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대통령]노무현, 힘의 균형 추구한 자유주의자.."참여정부 과제는 현재진행형"

주재현 기자 2021. 7. 2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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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에 대한 오해, 보수도 심하지만 진보가 더 해"
"민주화와 지방분권 모두 '힘의 균형' 추구하는 과정"
"국가 권력 휘두르는 일 최대한 자제한 자유주의자"
"노무현의 과제, 현 정부 풀지 못해..아직 현재진행형"
노무현 전 대통령 / 사진제공=사람사는세상
[서울경제]

“진보와 보수, 좌우와 무관하게 ‘노무현’이라는 사람 자체에 오해가 너무 많다. 보수의 오해도 심하지만 진보의 오해가 더 심하다”

김병준 국민대학교 명예교수는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았다는 진보 진영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차이로 ‘힘의 균형’에 대한 믿음을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셨다는 사람들도 그를 잘 모른다”며 “혹자는 노 전 대통령을 선악 구분이 명확한 ‘유가적 인간’으로 규정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은 시스템으로 세상을 설계하는 ‘법가적 인간’”이라고 평가했다. 90년대 분권운동을 하며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는 김 교수는 “이미 그때부터 노 전 대통령은 ‘힘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더라”고 회상했다.

김 교수는 이날 저녁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주최로 서울 여의도 카페 하우스(HOW’s)에서 열린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 7인의 대통령’ 세미나에서 노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주제로 비대면 화상 강의를 진행했다. 김 교수는 지방분권 분야의 권위자로 참여정부에서 정책실장과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참석했다.

힘의 균형으로 도그마 타파···자유주의자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 / 사진제공=사람사는세상

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도그마’를 가장 경계했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이성을 바탕으로 자유와 평등을 향해 갈 수 있는데 이 진보를 가로막는 것이 도그마다. 지역주의, 진영논리, 빈부격차,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힘이 집중될 때 도그마가 생긴다고 봤다”며 “독재정권이 힘을 가지고 있으니 민주화를 해야 하고, 중앙정부의 권력이 과도하니 지방자치를 해야 하고, 노사 관계에서도 어느 한 쪽에 힘이 쏠리면 안 되니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다 같은 논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도그마에 대한 경계심이 컸고 힘의 균형을 추구해 그 도그마를 타파하려 했다”며 “소위 친노·친문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 이 생각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이 국가 권력을 과도하게 휘둘러 개혁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은 공동체가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국가 권력이 제한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주장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나라의 모세혈관인데 국가 권력이 개입하면 모세혈관이 죽는다는 이유에서다. 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국가경영의 우선순위를 항상 ‘공동체-시장-국가’ 순으로 매겼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가장 영입하고 곁에 두고 싶어 하던 학자가 바로 고 박세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라는 점을 부각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후보이던 시절 지시를 받고 제가 찾아가 삼고초려하기도 하고 당선 후에는 노 전 대통령이 박 교수를 직접 독대해 ‘나라를 설계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며 “박 교수는 공동체적 자유주의자의 거두다. 그를 영입하려는 것에서 노 전 대통령의 자유주의자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국가주의 진보가 아니라 자유주의 제3의 길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3월 9일 ‘평검사들과의 대화’에서 검찰의 독립과 중립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 사진제공=사람사는세상

김 교수는 검찰 개혁만 봐도 문재인 정부와 참여 정부의 접근방식의 차이가 보인다고 했다. 그는 “참여정부는 평검사와의 대화부터 시작했다. 반면 이 정부는 인사권이라는 칼부터 휘둘렀다”며 “말로 해결하려 한 참여정부도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칼부터 들이댄 현 정권도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노 전 대통령도 하고 싶은 일은 참 많았다. 금융개혁, 교육개혁, 검찰개혁, 지방분권, 지역주의 타파를 다 하고싶어 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칼을 빼들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도그마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자제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경제 정책도 지금 정부는 국가주의 입장에서 나라가 개입해 해결하려 한다”며 “반면 노 전 대통령은 시장의 힘을 적극 활용했다. 대표적인 것이 한미 FTA 추진”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업구조 개혁을 하고 싶은데 수많은 한계기업을 나라가 하나 하나 구조조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본도 움직이지 않았고 노조도 버티고 있었다”며 “그래서 개방을 선택했다. 세계 최대 시장에 개방하면 살아남기 위해 자본과 기업이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정권 초반부터 각 부처 모든 현안을 보고받던 비서실을 개편해 총리실에 기능을 이관하고 야당에 총리직을 제안하는 대연정을 꺼내든 것도 ‘힘의 균형’을 추구하는 자유주의자적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무현의 과제는 현재진행형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9월 7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대연정’ 문제를 포함한 국정 전반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사진제공=사람사는 세상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노 전 대통령의 국정 과제가 현재까지도 대부분 유효하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탈권위주의나 시민주권, 대연정, 지방분권이 대표적이다. 토론자로 나선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노 전 대통령이 갑작스레 서거하면서 오히려 참여정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상당기간 유예된 측면이 있다”며 “특히 노무현 정부를 계승했다는 이번 정부에서도 통합의 과제는 오히려 방치됐다. 그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과제는 끝난 게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김 교수 역시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뼈아프다”며 “그렇다보니 노 전 대통령이 제안한 대연정이 현실화 되지 않은 것이 더 안타깝다”고 답했다.

주재현 기자 joo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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