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걸려 대기업 갑질 입증됐지만 벼랑 끝 "정부가 피해 업체 구제대책 마련해 줬으면"
[경향신문]
롯데쇼핑 제소…회사는 법정관리
“대기업에서 손해 보상 않는 경우
과징금으로 기업 먼저 살려야죠”
지난 22일 서울 고등법원 제3행정부는 롯데쇼핑(롯데마트)이 제기한 ‘시정명령 등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촉비용 등을 삼겹살 납품업체에 떠넘겼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408억23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던 롯데쇼핑이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진 것이다.
이 판결의 중심에는 갑질횡포를 공정위에 제소한 윤형철씨(50)가 있었다.
전북 완주에서 육가공업체 (주)신화를 운영하는 그는 이번 소송에서 피고보조참가인으로 참여했다. 윤씨는 28일 “롯데마트 갑질이 확고히 입증된 것”이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대기업의 갑질횡포가 사라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윤씨가 롯데마트의 부당함을 호소한 것은 2015년 8월이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은 롯데마트의 판촉비와 컨설팅·세절비용 전가 등 불공정 행위를 인정하고 피해예상금액의 절반 수준인 48억1700만원을 납품업체에 돌려주라는 조정결정을 내렸다. 롯데마트는 조정안을 거부했다. 조정안이 결렬되자 공정거래위원회는 4년간의 실사를 거쳐 2019년 12월 408억2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롯데마트는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대기업을 건드린 납품업체는 온전치 못했다. 거래처가 급감한 회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직원은 10분의 1로 줄었다.
대기업에 맞서는 순간부터 예상한 일이었다. 그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벌이는 동안 회사는 벼랑 끝에 몰린 상태지만 이번 판결이 갑질횡포를 개선시키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갑질피해를 당하고도 7년이 되도록 해결이 안 되고 있는 것은 가해업체에 너무 큰 방어권을 주기 때문입니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대형로펌을 선임해 가해기업이 큰소리치고, 피해기업은 되레 더 곤경에 처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전개됩니다. 대형로펌 선임 비용이면 피해업체 손해를 보상하고도 남지만, 대기업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협력업체를 껴안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더 들더라도 갑을관계, 종속관계 틀을 확실히 해둬야 한다는 데 있는 것이죠.”
윤씨는 정부에 대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국가는 408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받아 도로공사나 철도공사, 터널공사에 쓸 수 있겠지만, 정작 갑질피해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업체는 피해손실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납품업체에 입힌 손해를 보상하지 않는다면 부과된 과징금에서 피해기업을 선 구제할 수 있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대기업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하지 않고 부당함을 바로잡는 중소기업들이 뒤를 이을 수 있어요.”
주변에서는 그를 향해 ‘계란으로 바위를 몇 번 깼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윤씨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서글픈 생각이 든다”고 했다.
“대기업에 갑질피해를 입어 보상받는 것은 당연한데 우리나라 현실은 피해기업은 더 무너져야 하고 가해기업은 큰소리치는 곳이 됐어요. 이런 관행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미래는 어두워요.”
그는 “할 만큼 다했다. 행정소송 판결까지 7년이 걸렸고 그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텨왔다”면서 “이제는 살고 싶다. 대기업은 상생에 임하고, 정부는 피해업체를 회생시킬 구제대책을 마련해 주길 원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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