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고통, 남산 '그곳'의 흔적들

2021. 7. 30.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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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발자국] 62. 서울 남산 : 남산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야 임마,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 어디야?"
"한라산이요."
"이 새끼, 너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 맞아? 한라산은 무슨! 남산이지."

남산 중턱에는 서울유스호스텔이라는 큰 건물이 있다. 무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남산을 올라 그 앞에 서자 1970년대 초 중앙정보부(약칭 중정)에 끌려가 조사관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이곳은 옛 중정 본관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사관 말이 맞았다. 남산은 무소불위의 최고 권력기관인 중앙정보부가 있었던 곳이니,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산은 한라산이 아니라 남산이었다. 일상적으로 남산으로 통했던 중정은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 이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곳이었고 "남산에서 나왔다"고 하면, 모두가 벌벌 떨었다.

▲ 서울 유스호스텔로 변한 옛 중앙정보부 본관 ⓒ손호철

이제는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이 바뀌고 강남으로 이전한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정권이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뒤 미국 중앙정보부(CIA)를 모델로 만든 정보기관으로 영문명도 KCIA였다. 물론 중앙정보부가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자신들의 모토대로 음지에서 이름 없이 묵묵히 일하며 대한민국의 안보에 기여한 것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안보를 위한 해외활동만을 하도록 되어 있는 CIA와 달리 중앙정보부는 국내외 활동을 모두 했으며 국가안보보다는 정권의 안보, 아니 정확히 이야기해 박정희의 안보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즉 박정희의 사설 정보기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정치인, 언론인, 재야운동가, 학생운동 지도자들이 끌려가 고문을 당해야 했다. 악명 높은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 조작간첩도 무수히 만들어졌다('손호철의 발자국' 27. 대구 인혁당 : <한국일보> 2021년 2월 8일자 참조).

1973년 서울법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유럽간첩단사건과 관련되어 조사를 받다가 시체로 발견된 최종길 교수도 희생자 중 한 명이다. 정부는 그가 간첩 혐의를 시인하고 투신자살했다고 밝혔지만, 그가 조사과정에서 고문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를 조사한 가족들과 인권기관들의 주장이다. 하다못해, 공화당 의장인 김성곤이 트레이드마크인 콧수염을 모두 뽑히는 등(그는 정계를 은퇴해야 했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유신 직전인 1971년 야당의 내무부장관 해임안에 동조한 여당의원들이 줄줄이 이곳에 끌려와 곤욕을 치러야 했다.

중앙정보부는 출발부터 본래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초대 정보부장인 김종필 아래서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정권의 권력기반이 될 공화당을 창당하고 정치를 주도해 가는데 필요한 정치자금 마련을 위해 위장 증권회사를 만들어 주가를 조작하는가 하면 외화 획득을 위한 워커힐 호텔을 건설하고 일본으로부터 새나라자동차와 '파친코'를 수입하도록 허가해 주면서 거액을 챙겼다. 이 4대 의혹사건으로 김종필은 중앙정보부장직을 내놓고 일본으로 외유를 떠나야 했다.

▲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이 1962년 도쿄에서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위키미디어커먼스 사진.

주목할 것은 중앙정보부의 불법 활동은 국내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앙정보부는 1960년대 후반 윤이상, 이응로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포함해 유럽에서 활동 중이던 지식인들을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을 방문해 북한과 접촉했다고 납치한 '동백림 간첩단 사건'으로부터 유신 선포 후 일본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납치해 끌고 온 '김대중 납치사건', 중앙정보부장을 지내다가 권력에서 밀려나자 미국으로 도주해 박정희를 비판하던 김형욱을 파리로 유인해 살해한 '김형욱 사건' 등 불법 해외공작도 서슴지 않았다('손호철의 발자국' 13. 통영 : 동백림 사건, <프레시안> 2021년 4월 5일자 참조).

"야 임마, 이 유인물 네가 만들었지?“
"제가 안 만들었는데요."
"그럼 안 만들었다는 증거를 대!"
"아니 어떻게 안 했다는 증거를 댑니까?"
"누가 했는지 불면 네가 안 했다는 것이 증명되는 거고, 그렇지 못하면 네가 한 거야!"

유스호스텔로 변한 본관에서 왼쪽으로 돌아 남산 쪽으로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면 터널이 나온다. '소릿길 터널'이라고 새로 이름을 붙인 이 터널에 들어서 버튼을 누르면 철문 소리, 타자기 소리, 물소리, 발자국 소리 등 중앙정보부의 조사과정을 상징하는 소리들이 터널 속에 울려 퍼진다. 그 소리를 듣자 70년대 학생운동을 하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당한 이 황당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 조작간첩을 만들어 냈다는 평을 받는 대공수사국으로 가는 터널. 지금은 소릿길 터널로 이름을 지어 물소리, 타자기 소리, 발자국 소리 등 중정 조사 과정의 고통스러운 소리의 기억을 재현해 놓았다. ⓒ손호철

이제는 많이 없어졌지만 중앙정보부를 서너 차례 끌려갔다 온 뒤 생겨난 것이 슬리퍼 소리 공포였다. 이곳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조사를 받은 뒤 조사결과를 가지고 나간 조사관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 특히 조사관이 조사실로 돌아오는 슬리퍼 소리였다. 슬리퍼 소리가 가까워지면 내 진술이 그들의 시험을 통과해 훈방될 것인가, 아니면 "이 자식 거짓말 하지 마!"하며 고통스러운 고문과 심문의 시간이 시작될 것인가, 가슴 조이게 된다. 터널에서 다시 소리를 듣자 이제는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슬리퍼 소리 공포가 되살아났다.

이 터널은 간첩들을 잡아 조사하던 제5별관 대공수사국으로 들어가는 도로로, 과거에는 이 터널 끝에 이중 철문이 있어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눈을 가린 피의자들이 이곳에 도착하면 철문을 열어줘 '꽝' 소리를 들으며 지옥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공포의 대공수사국은 이제 서울특별시 중부공원 녹지사업소로 변했다. 그러나 건물 뒤로 가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간첩 피의자들은 이곳까지 차로 실려와 곧바로 지하조사실로 끌려 내려갔는데, 이곳에 비하면 다른 곳의 고문은 안마 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혹독한 고문으로 간첩들을 제조해냈다. 지옥으로 향하는 이 계단을 보고 있자, 서도원, 도예종 등 혹독한 고문 끝에 간첩으로 몰렸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들의 얼굴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 공포의 대공수사국은 서울시 남산별관으로 변했다. 하지만 건물 뒤로 가면 지하취조실로 가는 계단이 남아 있다. ⓒ손호철

터널을 나와 다시 본관 쪽으로 내려와 민주인사들에게 익숙한 6국 쪽으로 향했다. 정치인들과 학생운동 지도자 등 민주화 운동 관계자들을 감시, 사찰, 취조하던 6국은 조사대상을 인격체가 아니라 살덩이로 취급하고 고문해 살이 터져나간다는 의미로 '육(肉)국'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6국으로 가려면 본관 앞을 지나가야 하는데 본관 건너편에 지하시설 앞에 문이 닫혀 있었다. 그 앞에 설치되어 있는 설명판을 보니 6별관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6별관은 본관에서 지하로 연결되어 있는 유명한 벙커, 고문실로 지하 3층으로 되어 있고 정치인, 언론인 중 강한 고문이 필요한 '악질'들을 조사하던 곳이라고 한다.

▲ 정치인, 언론인 중 악질을 끌고가 고문을 했던 지하실인 6별관은 문이 굳게 닫힌 채 설명판만 설치되어 있다. ⓒ손호철

6별관을 지나 남산을 조금 내려가다 보면 서울시 소방방재본부와 최근 개장한 남산 예장공원이 나타난다. 예장공원에는 특이한 모양의 새빨간 건물이 나타난다. 지상 3층, 지하 2층의 6국 건물을 철거하고 세운 '기억6'이라는 곳이다. 6국을 기억한다는 의미의 '기억6'은 옛 중앙정보부의 시설 중 유일하게 중요한 역사적 유적을 남겨 놓은 곳이다. 즉 지하에 6국의 조사실 하나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회색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조사실에는 밝은 백열등 아래로 하얀 책상과 조사관의 조금 고급스러운 의자와 피의자의 딱딱한 의자만이 덜렁 놓여있다.

이를 보고 있자, 70년대 이곳에서 조사를 받던 기억이 되살아나고 대학 동기인 김효순 등 이곳에서 조사를 받은 70년대 가장 대표적인 학생운동 사건인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곳에는 옛 중정요원의 넋두리 형식으로 중정의 인권침해 등에 대한 자기변명을 들려주고 있는데 그 중 재미있는 것은 '의심의 과학화'라는 표현이다. 그러나 실제 벌어진 것은 '의심의 과학화'가 아니라 화가에게 "빨간 색을 많이 쓰는 걸 보니 빨갱이 아니냐"는 식의 '의심의 황당화'였고, 그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국민들이 희생을 당해야 했다.

▲ 민주 인사들이 가장 많이 잡혀가 조사받은 6국은 철거됐고, 대신 6국을 기억한다는 '기억 6'이라는 건물이 들어섰다. ⓒ손호철
▲ '기억 6'에 재현해 놓은 중앙정보부의 전형적인 취조실 ⓒ손호철

역사적으로 묘한 것은 박정희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을 위한 권력기관이었던 중앙정보부의 부장인 김재규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암살에 연루된 죄로 전두환 시절 힘이 대폭 약화됐고 이름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바뀌었다. 이후 강남으로 이전했고 김대중 정부가 다시 이름을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바꿨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은 '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를 만들어 자기 개혁의 노력을 했다. 하지만 2016~2017년 촛불항쟁 후 이루어진 최근의 조사가 잘 보여주듯이, 예전과 같은 고문은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명진 스님 등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과 정치개입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근본적으로 금지시키고 근본적으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그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야당의 반발 등으로 국정원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대신에 2020년 12월 57년만에 국정원법을 개정해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고(3년 유예) 정치관여 우려가 있는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조직 설치를 금지했다.

남산을 내려오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엄습했다. 남산은 우리 현대사에서 너무나 중요한 현장인데 제대로 보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신시설 등 안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시설들을 파괴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서울시가 주요 건물들을 유스호스텔이나 서울시 별관 등으로 사용하고 6국, 지하 벙커로 불리는 6별관 등을 해체한 것은 역사의식이 없다고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고 김근태 의원이 고문을 당하고 서울대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한, 경찰의 중요한 고문 현장인 남영동 분실을 보전해 인권교육장(민주인권기념관)으로 만든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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