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나만 불편해? "얼음공주""여우" 올림픽 중계에 뿔난 MZ

정희윤 입력 2021. 7. 29. 16:50 수정 2021. 7. 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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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감동으로 하나되다(United by Emotion)라는 슬로건을 내건 2020도쿄올림픽 개막식이 23일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려 대한민국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L

지상파 방송사의 도쿄올림픽 개막식 방송 논란에 이어 중계 발언에 대해서도 MZ세대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개막식 때부터 올림픽을 챙겨보고 있다는 프리랜서 김모씨(26)는 “상대를 무작정 비방하고 젠더 감수성 떨어지는 발언을 하는 등 너무 옛날식 중계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네이버나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중계를 본다는 그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안 그래도 성희롱,비방,조롱 등 눈살이 찌푸려지는 실시간 댓글에 시달리는데 지상파 방송 해설자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라고 덧붙였다.


‘얼음공주’, ‘여우’, ‘태극낭자’…MZ “구시대적”
지난 25일 열린 양궁 여자 단체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러시아올림픽을 제치고 금메달을 거머쥔 직후 MBC 중계진은 “태극낭자들의 꿈, 올림픽 9연패가 현실이 됐다”며 “얼음공주가 웃고, 여전사들 웃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같은 날 열린 여자 탁구 단식에서 KBS 중계진은 신유빈 선수와 붙은 58세의 룩셈부르크의 니시아리안 선수에 대해 “숨은 동네 고수”, “여우처럼 경기한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개막식에서는 한 외국 선수가 러닝머신에서 달리는 퍼포먼스를 하자 SBS 중계진은 “홈쇼핑 느낌 난다”고 말했다. 이에 직장인 정모씨(30)는 “나도 성인지 감수성이 뛰어나다고 할 순 없지만 이런 중계 발언이 재밌지도 않고 오히려 구시대적이다”며 “외국 선수들을 향한 무례한 발언도 지양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중계방송 부적절한 발언 올림픽마다 있어

2016 리우 올림픽 성차별 발언 아카이빙. 논란의 발언을 한 중계진의 이름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전체 공개된 자료로 아직도 누구나 들어가서 확인해볼 수 있다. 구글 스프레드 시트 캡처

올림픽 중계방송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논란은 꾸준히 있었다. 지난 2016년 한 네티즌은 ‘2016 리우 올림픽 중계 성차별 발언 아카이빙(특정 기간 필요한 기록을 파일로 저장 매체에 보관해 두는 일)’ 파일을 만들었다. 그는 파일 공지문에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해설진들의 성차별적 발언을 기록하고 나아가 각 방송국에 공식 항의해 개선을 요청할 예정이다”며 “누구든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다”고 남겼다.

당시 네티즌들이 문제 삼은 발언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28살이면 여자 나이로 많은 나이”, “살결이 야들야들해 보인다”,“여성 선수가 철로 된 장비를 다루는 게 인상적”이라는 발언 등이다. 이 파일에 기록된 발언은 36개였다.

함은주 스포츠 인권연구소 대외협력위원장은 “스포츠 현장에 아직 남성이 더 많다 보니 이렇게 남성 주의적 시각에 따른 발언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올림픽에서 인종과 성별 등에 따른 차별을 하면 안 되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차원의 가이드가 있다”며 “이런 내용이 각 방송사에도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종차별 해설차 퇴출, 여궁사(X) 궁사(O)

지난 28일 KBS 강승화 아나운서가 장민희 선수를 소개할 때 '여궁사'가 아닌 '궁사'라고 말해 네티즌들 사이에서 반응이 뜨겁다. 트위터 캡처

물론 변화도 있다. 지난 28일 양궁 중계에서 장민희 선수에 대해 소개를 하던 KBS 강승화 아나운서는 장 선수를 두고 ‘궁사’라고 표현했다. 당시 화면에는 ‘승부를 즐기고 승리를 기다리는 여궁사’라는 자막이 나오고 있었다. 강 아나운서가 ‘여(女)’를 빼고 말한 셈이다. 이에 각종 SNS에선 “직업 앞에 ‘남’은 안 붙이면서 ‘여’는 왜 꼭 붙이는지 의문이었는데 세상이 변하고 있다”, “멋있다”, “프로답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해외에서도 방송 중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리스 국영 방송사 ERT 텔레비전은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해설자와의 계약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이 해설자는 지난 27일 남자 탁구 단식 경기에서 우리나라 정영식 선수를 향해 “그 작은 눈으로 (탁구) 공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방심위 “9인 위촉되는 대로 심의 진행할 것”
올림픽 중계방송의 부적절한 발언이 계속되고 있지만, 당장 제재할 방법은 없다. 이를 심의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 9명의 위촉이 완료되지 않아 언제쯤 정상 가동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방심위 위원 9명 중 7명이 위촉됐다. 남은 2인은 지난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추천 건을 의결했다.

방심위 관계자는 “9인이 모두 위촉되고 위원장을 뽑은 후 심의 규정과 절차에 따라 민원을 처리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방심위에 따르면 27일 기준으로 집계된 지상파 방송사 민원은 MBC가 175건, SBS가 1건, KBS는 0건이다. 관계자는 “보통 진행자의 부적절한 발언 등이 접수된다”고 말했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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