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숨진 노부부의 집엔 '체납고지서'만 쌓여 있었다
[경향신문]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27일 오후, 서울 도봉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노부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기초생활수급자인 부부의 냉장고는 비어 있었고, 더위를 피할 에어컨은 없었다. 곳곳에 널린 옷가지 사이로 전기세, 가스요금 고지서가 보였다. 수도요금 고지서에 적힌 체납금액은 19만620원이었다. 이웃은 “여기에 에어컨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다 영세민들인데”라고 했다. 복도에서 마주친 다른 이웃은 “사인이 뭐래요”라고 되묻더니 곧 “날이 워낙 더우니까...”라고 나직이 내뱉었다.
29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부부인 90대 남성 진모씨와 70대 여성 우모씨가 지난 27일 오후 1시30분쯤 도봉구 방학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위층에서 물이 새는 것 같다’는 이웃 주민의 신고에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원이 시신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부패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였다고 한다. 경찰은 시신 부검 결과 부부가 자연사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주민센터와 복지관, 이웃 등의 말을 종합하면,경기 성남시에서 노숙을 하던 부부는 2013년 주거취약층을 대상으로 한 LH 매입임대주택 사업을 통해 이곳에 전입했다. 부부는 연고도, 연락할 자식도 없었고, 이웃과도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누수를 신고한 아랫집 주민 A씨는 “남들이 건들고 관심 갖는 것을 싫어했다”고 했다. 이웃들은 부부가 갑작스레 사망한 원인을 더위 때문으로 추측했다. 옆집 주민 B씨는 “저번 달부터 계속 음식이 쌓여 파리가 끓었다”며 “얼마 전엔 진씨가 탈진해서 2층 계단에 앉아 있는 모습을 봤다. 무더위 영향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관할 지자체는 기초생활수급자인 부부를 집중적으로 관리했지만 조현병·알코올중독 등 정신질환이 있는 데다 도움을 받는 것도 거부해 모니터링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거의 매일 (상황을) 파악했었다”며 “할아버지가 고령에 술을 줄일 생각도 전혀 없어서 일상적인 대화도 잘 안 됐다. 할머니는 조현병이 심했다”고 말했다.
남편 진씨는 당뇨 합병증으로 발가락에 괴저가 진행 중이었지만 이에 대한 치료마저 거부했다. 인근 슈퍼 주인 C씨는 “주민센터 직원이 와서 공짜로 치료받을 수 있으니 병원을 가자고 해도 거부했다”고 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두 분이 자녀가 없어 사실상 보호자인 할머니의 여동생을 통해 입원이나 치료를 8년 동안 많이 시도를 해봤는데 거부했다”며 “생계부터 주거, 의료 등 모든 것을 주민센터에 의지하는데도 문을 잘 안 열어주려고 해서 방문하기가 어려웠다. 할머니가 흉기를 들고 위협할 때도 있어서 더 힘들었다”고 했다.
사회복지관의 서비스도 당사자들 거부로 2018년 말 중단됐다. 부부를 담당한 복지관의 한 관계자는 “당사자의 거절로 서비스를 더 할 수가 없었다”며 “이후에는 주민센터 등을 통해서 잘 지내시는지만 파악했다”고 했다. 이 지역 복지관에서 일하는 한 사회복지사는 “당사자가 서비스를 거부하는 경우 개입할 방법이 없고 이번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경우도 꽤 있다”며 “구나 동별로 이러한 사례들을 모아 통합사례회의를 하고 있는데 여러 기관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면 자기결정권을 넘어 개입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본인이 거부하더라도 위급한 경우에는 강제로 지원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원을 거부한다는 건 관계가 긴밀하게 맺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며 “코로나19 시국이지만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려면 대면접촉 복지서비스나 주변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강은·문광호·민서영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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