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표 정책 없고 중도 실종에 多言, '쥴리'보다 위험하다

배성규 논설위원 입력 2021. 7. 29. 15:07 수정 2021. 7. 2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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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선 예비후보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 격려 방문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만난 이후 지지율 하락세가 멈췄다. 윤 전 총장은 이 자리에서 결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면서 국민의힘 입당을 기정사실화했다. 이에 따라 윤 전 총장에 대한 보수층의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크게 줄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반등하고 야권 대표 주자로 입지를 굳히려면 이걸로는 부족하다. 일단 그가 어떤 정치로 나라를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과 노선을 명확히 해야 한다. 윤석열표 대표 정책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못한 채 문재인 정부 비판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국민들의 기대감은 곧바로 실망감으로 바뀔 수 있다. 윤 전 총장은 중도층을 지향하고 호남을 껴안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출마 선언 이후 보여온 행보와 발언은 중도 지향이기보다는 보수 지향에 가깝다. 말로만 중도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리고 잇단 말 실수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구 방문 때 ‘민란’이나 ‘주 120시간 노동’ 등 정제되지 않은 말들로 인해 구설에 올랐다. 야권에선 윤 전 총장의 거침 없는 말투와 다언(多言) 습관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윤 전 총장은 근래 이준석 대표가 자신을 향한 압박성 발언을 쏟아낸 것에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윤 전 총장의 지지율 추세가 위험하다” “안철수 국민의힘 대표가 안 좋을 때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었다. 이 때문에 이 대표와 회동 직전만 해도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참모진들이 “이 대표와 부딪히지 말고 소통하시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준석 현상을 다룬 책을 가져가 사인을 받으라는 제안도 했다. 난색을 표하던 윤 전 총장은 막상 이 대표와 만나자 사인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 선배님에게 많은 것을 배우겠다”며 깍듯이 대했다. 쇼맨십까지 발휘하며 이 대표를 띄워준 것이다. 또 국민의힘에 입당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이 회동 이후 국민의힘과 보수층에서 윤 전 총장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회동을 통해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본 것이다.

국민의힘 측은 윤 전 총장에게 7월 말에라도 입당하라는 뜻을 여러 번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은 아직 외곽에서 국민들과 만나고 중도층과 호남을 견인할 필요가 있다며 그 시기를 늦춰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 캠프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당파와 독자노선파로 갈려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9월 이후까지 국민의힘 외곽에서 중도와 호남을 겨냥한 외연 넓히기를 하면서 나중에 국민의힘과 단일화를 하자는 목소리와 이왕 승부를 볼 거면 빨리 국민의힘 울타리에 들어가서 세력화를 하는 게 맞다는 견해가 부딪혔다. 하지만 지지율 하락과 국민의힘의 압박, 각종 발언과 가족 논란이 이어지면서 입당 쪽으로 무게추가 쏠렸다. 윤 전 총장은 8월 중순 입당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이 대표의 휴가가 8월 9~13일인데 윤 전 총장 측에서 13일 입당 얘기를 하면서 양측간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야당에선 윤 전 총장이 입당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과제가 3가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먼저 윤석열표 비전과 정책이다. 대선 출마 선언 한달이 지났지만 아직 윤 전 총장은 어떤 정치를 하고,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 갈 것인지, 구체적인 윤석열표 정책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질 못했다. 대선주자들이 흔하게 내놓는 1호 공약도 없다. ‘상식과 공정’이란 뜬구름 잡는 얘기 뿐이다. 구체적 비전을 내놓지 못하면 국민은 금방 실망하고 다른 주자에게 눈길을 돌리기 십상이다. 윤 전 총장 측도 이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캠프에서 이를 내놓을 준비가 아직 덜 됐다는 관측이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입당을 늦추고 외곽에서 아웃복싱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중도층과 합리적 진보층으로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윤 전 총장이 출마 선언 이후 보여준 행보와 발언은 국민의힘 노선과 다를 게 거의 없었다. 보수 일색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보·경제 정책과 탈원전 등 대부분이 그렇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내세웠던 것처럼 중도층을 끌어들일 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중도 확장’은 신기루에 그칠 뿐이다. 진중권 전 교수와 김경율 회계사 등 조국흑서파로 대표되는 이른바 ‘탈문진보층’을 끌이들이는 작업도 진전이 없다. 양측 사이는 가깝지만 이들이 윤 전 총장을 직접 돕지는 않고 있다.

윤 전 총장 주변에선 윤 전 총장이 말을 줄이고 좀 더 정제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치밀한 준비없이 말을 쏟아내다 보니 실수가 생기고 구설수에 휘말린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과 인터뷰를 했던 언론사 인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윤 전 총장은 시간 제한을 하지 않고 2~4시간 동안 계속 인터뷰에 응했다고 한다. 통상 대선주자 인터뷰가 1시간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한 질문에 수십분간 답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대선주자의 메시지는 짧고 간결할수록 좋다. 그런데 말이 많아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안해도 될 말, 해선 안 될 말을 하게 된다. 다언(多言)이 실수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윤 전 총장의 아내 김건희씨를 겨냥한 ‘쥴리’ 논란보다 더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쥴리 문제야 사실관계도 명확치 않은 루머이기에 정공법으로 대응하면 넘어설 수 있다. 하지만 윤 전 총장 본인이 폭탄 발언을 하거나 말 실수를 하면 주워담기가 어렵다. 야권 관계자는 “캠프내 메시지팀을 제대로 가동해 짧고 명확하고 정제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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