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빈 대장의 보이지 않는 따뜻한 손..비탈리 최초 인터뷰

김정기 2021. 7. 2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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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손가락이 없는 장애 산악인 김홍빈 대장

히말라야 브로드피크 완등하고 하산하던 중 실종

아나스타냐 "본인 구조하러 왔다가 조난" 추정

구조자 비탈리씨가 전하는 당시 상황

김홍빈 대장은 지난 18일 히말라야 브로드피크(8,047m) 정상 정복을 한 이후 하산 과정에서 해발 7,900m 부근 중국 쪽 70도 급경사면으로 내려갔고 다시 올라오지 못했다. 

국내외 언론은 김 대장이 크랙 혹은 크레바스(빙벽에 갈라진 틈)에 빠졌다고 보도했으나 김 대장을 끝까지 지켰던 비탈리 라쪼씨는 김 대장이 크랙에 빠진 것이 아니라 비탈에 서 있었다고 전해왔다.



◆김홍빈 대장 사고 전날 브로드피크 정상으로 향하는 길 ⓒAnastasia Runova, mountain.ru

다국적 등반대에 소속된 아나스타샤 루노바(나스야)는 김 대장보다 조금 앞서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 러시아의 마운틴지 7월 22일자 보도에 의하면 나스야는 당시 강한 바람이 불었다고 기억한다. 

김 대장은 캠프4에서 출발해 오후 5시쯤 브로드피크 정상을 밟았다. 이로써 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정상을 밟아본 사람이 됐다. 이후 김 대장과 짐꾼들은 하산을 시작했다.



◆브로드피크로 향하는 여러 등반대. 아래 쪽에 김홍빈 대장 팀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Anastasia Runova, mountain.ru



◆브로드피크 정상을 밟은 나스야. 김 대장도 조금 뒤 같은 곳을 밟았다. ⓒAnastasia Runova, mountain.ru 

 

곧 이어 나스야도 하산에 나섰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해발 7,900m 부근에서 나스야가 밧줄에 몸을 묶었을 때, 눈 처마가 무너져 내렸고 중국 쪽 사면에 매달리게 됐다. 그녀는 밧줄에 매여서 급경사면에 매달리게 됐다.   

절망에 빠질 법한 나스야는 김 대장 팀이 그녀 뒤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약 한 시간 거리에서 여전히 다른 등반가들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라고 밝혔다.



◆등반 초기에는 기상 상태가 좋았지만, 하강 시에는 강한 바람이 불었다. ⓒAnastasia Runova, mountain.ru   

 

잠시 뒤 나스야는 김 대장의 짐꾼이었던 '리틀 후세인'과 눈이 마주쳤다. 이 짐꾼은 나스야의 팀 동료였던 오스왈드를 불렀고, 무선통신망에 그녀의 조난 사실을 알렸다. 이때가 19일 0시 즈음이었다. 

김 대장은 짐꾼들보다 뒤늦게 하산하고 있었다.

이후 오스왈드, 후세인, 그리고 호주의 등반가 스테판이 몇 시간에 걸친 구조 노력 끝에 나스야를 구출했다.

나스야가 급경사면에서 빠져나오기 직전 김 대장이 몇 미터 떨어진 곳에 긴급 상황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스야는 "김 대장이 저를 도와주러 내려왔을 것"이라며 "다른 등반가들의 (구조를 위한) 빠른 하강을 위해 도우러 내려왔을 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스야에 따르면, 김 대장은 알려진 것과 다르게 사고로 급경사면에서 조난을 당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김 대장은 사고로 인해 내려갔다기보다는, 나스야를 도와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하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짐꾼들이 김 대장보다 앞서 갔고, 짐꾼들이 나스야의 조난 사실을 무선 전파망을 사용해 전파한 이후 김 대장이 뒤따르며 그녀를 발견하고 급경사면에 내려갔을 가능성이 있다. 밤이 늦은 시간이고 고산지역에서 소리를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나스야가 김 대장을 조난 초기에 발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김 대장이 급경사면에 내려가게 된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은 나스야의 이야기를 제외하곤 없다. 나스야는 여러 정황을 살펴봤을 때 김 대장이 자신의 구조를 돕는 과정 중에 의로운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추정한다.

나스야는 고산에서 오랜 시간 추위와 배고픔에 노출돼 있었고, 구조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했기에 김 대장을 구조하지 못하고 하산해야 했다.  

후세인은 김 대장의 조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나스야를 구조한 이후 함께 김 대장을 끌어올릴 사람이 없어 구조를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은 나스야를 구조한 후 산을 내려가며 여러 등반가들에게 김 대장 구조를 요청했지만 등반가들은 응하지 않았다. 비탈리는 나중에 본인의 리스크지 기고문(risk.ru)에서 후세인과의 대화 내용을 전했다. 

"나스야를 구하고 나서 그는 김 대장을 구할 수 없기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은 힘이 없었습니다. 그는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든 등반 영웅들은 지쳤고 그를 지나쳤습니다."

김 대장의 구조를 이어간 비탈리

무선통신망을 통해 나스야와 김 대장의 조난사실을 알게 된 러시아 데쓰존프리팀의 비탈리 라쪼와 안톤 프고프킨은 19일 새벽 12시 15분 캠프3에서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올라갔다. 계속 산을 오르던 비탈리와 안톤은 구조된 후 하산 중인 나스야를 새벽 4시에 만났다. 안톤은 나스야의 응급처치를 맡았고, 비탈리는 홀로 남겨진 김 대장을 향해 단독으로 구조에 나선다.

비탈리는 오전 10시 53분에 김 대장이 있는 사고지점에 도착했다. 이후 비탈리는 4시간에 걸친 구조 활동을 벌였다. 그는 김 대장이 자력으로 올라오는 것을 돕기 위해 바위에 안전장치를 구축하고 밧줄을 이용해 20m 아래로 내려갔다.

김 대장은 70도 사면에 서 있었으며 비탈리를 보며 기뻐했다. 그러나 그의 상태는 좋지 못해 보였으며 "정말 피곤해, 정말 피곤해(very tired, very tired)"라고 말했다. 김 대장의 고글은 뒤쪽으로 돌아가 있었으며, 김 대장은 안구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비탈리는 돌아간 안경을 바로 잡아주고, 장갑을 끼워주고, 약간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김 대장에게 물을 주고, 옷을 입혀줬다.

김 대장은 곧 다시 힘을 내어 밧줄에 의지해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김 대장은 안전을 위해 등강기(주마)를 사용하길 간절히 바랐다고 한다.

김 대장을 돕다가 위로 올라간 비탈리는 김 대장의 두 짐꾼과 함께 그를 끌어올렸다. 짐꾼들은 캠프4에서 비탈리가 있는 곳으로 올라왔고 후세인은 다시 한번 구조에 동참했다.

김 대장은 약 3m가량 올라오게 됐지만, 밧줄의 강도에 문제가 생겼다. 구조가 진행된 지 4시간가량이 지난 오후 2시 45분, 비탈리가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다시 내려갔고 김 대장과 5m가량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비탈리는 김 대장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비탈리는 "멈춰요, 멈춰요! 가만히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때 안으로 돌풍이 들어왔고 비탈리는 빙벽으로 날아갔다.

김 대장은 자신의 등강기가 고장 나자 고치려던 과정에서 밧줄에서 분리됐고, 그는 누운 자세로 벼랑 아래로 추락했다. 그의 다리에는 몇 개의 밧줄들이 있었다.

그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파악되지는 않지만, 그의 위성전화 신호가 해발 7,000m에서 발견된 것을 보았을 때, 그도 위성 전화와 함께 약 900m가량 추락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비탈리는 24일 파키스탄 헬리콥터를 타고 김 대장 수색에 다시 동참했다고 필자에게 소식을 전했다.

필자는 김홍빈 대장 옆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비탈리와 어렵게 메신저를 통한 짧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이하 비탈리가 필자에게 보낸 메시지를 실어본다.

“안녕하세요. 저는 구조를 하러 떠났고 김홍빈 대장을 만났습니다.

오전 11시쯤 중국 쪽 사면에서 그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로프를 타고 그에게 내려갔고 도왔습니다. 그에게 옷을 입혔고, 물을 주었고, 올라갈 수 있도록 정리를 해줬습니다.

그러나 김 대장이 위로 올라가는 동안 그의 등강기가 고장 났습니다. 저는 그것을 느꼈고, 그에게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김 대장을 불렀지만, 그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등강기를 잡고 있었지만 고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고치려는 과정에서 등강기를 벗겨버렸습니다(로프와의 결속을 풀었다는 의미).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그는 절벽으로 추락했습니다.

최악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왜 장애를 입은 사람이 혼자 있었냐는 것입니다. 이런 위치에서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돕지 않았고 (우리) 캠프에 김 대장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어디에서 그런 일이 생겼는지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정보를 받았다면, 우리 둘은 (처음부터 김홍빈 대장을 위한_필자 주) 산소통을 들고 갔을 것입니다. 저 혼자서 김 대장을 끌어올린다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비탈리에 따르면 김 대장은 등강기의 고장을 해결하려 하다가 밧줄에 엮여 있던 등강기를 풀어버린 것이다.

김 대장을 돕는 손길은 부족했지만, 김 대장은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을 향한 도움의 손길을 펼치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김홍빈 대장은 시를 한 편 쓴 적이 있다. 그 제목은 '손'이었다.

두 손이 있을 땐

나만을 위했습니다.

두 손이 없고 나서야

다른 사람이 보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만큼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보이지 않은

새로운 손이

그렇게 말합니다.

나스야는 김 대장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에 큰 안도감을 느꼈고 절망을 버틸 힘이 돼줬다. 나스야에 따르면, 김 대장은 사고 지점에 도착해서도 그녀를 지나치지 않고 급경사면으로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그의 보이지 않는 손은 7,900m 절벽에 매달려있는 나스야를 도우려 했다.

비탈리는 23일 러시아의 리스크지(risk.ru) 기고문을 통해 "현대의 등반 영웅들의 도덕성은 데쓰존(8,000m 이상 고산지대)에도, 평지에도 없다. 산에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 위험은 위험하다는 객관적인 사실 때문이 아니라, 바로 사람 때문이다. 이것은 끔찍한 일이다. 끔찍한 것은 등반가들은 자신의 등반을 위해서 어떤 댓가도 다 치르지만, 어려움에 빠진 이들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산속에 있는 늑대와 같다. 무섭다"며 김 대장과는 반대되는 현대 고산등반 산악인들의 실태를 지적했다.



◆등반이 시작될 무렵 김 대장과 사진을 찍은 사울리우스 다뮬비시우스 ⓒSaulius Damulevičius

김 대장의 삶은 이미 산악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브로드피크 정상 정복 전 김 대장과 만나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는 리투아니아에 거주하는 사울리우스 다뮬비시우스(Saulius Damulevičius)는 필자에게 김 대장에 대한 마음을 전했다.

"저는 김 대장을 이번 등반에서 처음 만났지만, 그의 행동은 제게 정말 큰 인상을 줬습니다. 저는 병상 중에 있는 군인들에게 김 대장의 이야기를 해 줄 것입니다. 그들에게 많은 것들을 삶에서 이뤄낼 수 있다는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 그의 이야기를 전할 것입니다."

네덜란드 캄펜 = 김정기 글로벌 리포터 kjgwow@gmail.com

■ 필자 소개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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