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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독립운동가 이석영 끊겼다던 직계후손이 나타났다

조일준 입력 2021. 07. 26. 05:06 수정 2021. 07. 2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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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계후손 이종찬 전 국정원장에
증손녀 김용애·최광희씨 찾아와
안창호와 가족 담긴 사진 보여줘
"이석영 손녀 셋 뒀고 우린 그 딸
어머니와 두 이모 비참하게 성장"
이 전 원장 "사진 보고 후손 인정"
이석영 선생 초상

후손이 끊겼다고 알려진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1855~1934)의 직계후손이 여러 명 생존한 사실이 <한겨레21>의 취재로 확인됐다. 이석영 선생은 17세기 조선의 문신 백사 이항복의 후손으로, 이후 내내 정승과 판서를 배출한 명문가이자 걸출한 독립운동가 집안인 ‘경주 이씨 6형제(건영·석영·철영·회영·시영·호영)’ 중 둘째다.

2021년 7월20일 여섯 형제의 넷째인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85) 우당이회영선생 교육문화재단 이사장(전 국가정보원장)과 김용애(86), 최광희(82)씨가 둘러앉아 옛 사진 몇장을 봤다. 그중에는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의 장손녀 이온숙의 결혼사진(1929년)도 있었다. 당시 임시정부에서 일하던 도산 안창호 선생이 주례를 선 모습이 뚜렷하다. 이종찬 이사장은 안창호의 바로 옆에 아기를 안고 선 여인이 자신의 어머니(조계진)라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이 사진은 이온숙이 딸 최광희에게 물려준 유품이다. 이종찬 이사장은 석영·회영 집안의 추모·기념사업을 도맡아온, 생존 후손 중 맨 웃어른이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한 해가 저물어가던 1910년 12월30일 새벽, 여섯 형제는 집안의 재산을 전부 처분한 거금을 챙겨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한 뒤 항일무장투쟁의 요람이던 신흥무관학교(1911~1920)를 세우고 운영했다. 신흥무관학교는 강제 폐교되기 전까지 3500여 명의 독립군 지휘관과 전사들을 길러냈다. 하지만 이석영 선생의 두 아들은 독립운동에 나섰으나 요절했고, 이석영 선생은 중국 상하이에서 79살에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2021년 7월16일,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의 직계후손 김용애 할머니(오른쪽)가 서울 용산구 효창동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이종사촌 동생 최광희 할머니와 함께 도산 안창호 선생이 주례를 선 이온숙-최경섭의 결혼사진(1929년)을 보며 옛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한겨레21>은 2021년 6월18일부터 최근까지 한 달에 걸쳐 이종찬 이사장과, 이석영 선생의 증손녀 김용애, 최광희씨 등을 인터뷰하고 관련 사진과 호적 자료 등을 열람했다. 지금껏 알려진 것과 달리, 이석영 선생의 장남 이규준은 생전에 온숙· 숙온· 우숙 세 딸을 뒀다. 김용애씨는 숙온의 딸, 최광희씨는 온숙의 딸이다.

이종찬 이사장은 김용애·최광희씨와 만나 옛 기억과 집안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맞춰보고 사진 자료를 검증한 뒤 이들이 이석영 선생의 혈육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한겨레21>에 보내온 ‘회고 메모’에서 “이석영 선생의 손녀들이 나타났다. 이석영 선생은 절손된 것이 아니라 손녀 셋을 두었다. 그분들이 갖고 온 사진 자료를 보고 어리둥절하지만 일단 후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앞으로 풀어야 할 의문점들도 정리했다. (▶관련 기사 이종찬 “이석영 선쟁은 손녀 셋을 두었다”참조)

이석영 선생의 후손이 족보와 국가의 가족관계 기록에서 빠진 것은 당시의 엄혹한 시대 상황과 이규준의 안타까운 가족사 때문으로 보인다.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삼엄한 감시와 무자비한 탄압을 피해 거처를 수시로 옮긴 데다, 이규준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장녀 온숙의 딸 최광희씨는 “이규준 할아버지가 젊어 돌아가시자 할머니 한씨(한평우)가 먹고살기 위해 재가했는데 세 딸은 남겨두고 혼자 떠났다고 한다”며 “어머니(온숙)랑 두 이모는 고아나 다름없는 비참한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말했다. 특히 세 자매는 10대 사춘기에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에 부닥치면서 어머니 한씨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의 감정이 컸다고 한다. 이석영-이규준의 후손은 그렇게 세간에서 서서히 잊혀갔다.

2021년 2월16일 경기도 남양주시 이석영 뉴미디어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열린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 순국 87주기 추모식’에도 직계후손은 없었다. 이 소식을 뒤늦게 안 김용애씨는 “그냥 조용히 묻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뿌리 찾기'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세 딸의 기록은 제적(옛 호적)등본이나 집안 족보에 없었다. 국가보훈처 공훈관리과의 책임 연구원은 “독립유공자 후손 검증의 기본은 제적등본과 당사자 집안의 족보 등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문서 자료이며, 사진 자료는 (검증 절차에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민원인들이 후손 인정을 받고 싶다면 보훈처의 관할 지청에 심사 신청을 하면 공훈심사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인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김용애씨는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데까지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독립유공자 후손 확인 신청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제가 살 만큼 잘 살았는데 무슨 벼슬 욕심, 돈 욕심이 있겠어요? 조상님들 흘리신 피가 헛되이 되지 않게 하고, 제가 저승에 가서 어머니 만나면 ‘엄마, 저 이런 일 하고 왔어’라고 말할 수 있길 바랄 뿐이에요.”

자세한 내용을 담은 기사는 <한겨레21> 1373호(▶ [단독] “나는 독립운동가 이석영의 증손녀이다”) 에서 볼 수 있다. 

조일준 한겨레21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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