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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뱀 서사·성녀 창녀 프레임.. 여성혐오 집약체 '쥴리'

한성주 입력 2021. 07. 30. 07:02 수정 2021. 07. 30.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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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외벽에 대권 주자 윤석열 예비후보의 부인 김 모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에는 '쥴리의 꿈! 영부인의 꿈!'과 '쥴리의 남자들' 등의 문구가 담겨있다. 2021.07.29. 박효상 기자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야망있는 표정을 지은 금발 여성 옆으로 ‘쥴리의 꿈! 영부인의 꿈!’ 문구가 들어갔다. ‘쥴리의 남자들’이라는 제목 밑으로 아무개 의사, 조 회장, 아무개 평검사, 양 검사, BM대표, 김 아나운서, 윤서방 검사 등이 나열됐다. 서울 종로구의 한 중고서점 외벽에 등장한 벽화다. 영부인이 장래 희망인 여성 쥴리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들과 교제하며 목표에 다가선다는 게 벽화에 내포된 서사다.

쥴리는 이른바 ‘윤석열 X파일’에 등장하는 여성이다. 지난달 한 보수진영 정치평론가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그의 처가에 대한 의혹이 담긴 윤석열 X파일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이후 해당 파일에 윤 전 총장의 아내 김 모씨가 강남의 유흥업소에서 쥴리라는 예명을 쓰며 일했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소문이 퍼졌다. 요컨대 쥴리는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문서파일에 적혀있다고 알려진,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인 셈이다.

구전설화 속 쥴리의 인기는 압도적이다. 실존 인물인 윤 전 총장도 아직까지 벽화의 주인공이 된 이력은 없다. 쥴리는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유권자 모두의 관심을 받고 있다. 29일 종로구 벽화 앞에는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보수 성향의 유튜버들이 벽화를 가리기 위해 차량 3대를 나란히 주차했다. 이들은 확성기로 음악을 틀고 쥴리를 비방하는 벽화에 항의했다. 반면 여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벽화를 내건 서점의 주인에 응원을 보냈다.

쥴리로 인해 여야 지지층의 결집은 한결 공고해졌다. 쥴리 뒤에서 여야 정치권은 이득을 봤다. 미학자이자 비평가로 활동 중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저 짓을 하는 이들, 그 짓에 환호하는 이들의 인성에 기입된 정치적 폭력성이 나를 두렵게 한다”며 “그 자체도 무섭고 섬뜩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그 바탕에 깔린 여성 혐오가 혐오스럽다”고 날을 세웠다. 정치권이 여성을 정쟁의 도구로 삼았다는 지적이다.

윤 전 총장과 김 모씨는 쥴리와 관련된 소문이 거짓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 모씨의 과거를 검증하려는 사회적 폭력은 지속되고 있다. 여성 정치 전문가들은 김 모씨와 쥴리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과 사회에 팽배한 여성혐오적 요소를 꿰뚫는다고 분석했다. 쥴리는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의 집합체다.

여성 향해 굴절된 공격성

김 모씨는 검증의 대상이 아니다. 야권 대선 후보로 나선 사람은 윤 전 총장이며, 김 모씨는 정치적 활동 경험이나 계획이 전무하다. 류형림 한국여성민우회 상근활동가는 “철저히 검증받아야 하는 사람은 윤 전 총장인데, 엉뚱하게도 그의 아내에게 사회적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류 활동가는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후보자에 대한 검증보다, 후보자의 여성 배우자나 딸의 외모가 이슈로 떠오르는 일이 반복됐다고 강조했다. 지난 19대 대선에서는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후보가 ‘국민 장인어른’으로 부상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시정활동과 무관한, 아내 강 모씨 성형시술 의혹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류 활동가는 “이런 현상의 근간에는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이해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깔려있다”고 비판했다.

성녀 창녀 프레임

김 모씨의 과거와 쥴리의 인생사는 국가의 안위와 하등 상관이 없다. 공동체가 개인의 삶을 손가락질할 권한도 없다. 하지만 여성의 성이력은 쉽게 사회적 판단을 받는다. 비난을 당해야 마땅한 여성과 보호해야할 여성으로 양분된다. 페미니즘 철학자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두드러지는 여성이 등장하면, 대중은 남성 중심적 잣대로 그 여성의 행실과 순결성을 검증한다”고 설명했다. 남성 인물은 현재의 능력으로 평가받지만, 여성 인물은 과거의 행적과 사생활까지 모두 들춰내 문란하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든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성녀’의 조건에 들어맞지 않는 행실이 발견된다면, 현재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부도덕한 여성’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다. 윤김 교수는 “정치권의 네거티브전을 보면 여성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주체성 박탈

쥴리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위치는 대통령의 아내다. 쥴리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의사, 사업가, 검사 등 남성들의 높은 사회적 지위에 편승한다. 이용한다. 류 활동가와 윤김 교수는 전형적인 ‘꽃뱀 서사’와 ‘객체화’라고 설명했다. 이런 인식이 지배적인 세상에서 여성에게 허락되는 최고의 성취는 남성 권력자의 옆자리다. 윤김 교수는 “여성은 신체적 매력을 자본으로 활용해 남성들로부터 이익을 취하는 존재라고 여기는 비뚤어진 인식이 쥴리를 통해 표출됐다”고 분석했다. 류 활동가는 “쥴리가 남자였다면 이성을 많이 만난 과거는 과오가 아니라 무용담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castleowner@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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