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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대교 무지개 찍으세요" 버스 세운 기사님[아살세]

이주연 입력 2021. 07. 25. 00:50 수정 2021. 07. 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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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기자


연일 폭염에 이따금 호우주의보까지 내려지는 여름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미친 듯이 쏟아졌던 소나기가 지나가자 찾아온 깜짝 손님이 있었는데요. 이날 오후 7시쯤 비 내린 하늘이 개면서 서울 마포구, 영등포구, 관악구 등지에서 볼 수 있었던 쌍무지개입니다.

이 무지개 때문에 버스 운행을 잠시 중단했던 기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바로 무지개가 쨍하게 뜬 순간을 담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던 승객들을 위해 버스를 잠시 정차해준 기사님인데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21일 사연이 올라오자 누리꾼들은 ‘동화 같은 이야기’라며 감동을 표했습니다.

이 사연의 주인공인 서울교통네트웍 160번 버스 운행사원 강재순씨는 2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날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줬습니다. 강씨는 “19일 월요일엔 소나기가 진짜 억수같이 퍼부었다”며 “오후 7시가 넘은 퇴근 시간 마포에서 여의도 방향으로 마포대교를 넘어가고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매일 지나가는 익숙한 길이었는데도 그날따라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는 “무지개가 엄청 예쁘게 63빌딩 방향으로 떠 있었다”며 “또 반대편 서강대교 쪽에선 노을이 막 지고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바라본 하늘에 쌍무지개가 떠 있다. 독자제공. 연합뉴스


강씨는 “원래 마포대교는 지나가다 보면 손님들이 카메라로 야경을 찍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찰칵’ 소리가 너무 많이 났다”며 “고개를 들어 보니 30명 남짓한 승객들이 하나같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앉아있던 승객들까지 모두 일어나서 사진을 찍는 모습에 강씨는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러실까’ 싶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어떻게, 차 좀 세워드려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강씨는 당연히 손님들이 “아니, 아니에요~”라고 할 줄 알고 장난식으로 던진 말이었지요. 하지만 승객들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내왔습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전부 “네~”라고 입을 모아 답한 거였죠.

19일 서울 마포구에서 바라본 하늘에 쌍무지개가 떠 있다. 연합뉴스


그는 “마포대교는 신호체계상 차가 안 오는 시점이 있고 도로가 넓어서 잠깐 차를 세워도 다른 차들에 지장이 없다”면서 “마포대교 중간쯤부터는 신호 바뀌는 신호등도 눈에 보인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신호를 바뀌는 걸 확인한 그는 잠시 비상등을 켜고 승객들에게 편히 무지개를 담을 ‘몇 초의 여유’를 선물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한강의 다리들은 주차는 금지되지만 절대적 정차 금지 지역은 아니라고 합니다.)

버스 운전 5년 차인 강씨는 그 유명한 ‘160번 노선’의 기사입니다. 160번 버스의 1회 운행 길이는 70㎞로 총 4시간30분이 소요됩니다. 게다가 서울시 전체 승객 탑승 순위 2위 노선으로 운행하기가 결코 쉽지 않죠. 그런 그에게도 낙이 있는데 바로 손님들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19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성산지구에서 바라본 하늘에 쌍무지개가 떠 있다. 연합뉴스


강씨는 “운전하면서 승객들과 소통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며 “코로나19로 마스크 쓰고 다니기 전에는 대화도 많이 했는데 이젠 그것도 힘들다”라고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그러면서 “빨리 이 바이러스가 없어져서 편안하게 옛날처럼 손님들과 소통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작은 바람을 밝혔습니다.

그날 160번 버스가 마포대교에 멈춰선 이유를 접한 누리꾼들은 강씨의 배려에 따뜻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름답네요. 무지개를 보는 승객들의 순수한 동심을 지켜주신 기사님 멋집니다”, “승객들에게 평생의 추억을 선물하셨네요” 등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버스에 탄 승객들은 무지개와 함께 선물 같은 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겁니다. 버스 승객들이 저마다 그 순간을 포착한 무지개 사진들 역시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전달되곤 했겠지요. 코로나19와 폭염에 지친 승객들의 퇴근길, 폰카에 무지개를 담아낼 선물 같은 시간을 선사한 버스 기사님의 따뜻한 진심이 160번 버스 밖 다른 이들에게까지 전해지길 바라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이주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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