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오디션, 미 음반사와 협업, 강력 팬덤 구축..K팝 열풍 방정식
보아, 일본서 데뷔 후 미국도 진출
블랙핑크·갓세븐, 글로벌 맞춤 공략
미 음반사, 팬덤 규합 등 아웃소싱
글로벌 시장서 장르가 된 K팝
한국, 작년 45% 가장 빠르게 성장
'거물' 스쿠터 브라운, K팝 산업 합류
팝 본고장 미국도 한국 노하우 배워
[SPECIAL REPORT]
‘K팝 3.0’ 그 뜨거움의 비밀
이제 BTS가 빌보드 차트를 뒤흔들어도 놀라지 않는 시대가 됐지만,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음악산업 지도에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치를 제대로 찾아 그려넣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21세기 들어 아시아권에서는 ‘한류’라는 새로운 흐름이 떠올랐지만 ‘아시아의 별’ 보아(BoA), ‘월드 스타’ 비(Rain)를 알아보는 서구인은 소수의 마니아 집단에 불과했다. 2005년 유튜브가 미디어 혁명을 일으키며 K팝 세계화에 근본적인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으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등장해 판을 키우기 전까진 철저히 ‘그들만의 리그’였다.
하이브, 미국판 K팝 보이 그룹 채비
중요한 것은 K팝을 두고 글로벌-로컬 간의 시차가 이미 발생했고, 그 간극이 빠른 속도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타임과 같은 세계의 유력 매체들은 BTS를 “지구상 최고의 보이밴드”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80~90년대 듀란듀란이나 뉴키즈 온더 블록처럼, 이제 한국의 팝 그룹이 전 세계 최고의 아이돌로 등극한 것이다.
BTS의 성공이 독보적이긴 하지만, K팝 전반의 위상 역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60년대에 비틀스가 ‘브리티시 인베이젼’이라는 유행을 선도했던 것과도 유사하다. 올해 열렸던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는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에 오른 총 다섯 팀의 후보 중 무려 세 팀이 한국 아티스트였다. 몇 년째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걸그룹이자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블랙핑크와 일본을 비롯해 K팝 커뮤니티 내에서 가장 두터운 팬을 보유한 팀 중 하나인 세븐틴이 수상자인 BTS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게다가 K팝과 유사한 제작 노하우에 바탕을 둔 필리핀 보이그룹 SB19까지 포함하면 범 K팝 아티스트들이 현재 미국 현지의 소셜 미디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지금까지 K팝 현지화 기술의 발전은 대략 3단계의 틀 안에서 진행되어 왔다. 첫 번째는 한국 아티스트에게 언어와 문화를 교육시켜 현지용 아티스트로 키워내는 것이었다. 먼저 주목한 나라는 일본이었고, 선두 주자가 보아였다. SM엔터테인먼트가 ‘신비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30억원을 투자해 보아를 한국과 일본을 동시 공략하는 가수로 트레이닝했다. 춤과 노래는 물론 영어와 일본어 교육을 받으며 J팝 가수로서 정체성을 만든 보아는 2002년 일본어 앨범을 시작으로 활동을 개시했고, 일본 시장 점령 후 그 성공을 발판으로 2009년 영어 앨범 ‘BoA’를 발매해 K팝 가수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에 진입했다.
최근 K팝 기업들이 약속이나 한 듯 새로운 현지화 프로젝트를 속속 발표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미국과 일본 등 외국 회사들과의 합작을 통한 현지용 K팝 그룹을 뽑는 오디션을 개최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가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수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핵심적 팬덤을 확보하는 동시에 그 과정 자체를 상품화시키는 방식은 이미 K팝이 국내에서 유효성을 검증한 성공모델이기도 하다.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팝의 중심인 미국과의 협력이다. 하이브(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미국 최대 음반사인 유니버설 뮤직 그룹(UMG) 산하의 게펜(Geffen)레코드와 함께 미국판 K팝 보이 그룹을 만들 예정이며, CJ ENM은 HBO MAX와 함께 남미 K팝 보이그룹 선발 경연 프로그램을 론칭한다. SM은 MGM과 합작해 자사의 보이그룹 프로젝트인 NCT의 미국 유닛인 NCT 헐리우드를 뽑기로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K팝은 필연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도대체 K팝은 무엇인가? 한때는 외국에 알려진 한국의 주류 음악이나 아이돌 정도를 의미하는 말이었지만, 이제 K팝은 하나의 장르, 산업, 혹은 카테고리로서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얼마 전 경제면을 장식한 충격적인 뉴스가 하나 있었다. BTS의 소속사인 하이브가 미국 기업인 이타카(Ithaca)를 인수했다는 소식이다. 미국 최고의 아티스트 매니저이자 레코드계의 거물인 스쿠터 브라운(Scooter Braun)은 2010년대 미국 최고의 아이돌 스타인 저스틴 비버를 발굴해 길러낸 인물로, 미국 틴 팝 산업뿐 아니라 싸이 등 해외 가수의 미국 내 프로모션을 돕는 절대적인 권력자로 군림해왔다. 그런 그가 회사의 지분을 하이브에게 넘기고 이사회의 일원으로 사실상 K팝 산업에 합류를 결정한 것이다.
한국에서 K팝의 해외 인기에 갸우뚱하고 있는 사이, 정작 산업을 움직이는 주체들은 바람의 방향을 정확히 읽고 기민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의 최첨단에 서 있는 이들은 미국 내 K팝의 성공을 이미 기정사실화 했고, 이 멈추지 않는 경주마에 누가 더 선제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베팅할 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려 있다.
미국, 한국 아이돌 육성 기술력 인정
BTS의 미국 주류시장 정복을 통해 그 실체가 입증된 K팝은 이제 마니아들의 흥미로운 하위문화나 인터넷 바이럴 수혜자라는 위상을 넘어 주류 산업의 주요 카테고리이자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BTS를 가능케 한 K팝만의 제작 노하우와 훈련 방식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BTS가 미국 대중음악 시장을 전복시킨 핵심적 주체인 ‘아미’ 그러니까 ‘팬덤’에 대한 관심이 있다. 스쿠터 브라운이 하이브의 일원이 되기로 결정한 것, 그리고 미국 음반사들이 그들이 전통적으로 점해온 틴 팝 산업을 K팝에게 사실상 아웃소싱하려는 제스쳐를 보이는 것도 결국 K팝이 가진 정교한 제작 노하우와 온라인 앱 등을 중심으로 한 팬덤 규합 및 그들과의 소통 능력에 있다.
팬들의 취향을 읽고 그들과 소통하는 능력에 있어서 이미 K팝은 미국 시장의 틴 팝 산업이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이르러 있다. 이미 지난 10년간 세계 시장을 뒤흔든 틴 팝, 즉 10대를 위한 아이돌 음악 산업의 트렌드는 한국이 리드하고 있으며, K팝의 압도적인 팬덤 구축 능력은 팝의 본고장인 미국을 이미 추월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대중음악 산업에 있어서 수십 년 앞선 노하우와 인프라를 가진 미국 시장이 ‘아이돌’이라는 카테고리에 한해 K팝의 기술적 우위를 인정하고 이 산업에 주도적으로 동참하고자 하는 것이다.
K팝은 이제 세계 대중음악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리드할 수 있는 주도권을 잡았다. 미국과 서구권이 오랜 세월 구축해온 절대적인 위상이 당분간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K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이제 그 무대는 아시아를 넘어 북미와 남미의 중심을 향하고 있다.
김영대 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 여기의 아이돌-아티스트』 『BTS:THE REVIEW』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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