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던 LG 스마트폰, 폴크스바겐 전기차에서 살아났다 [최원석의 디코드]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2021. 7. 2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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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의 디코드]

※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시장이 차츰 전기차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한국의 산업은 어떤 기회를 맞을 수 있을까요?

현대·기아차로 대표되는 기존 자동차산업은 위기·기회가 상존하겠죠. 자동차 동력 계통의 대전환 뿐 아니라 CASE(통신연결·자율주행·공유·전동화)라는 거대한 기술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가 큽니다. 다만 유럽·일본보다 내연기관차 유산이 짧은게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고요. 국내 배터리·전자산업 기반이 원군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 기존 자동차산업을 제외하고, 전기차가 한국에 가져다 줄 거대한 산업적 기회로는 뭐가 있을까요?

저는 2년전 이맘때 ‘놀라운 기회가 오고 있다’라는 조선일보 데스크칼럼에서 한국의 배터리 3사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비즈니스 기회를 얘기했습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30/2019083003174.html

특히 배터리·디스플레이·가전·반도체 등의 각 요소를 통합한 ‘세트 기술’로 세계와 협력하는 생태계를 만들 수만 있다면, 한국이 ‘전기차 시대의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썼습니다. 물론 잘 됐을 때의 이야기를 장밋빛 희망만 담아 썼다고 보실 수도 있지만, 불가능한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한가지 큰 의문이 있었는데요. 당시 저는 그런 ‘세트 기술력’이 정확히 어떤 형태로 구현될 수 있을지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전기차 시대에 한국의 세트 기술력이 어떤 형태로 나올 수 있을까’에 대한 것입니다.

LG전자 제품인 ICAS3. 외관 레이블에서 ‘ICAS3’라는 문자를 확인할 수 있다. ICAS3는 폴크스바겐의 미래를 책임질 신형 전기차 'ID.3'에 탑재된 인포테인먼트·유저인터페이스용 컴퓨터다./닛케이크로스텍

◇폴크스바겐의 미래 책임 질 전기차 ‘ID.3’... 핵심 컴퓨터 3개 중 한 개를 LG가 납품

예단할 순 없지만, 그 의문이 최근 일본에서 나온 한 기사를 통해 약간 풀렸습니다. 일본 기술전문지 닛케이크로스텍에 7월14일자로 나온 ‘폴크스바겐이 작정하고 만든 전기차 ID.3 철저 분해, UI(유저인터페이스) 관련은 LG전자가 독점'이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LG전자가 ID.3 핵심기술인 전자제어유닛(ECU) 3개 중의 하나(ICAS3)를 통째로 납품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만 봐선 암호문처럼 느껴질텐데요. 이게 왜 중요한지, 그리고 경우에 따라 앞으로 얼마나 더 중요해 질 수 있는지 한 번 풀어보겠습니다.

일단 배경 얘기 조금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유럽 최대·최고 자동차메이커인 폴크스바겐은 전기차 시대가 오기 전까지 디젤로 일본 하이브리드를 격파하려 했습니다. CO2 배출량 줄이는게 중요했는데, 초고압 분사의 첨단디젤을 사용하면 하이브리드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봤던거죠. 2010년대 초반까지 ‘클린 디젤(사실은 더티였지만)’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이 디젤로 총공세를 벌였고, 여세를 몰아 폴크스바겐을 필두로 미국시장까지 쳐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 미국이 자국서 팔리는 폴크스바겐 디젤차가 실험실에서와 달리 도로상에서는 기준보다 훨씬 많은 유해가스를 배출한다는 것을 밝혀냈고, 폴크스바겐에 천문학적인 벌금을 때렸지요. 미국에서 벌금 맞은 것과 간접 비용까지 합치면, 이 때 폴크스바겐 손실이 100조원에 달한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거대한 사기극을 벌였던 폴크스바겐은 이후 백기투항, 한동안 고전하다가 최근들어 전기차 올인 전략을 들고 나왔지요.

최신 뉴스를 볼까요? 7월13일 폴크스바겐이 발표한 2030년 그룹 전략을 보면, 2030년에 자사 세계 판매의 50%를 전기차, 2040년까지 주요 시장에서 판매하는 신차의 거의 100%를 배기가스 제로 차량으로 바꿀 계획입니다.(전기차가 아니라 ‘배기가스 제로’라는 용어를 쓴 숨은 뜻, 즉 반드시 전기차일 필요는 없는 이유도 설명할 수는 있는데, 나중에 기회되면 써보겠습니다.)

이건 폴크스바겐이 환경을 생각해서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이죠. 원래 밀었던 디젤은 망했고, 일본 하이브리드 쫓아가긴 늦었고, 본진인 유럽에선 2035년이면 내연기관차가 사실상 퇴출될 위기이니, 전기차 올인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게다가 테슬라 같은 ‘이종(異種)격투선수’가 등장하면서 혼란이 가중됐습니다. 처음엔 별것 아닌줄 알았는데, 차량을 뜯어봤더니 전기차인 동시에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었던 겁니다.

충격을 받은 폴크스바겐이 가용인력을 총동원, 절치부심해서 내놓은 것이 바로 전기차 ID.3입니다. ID.3의 SUV 버전인 ID.4와 함께 폴크스바겐 전기차 전략의 주력이죠. 현 시점에서 기존 자동차업계의 전기차 가운데,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에서도 테슬라 차량에 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차량입니다.(아직은 테슬라 수준에 못미치지만, 확장성을 감안했을 때 얘기입니다.)

폴크스바겐 전기차 전략의 핵심인 순수 전기차 ID.3.

◇LG가 폴크스바겐에 납품한 인포테인먼트·UI용 통합 컴퓨터는 ‘사실상의 스마트폰’

일단 전기차의 동력 계통은 넘어가겠습니다. 폴크스바겐 전기차에 한국 배터리 기업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는 정도만 말씀 드릴게요. 폴크스바겐이 2030년까지 자사 연간 생산량의 절반(약 500만대)을 전기차로 바꾸려면 엄청난 배터리가 필요하겠지요. 폴크스바겐이 대규모 자체생산 계획을 내놓긴 했지만,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한국 그리고 중국 배터리업체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배터리는 그렇고요. 그 다음이 앞서 말씀드린 ‘전기차 시대에 한국의 세트 기술력이 어떻게 발휘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닛케이크로스텍의 폴크스바겐 ID.3 분석에서 나옵니다.

앞서 말씀드린 ICAS가 도대체 무엇인지부터 말씀드릴게요. 전기차는 동력계통만 내연기관에서 전기·모터로 바뀌는게 아닙니다.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 되려면, 차량의 모든 것이 소프트웨어적으로 통제될 수 있는 ‘E/E(전기/전자) 아키텍쳐(architecture)’가 반드시 필요하죠. 기존 자동차는 각 기능마다 그 기능만 수행하는 미니컴퓨터가 수십에서 백여 개 달려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대개는 다들 따로 움직입니다. 통합 제어가 안되는거죠.

폴크스바겐의 신형 전기차 ID.3가 인상적인 것은 이를 ‘ICAS(In-Car Application Server) 1, 2, 3」라고 이름 붙인 3개의 고성능 컴퓨터로 집약했다는 겁니다. 물론 테슬라가 모델3 등에서 먼저 내놓은 걸 따라 한 것인데요. ICAS1은 차량제어, ICAS2는 자율주행, ICAS3는 디스플레이와 UI(유저인터페이스) 혹은 HMI(휴먼머신인터페이스)를 담당하는 컴퓨터입니다.

ICAS1은 이미 독일의 메가서플라이어 콘티넨털이 일괄납품한다는게 알려져 있었고요. ICAS2의 내막은 아직 베일에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 ICAS3가 LG전자 제품이라는게 이번에 외부에 공개된 겁니다.

닛케이크로스텍에 따르면, ID.3의 디스플레이·HMI용 컴퓨터인 ICAS3에는 미국 퀄컴의 AP인 스냅드래곤 820, 네덜란드 NXP의 32 비트 마이컴, 스피커용 앰프, 영상전송용 반도체 등이 탑재돼 있습니다. 컴퓨터 자체는 LG전자가 만들었지만, 내부 부품은 외부 것들이 꽤 있군요.

흥미로운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ICAS3에 연결된 각 기기들까지 대부분 LG전자 제품이었다는 거죠. 이 컴퓨터가 연결·통제하는 것들, 즉 속도·차량 정보 등을 표시하는 디지털 계기판, 내비게이션 등을 표시하는 센터 디스플레이, 속도·내비게이션 정보를 운전자 시야에 표시하는 HUD(헤드업 디스플레이) 등이 모두 LG 제품이었다는 겁니다. 인터넷 접속을 담당하는 ‘인터넷 액세스 컨트롤 유닛’ ‘긴급 통보·통신 유닛’도 LG 제품이었습니다. 닛케이크로스텍은 “LG전자의 약진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평가했습니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이것을 크게 보면 어떨까요? LG전자가 만들던 스마트폰이 폴크스바겐의 신형 전기차 속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스마트폰에서 LG는 사라졌지만, 사실상의 스마트폰이 폴크스바겐의 최신 전기차 속에서 살아난 셈이죠. 다만 스마트폰은 LG 자체 브랜드의 최종제품이었지만, 폴크스바겐에 납품한 ICAS3는 B to B 제품이라는게 결정적인 차이일 겁니다.

ICAS3의 네트워크에 연결된 기기들. (a) 사용자 인터페이스 (b) 디지털 계기판 (c) 센터페시아 디스플레이 (d)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이 모두 LG전자 제품이다. /닛케이크로스텍·폴크스바겐

◇스마트폰 접은 LG, 스마트폰과 가전·디스플레이 기술력 합쳐 전기차에 올인

즉 LG가 폴크스바겐의 미래를 책임질 주력 전기차 ID.3의 인포테인먼트 통합 컴퓨터와 거기에 연결된 기기를 세트로 만들어 납품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이게 그냥 나온 얘기는 아닙니다. 폴크스바겐은 이미 2016년에 LG전자와의 공동개발 합의를 발표했었죠. 당시 공동개발 목표로 (1)커넥티드카와 스마트홈을 융합시키는 기술 (2) 안전하고 최적화된 운전자에 대한 정보제시 기술 (3)커넥티드카 전용의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기술을 제시했었습니다.

이런 3가지 공동개발의 목표 중 2, 3번의 일부가 이번 ID.3의 ICAS3, 그리고 ICAS3가 제어하는 디지털 기기의 일괄 개발·납품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죠.

그럼 이것은 LG나 삼성 혹은 한국 기업에 얼마나 큰 효과를 낼 수 있을까요?

일단 이해를 돕기 위해 전기차의 원가 구조를 한번 살펴볼게요.

최근 프랑스 르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 시점에서 전기차 제조원가의 40%가 배터리, 10%가 파워트레인(모터·인버터·기어박스 등), 20%가 (파워 트레인을 제외한) 플랫폼(차의 기본 뼈대), 30%가 내장·전장(인포테인먼트 포함) 등 나머지 부분입니다.

이것을 한국의 관점에서 한번 살펴볼게요. 제조원가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배터리는 현재 LG·삼성·SK 등이 선점했고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중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일본·유럽·미국과의 치열한 가격·기술경쟁이 벌어질테고, 납품 가격은 몇 년 안에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거의 모든 주요 자동차 메이커가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중이죠. 안그러면 자신들이 죽을 수 있으니까요. 한국 배터리기업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 기회가 더 커지긴 하겠지만, 자동차메이커들의 완력에 맞서 입지를 계속 늘려나가는게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안 혹은 플랜B가 필요합니다.

대안으로 모터·기어박스 등을 합친 전동파워트레인을 생각할 수 있겠지요. 국내에서도 충분히 공급 가능하고요. 최근 전자산업 모터 분야에서 일본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일본전산이 전기차 파워트레인 시장으로 급속하게 치고 들어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놓쳐선 안되는 시장입니다.

그런데 기술력이 살아있는 기존 자동차회사들이 이를 외주화할 것이냐의 문제가 따릅니다. 폴크스바겐 ID.3의 전동파워트레인을 뜯어본 결과에 따르면,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폴크스바겐의 신형 전기차 ID.3에 탑재된 인터넷 액세스컨트롤 유닛과 긴급 통보·통신 유닛도 전부 LG전자 제품이다. /닛케이크로스텍

◇전기차의 인포테인먼트 통합컴퓨터와 관련 디지털 기기는 기존 자동차회사가 완전히 내재화하기 어려워

상식적으로 생각해볼게요. 기존 자동차회사의 경쟁력은 엔진과 플랫폼의 통합 기술을 내재화한 것에서 나왔죠. 전기차 시대가 되면 이게 무의미해집니다. 엔진은 가고 플랫폼 하나 남지만, 전기차 시대엔 내연기관와 달리 플랫폼이 갖는 ‘진입장벽’ ‘공통화에 따른 원가절감’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 완성차회사는 뭘 먹고 살아야 할까요?

배터리(관련 부품 일체 포함)가 현재 전기차 원가의 40%인데, 현재로선 대부분 외부에서 사와야 하죠. 전동파워트레인이 10%, 플랫폼이 20%인데, 파워트레인도 외주 주고, 플랫폼만 완성차 스스로 만들어서 먹고 살 수 있을까요? 완성차 회사는 빈 껍데기가 될 우려가 있을 겁니다.

실제로 ID.3의 전동 파워트레인을 보면, 폴크스바겐 스스로 소형화·단순화에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충분히 크고 기술력이 있는 완성차 회사라면, 내부 경쟁력으로 갖고 갈 겁니다. 완성차로선 배터리 내재화보다 전동 파워트레인 내재화를 더 빨리 쉽게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단일 부품은 외부 부품사가 공급할 수 있겠지만, 완성차가 내재화에 주력할 경우 부품사가 지속적으로 큰 이익을 내긴 힘들겠죠.

일본 최고의 모터기술력을 가진 일본전산이 아직 실적은 없지만 전기차 플랫폼을 개발해놓고 미래를 대비중인 대만 홍하이와 연합한다든지, 기존 자동차회사 중에서 덩치는 크지만 기술력은 낮은 스텔란티스(푸조시트로엥과 피아트크라이슬러의 통합회사)와 전동 파워트레인 공급 계약을 맺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LG가 전동파워트레인을 직접 공략하는 대신, 글로벌 자동차부품 대기업 마그나와 합작으로 공략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존 자동차업체들이 어떻게든 안내주려 하고 신흥업체를 잡기엔 LG 역량이 모자랄 수 있으니, 마그나처럼 자동차 수탁생산 경험도 많고 중국을 포함해 거래처도 많은 글로벌 부품사를 끼고 시장을 늘려보겠다는 전략인 것이죠.

LG전자는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인 캐나다의 마그나와 합작법인 ‘LG 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을 설립한다. LG는 전기차 파워트레인의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마그나는 설계·생산을 맡아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다는 전략이다. /LG전자 제공

◇전기차의 미래 가치사슬은 차량제어, 자율주행, 디스플레이·UI용의 3대 컴퓨터 기반으로 모이게 될 것

다시 반복하면, ‘LG가 다음 먹을거리로 주력하는 분야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의 일부가 폴크스바겐 전기차 ID.3의 인포테인먼트 컴퓨터, 그리고 연결 부품의 세트 납품에 나와 있다는 것이죠.

LG전자가 스마트폰사업에서는 철수했지만 관련 기술은 그대로 보유하고 있죠. 또 TV 등 홈엔터테인먼트 가전에서도 기술력이 높습니다. 이런 기술력과 배터리·전장 위주로 미국 GM 등 글로벌 자동차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쌓아온 경험이 합쳐진 결과가 이번에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속단하긴 이르지만, LG가 스마트폰을 접고 차량 인포테인먼트 분야를 공략해 세트기술로 납품하는 것에 성과를 내고 있는건 고무적입니다. 스마트폰에서 LG는 톱클래스가 아니었고 시장도 정체된 상황이었죠. 반면 차량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 LG는 뛰어난 세트기술 경쟁력을 갖고 있고 시장도 성장하는 중입니다.

앞서 전기차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배터리가 40%, 전동 파워트레인이 10%, 플랫폼이 20%, 나머지 내장·전장(인포테인먼트 포함) 등이 30%라고 했지만, 앞으로 배터리는 원가가 떨어져 비중이 줄 테고요. 인포테인먼트 비중이 더 늘어날 겁니다. 성장 분야에서 세트 기술력을 장악하고 있다는건 긍정적인 신호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하나 짚고넘어가야 할게 있습니다. 자동차의 OS(소프트웨어 운영시스템)이죠. 기존 자동차는 수십에서 백여개의 미니 컴퓨터가 각 기능마다 붙어있고, OS도 제각각이지만, 앞으로는 이 것이 두세 개, 궁극적으로는 한 개로 통합될 겁니다. 이미 테슬라의 경우 현행 판매 차량에서도 단 3개로 구현돼 있는 상태이고요. 기존 업계에서 만든 가장 뛰어난 전기차 중 하나인 폴크스바겐 ID.3도 자체 OS인 ‘vw.OS’를 채용하고 있습니다. vw.OS의 역할은 ECU(전자제어유닛)나 차종마다 달랐던 소프트웨어 실행 환경을 공통화하는 것입니다. 차종마다 따로 개발해야 했던 소프트웨어를 공통화해 하드웨어 업그레이드나 센서·액추에이터(센서의 신호를 받아 물리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장치)를 쉽게 추가·삭제·변경할 수 있게 됩니다.

이에 따라 차량제어나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등을 업데이트할 경우 차종이나 차량에 탑재된 각각의 ECU를 막론하고 이동통신망 등을 사용해 한꺼번에 업데이트(OTA·Over The Air)할 수 있게 되는거죠. 스마트폰의 OS나 앱을 무선으로 쉽게 업데이트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건 이미 테슬라가 많이 앞서 있는 상황이고요. 폴크스바겐이 ID.3를 통해 테슬라를 따라가는 중간 단계에 있음을 보여준 겁니다. 이미 테슬라는 2019년 나온 모델3 등에서 ECU를 자율주행용, UI용, 보디 컨트롤용의 3개로 통합해 쉽게 무선 업데이트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폴크스바겐 ID.3는 2019년 나온 테슬라 모델3에도 미치지 못하는 단계입니다. ICAS라는 통합 컴퓨터 3개로 정리하긴 했지만, 그 이외에 작은 규모의 전자제어유닛이 아직 꽤 많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현행 테슬라보다 여전히 뒤쳐져 있습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미래 전기차의 먹을거리는 통합전자제어유닛이라는 반도체를 축으로도 설명해 볼 수 있고요.

앞으로 나올 전기차에서 공통이 될 3개의 전자제어유닛, 폴크스바겐으로 치면 ICAS1(차량제어), ICAS2(자율주행), ICAS3(디스플레이나 HMI) 가운데, ICAS3 즉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유저인터페이스 분야의 통합 컴퓨터와 관련 핵심부품(디스플레이 등)은 한국기업이 효과적으로 공략 가능하다는 겁니다.

물론 중국이 치고 올라오는 게 무섭긴 하지만, 반도체 핵심기술과 보안 등이 걸려 있는 문제라서요. 유럽·미국의 완성차 업체가 중국과 적극 제휴하는게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본 업체들도 기술력은 있지만, 도요타 등 일본의 주요 완성차업체가 아직 전기차에 소극적이라, 전기차 중심으로 인포테인먼트·전장 부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일괄 납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ICAS3의 기판. 퀄컴의 스냅드래곤 820, NXP의 차량용 32비트 마이크로컴퓨터 등이, 사진 뒤쪽엔 디지털 앰프 등이 탑재돼 있다. /포멀하우트테크노솔루션즈

◇배터리·전자·디스플레이·반도체의 세트 기술력 있는 국내 기업, 전기차 시대 성장 가능성 높아

전기차 분야에서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인력·자본이 투입돼 피 터지는 경쟁이 벌어지겠지요. 그러나 폴크스바겐 ID.3의 핵심가치 중 하나인 ICAS3와 연결 부품을 LG 가 일괄 공급하고 있다는 것은 LG가 전기차 시장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가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ID.3는 유럽 최대 메이커 폴크스바겐이 전기차에 올인할 각오로 만든 첫 모델이기 때문에, 이 차량의 부품공급 구조가 앞으로 더 확대될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당장에 큰 매출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초반부터 이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고 기술과 경험을 축적해 나간다면, 한국의 관련 산업 미래는 밝을 것이라 봅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전기차의 3가지 핵심 컴퓨터와 관련 기술 가운데, 자율주행, AI, OS 등은 한국 기업이 장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다만 이 시점에서 LG와 폴크스바겐의 공동개발과 LG의 일괄 납품은 전략적으로 큰 의미가 있고요. 이런 전략을 기반으로 영역을 차츰 넓혀나간다면 기회는 있을 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2016년 폴크스바겐과 LG가 공동개발키로 한 3가지 분야 (1) 커넥티드카와 스마트홈을 융합시키는 기술 (2) 안전하고 최적화된 운전자에 대한 정보제시 기술 (3)커넥티드카 전용의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기술 중에 (1)이 가져올 시장도 앞으로 점점 커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삼성과 LG는 전세계 가전 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폴크스바겐의 최신 전기차를 통해 LG의 전략 일부를 엿볼 수 있었지만, 삼성도 준비를 안했을 리가 없습니다. 9조원 주고 산 글로벌 전장기업 하만의 영업이익이 급락한 것 등으로 일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아직 결과를 속단하긴 이르죠. 하만과 전자, 반도체, 디스플레이, 다른 계열사 등의 시너지를 통해 자동차 분야 공략에 대한 전략과 성과 발표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 두가지만 말씀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첫번째는 미래는 예측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겁니다. 기존 업계 문을 계속 두드리는 한편, 전기차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있는 신흥업체를 발굴해 시장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두번째는 아무리 기술력에 자신이 있다 해도, 실제 판매되는 차량에 대량으로 적용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기술력이 충분치 않다는 의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일본 업체들이 내놓은 전기차 대비 전략에서 ‘기술력이 없어 안 만드는게 아니다. 시장이 아직 크지 않다. 때가 되면 다 만든다’는 내용이 자주 나오는데요.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자동차는 ‘구력’을 무시하지 못하죠. 실제 판매하는 차량에 오랫동안 대량 적용해서 예기치 못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계속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쌓인 경험이 미래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이것을 절대 무시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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