 기자나 언론사가 기사를 내면 국민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댓글을 다는 것 정도다.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바우처나 마이너스 바우처를 주면서 그렇게 한 이유를 쓸 수 있다. 기자가 다음 기사를 쓸 때에 이 의견을 유념하게 된다. 다수 국민 의견과 반대 논조로 갔다면 외면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기자가 타당한 취재를 통해 전문적 식견을 제시하면 동의하는 분도 분명 있다. 이 과정에서 팬덤(fandom)이 생긴다. 포털에서 뜨는 기사를 훑어보고 닫는 게 아니라, 어떤 기자가 기사를 잘 쓰는지, 부정부패를 잘 파헤치는지 알게되고, 그 기사를 우선적으로 읽어볼 것이다. 스타 기자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기자 개인의 보도 독립성은 더 늘어날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황우석 박사가 국민적 지지를 받던 시기, 그의 논문 조작을 보도할 수 있을까?

그(황우석 박사논문 조작) 사건 역시 시간은 걸렸지만 진실은 밝혀졌다. 지금은 그 당시와 비교해 미디어 환경이 변하기도 했다. 정보의 처리·유통 속도가 워낙 빨라졌다. SNS가 발달하고 1인 유튜버들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져 사회가 제자리를 찾기까지 시간이 덜 걸릴 것이다. 한 달 이내로 정리되지 않을까? 또한 마이너스 바우처는 미디어 바우처(후원) 액수의 4분의 1이니, 특정 보도를 비토하는 이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매체가 무너질 정도로 균형이 깨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 기사에 집단적으로 의사를 표명하는 이른바 ‘좌표 공격’을 막는 것도 고려하고 있나? 아니면 이런 식의 불호를 반영하는 것도 제도의 일환인가?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좌표를 찍고 공격할 수 있겠다. 예컨대 ‘백신을 맞아서 다리가 붓더니 폭발했다’는 기사를 보면 많은 분들이 화가 난다. 좌표 찍고 공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웃음). 그런데 좋은 기사에 가서 ‘돈쭐내자(‘돈으로 후원해 혼쭐내자’는 반어적 표현)’는 말이 있지 않나. 좋은 기사 썼는데 도와주자는 것. 그런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스타 기자가 나타날 수 있는 거고. 이런 호불호를 반영하는 것 역시 취지이다. 좀 더 나아가면 기사로 피해를 본 분들이 자기 입장을 적을 수 있는 댓글난을 마련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언론중재위를 통한 정정 보도나 반론 보도까지 기다리는 동안에도 기사는 소비되고 피해자는 망가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언론과 국민 간 ‘소통안’의 일환이다.

언론인들 가운데에는 부정적 의견이 많다. 특히 마이너스 바우처 조항에 비판이 적지 않다.

정치인도 그렇지만 어차피 언론도 국민의 평가를 (어떤 방식으로든) 받아야 한다. 지금은 그 수단이 여론조사 정도다. ‘가장 신뢰하는 언론’을 묻는 방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나열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런 여론조사는 이미지에 많이 좌우된다. 미디어 바우처는 기사로 승부하는 것이니 더 정확한 평가 지표라고 생각한다. (언론인들이) 좀 겁을 내는 것 같다. 지금은 많이 약화됐지만, 과거에는 일부 거대 언론이 의제를 만들어서 여론을 끌고 갔다. 〈조선일보〉에 찍히면 정치생명이 위태로워지고, 기업체도 날아갔다. 이제는 국민들이 SNS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거기에 반박한다. 조·중·동 1면의 힘이 예전에 비해 많이 빠졌다. 여론을 주도하는 권력이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큰 흐름이다. 정치인은 국민 의견을 반영해 정치를 한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구현하기 용이해졌다. 이런 환경이라면 언론도 국민이 직접 주는 의견이 반영된 기사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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