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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취직해도 '쥐꼬리'.. 전문직 뛰어드는 직장인들

이은영 기자 입력 2021. 07. 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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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대 일' 경쟁해 취직해도 내 집 마련 못해
승진은 뒷전, 시간 쪼개 공부하는 직장인들
“지금 받는 월급으로는 평생 집 한 채 못 살 것 같아 전문직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대 동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는 이같은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교직에 몸 담은 지 4년이 됐다는 30대 남성 A씨는 “법학적성시험(리트·LEET)를 준비해서 최근에 시험을 봤는데, 교사하다가 로스쿨 가신 분들 있으면 조언해달라”며 “교사 월급이 너무 적어서 전문직으로 이직하려 한다”고 썼다.

게시글에는 “임용고시 준비생인데 급여 면에서 벌써부터 아쉬운 생각이 들어서 올해 로스쿨 지원 준비도 하고 있다”, “무조건 교사보다는 변호사다”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자신을 교사라고 소개한 B씨는 “교사 월급이 너무 적어서 흙수저는 길이 안 보이더라”면서 “부동산 폭등에 물가 상승으로 교사 월급은 가치가 너무 떨어졌다. 교사는 안 뽑는데 업무량은 늘고 있어 미래가 안 보인다”고 적었다.

지난 5월 2일 오전 대구 북구 엑스코(EXCO)에서 열린 '대구도시철도공사 2021년도 신입사원 채용 필기시험'에서 응시생들이 2m 거리두기 한 책상에서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이날 일반직은 96명 선발에 3천547명이 지원해 36.9대 1, 청원경찰은 75대 1, 기계직은 153대 1의 경쟁률을 각각 기록했다. /연합뉴스

최근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투자’ 등 금융투자 열풍이 불면서, 이미 수년간의 시험 등을 통해 취업한 직장인들 사이에서 전문직 이직 바람이 불고 있다. 이들은 “힘들게 취업했지만 월급으로 저축해봐야 퇴직할 때까지 집 한 채도 사지 못할 것 같아 ‘전문직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C씨는 작년부터 공인회계사(CPA)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C씨는 “직장생활 한 지 7년이 됐는데도 저축한 돈은 1억이 안 된다. 연차가 쌓여도 돈이 모이지 않아 회계사에 도전하게 됐다”라며 “승진이나 직장 내 평판은 포기하고 매일 칼퇴근을 하고 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휴식이나 취미생활을 할 틈도 없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는 C씨는 “빨리 합격하고 싶어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쓴다”며 “출근 전 스터디카페에서 2시간 공부하고 퇴근 후에는 집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4시간 정도 더 공부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D씨도 매일 퇴근 후에 리트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D씨는 “취업난을 겨우 뚫고 입사했는데 업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에 비해 처우도 좋지 않고 월급도 너무 적어 진로를 틀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힘들 거면 돈이라도 많이 버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더 늦기 전에 시험 준비를 시작하게 돼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잠깐 휴직을 하고 공부에 집중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전문직 이직 붐은 시험 응시율에도 반영되고 있다. 올해 리트와 CPA 시험 응시율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25일 치러진 2022학년도 LEET 지원자는 역대 최고인 1만3955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1만2244명)보다 14%가량(1711명) 증가한 수치다. 최근 5년간 LEET 지원자 수는 2017년 8110명에서 2018년 9400명, 2019년 1만502명, 2020년 1만1161명 등으로 매년 그 수가 늘고 있다.

앞서 지난 2월 1차 시험이 치러진 CPA 시험도 역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CPA 지원자 수는 1만3458명으로 최근 10년간 최고치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CPA 시험 지원자 수(1만874명)보다 24%가량 늘어난 수치다. CPA 시험 역시 지원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 2019년 9677명이던 지원자 수는 지난해 1만874명으로 늘었고, 올해도 증가세를 이어갔다.

전문가들은 공무원 등 직장인들이 전문직 시험에 뛰어드는 현상은 자산 가치가 폭등하고 노동 가치가 떨어지면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긴 탓이라고 진단했다.

신관호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예전엔 공무원이나 일반 직장인의 소득으로도 저축하거나 부모 지원을 받으면 집을 장만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게는 불가능할 정도로 집값이 높아졌다”면서 “과거처럼 월 200~300만원 소득으로는 편하게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전문직에 도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도 “대기업에 입사하는 청년들이 전체의 10%인데 그들조차도 월급만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기 일쑤”라면서 “취업을 해도 생계가 안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특히 연봉이 상대적으로 낮은 문과 계열 청년들은 회계사나 변호사가 그나마 계층 상승이 용이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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