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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 이재용, 이 사람이 아버지를 이기는 길

윤춘호(논설위원) 기자 입력 2021. 07. 31. 08:57 수정 2021. 07. 3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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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사람에게는 원죄가 있다. 자신의 손으로 쌓아 올리지 않은 부와 명예를 가진 것, 이것이 이 사람의 원죄다. 이 사람이 지난 몇 년 동안 겪은 일들은 모두 그 원죄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성은 내 아버지가 만들고 내가 키웠으니 당연히 내 아들에게 물려주겠다는 아비의 심정은 본능이다. 문제는 물려받는 것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치렀는가 하는 것이다. 재벌에 대한 반감이 강한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은 더욱 엄격해진다. 2016년 이후 5년 동안 2번 구속되고 70차례가 넘는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은 것도 모두 그 원죄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유 말고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돈이 많으니 돈과 함께 오는 불행의 크기도 큰 사람이다. 물론 자신이 스스로 불러들인 불행도 그에 못지 않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최고 권력자와 그 하수인에게 86억 원의 뇌물을 주었고 그 죗값으로 2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아 현재 서울구치소에서 복역 중인 사람, 이재용 이야기다. 숱하게 많은 사연이 있고 숱하게 많은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렸지만 정작 본인 입으로 자신에 대해 말한 적은 거의 없다. 서울구치소 1.9평 독방에서 54년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이 사람을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대신 지난 몇 년간 이 사람을 가까이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재용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고 그의 내일을 헤아려봤다.

특별검사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는 이재용


2. 2016년 이 사람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되었을 때 미래전략실장 최지성이 처음으로 면회를 다녀온 뒤 미래전략실 주요 참모들을 불러모았다. 최지성이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이재용이 앞으로 특별검사 조사를 받기 위해 교도소 밖으로 나갈 때 사복이 아닌 교도소에서 나오는 죄수복, 수의를 입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는 교도소 밖으로 나갈 때 사복과 수의 중에서 무엇을 입을지는 본인의 선택이었다. 최지성은 삼성전자 사장 이인용의 생각을 물었다. 이인용은 수의를 입을 경우 글로벌 기업 삼성이 입을 이미지 타격을 우려해 반대의 뜻을 밝혔다. 그리고 최지성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부회장은 왜 그렇게 하겠다고 하시나요?" 최지성이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수의를 입은 자기 모습을 보고 싶어하니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야." 최지성은 이인용에게 면회를 가서 이재용을 설득하라고 지시했다. 그 다음 날 서울구치소로 찾아간 이인용은 이재용에게 길게 말하지 않았다. "어제 실장님한테 말씀 들었습니다. 사복 입고 나가시죠." 이재용은 그 다음 날 사복 차림으로 특검 사무실에 출석했다.

2016년 이후 이 사람의 말과 행동은 감옥에 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지만 그 원죄를 씻으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자신을 향한 대중의 분노는 자신이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서고, 감옥에 갇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는 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죄를 지은 범죄자가 아니라 씻김굿의 희생양이라는 생각은 이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지난 해 5월 이재용은 삼성 경영권을 더 이상 후대에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내용의 대국민 선언을 직접 발표했다. 삼성준법감시위가 권고한 내용을 거의 100% 수용한 이 발표에는 선대의 유훈인 무노조 경영을 포기하겠다는 것, 시민사회단체와 적극 소통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인용은 국민들이 원하는 모습이 있으니 그에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한다는 이재용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가 삼성을 향해서 퍼붓는 비난이든, 공격이든, 혹은 바람이든 거기에 대해서 내가 적극적으로 답을 해주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봐요. 내가 죄수복을 입는 것, 그것을 국민들이 원하면 그렇게 하자라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그 발표가 나왔다고 봅니다."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지난 3월 맹장이 터져 대장까지 썩어갔지만 외부 치료 권고를 거부한 채 구치소 안에서 아픈 배를 움켜쥐고 이틀을 버텼다. 극심한 통증은 맹장이 터지기 사흘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외부 치료 권고를 한사코 거절했다. 맹장이 터지고 이틀이 지난 뒤에야 삼성서울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이 때 후유증으로 체중이 8kg이나 줄었고 대장의 일부까지 잘라내야 했다. 고행을 자초하는 듯한 느낌이다.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말을 듣기 싫다는 게 외부 치료를 거부한 이유였지만 이 사람은 이 고통 역시 원죄를 씻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3. 모든 최후진술문은 명문이다. 자신의 운명을 좌우할 최후의 심판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니 절박하지 않을 리 없고, 그 절박함이 명문을 만든다. 이재용은 세 차례에 걸쳐 최후 진술을 했다. 그 중에서도 2017년 12월 항소심 최후 진술은 새겨들을 만하다. 이렇게 절박한 이야기가 이 사람 입에서 나오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은 2심에서도 석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였고 국정농단 엄단, 적폐 척결 요구가 교도소 담장을 넘어 그의 독방으로 흘러 넘치던 시절이었다. 2천400자 분량의 최후 진술은 이 사람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기에 나왔다. 도대체 미래가 보이지 않던 시점에서 이 사람은 자신의 꿈, 자신의 인생 목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희망을 향한 독백처럼 들린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이 묻어 있다.

"재판장님. 외람되지만 제가 갖고 있었던 인생의 꿈을, 인생의 목표를, 경영인으로서, 기업인으로서의 꿈을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제 능력을 인정받아 창업자이신 이병철, 이건희 회장님 같이 성공한 기업인으로 이름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제 꿈은 삼성을 이어받아서 열심히 경영해서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제가 받아왔던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사회와 나눌 수 있는 참된 기업인으로 인정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재벌 3세로는 태어났지만 선대서 이뤄놓은 우리 회사를 오로지 제 실력과 제 노력으로 더 단단하게 더 강하게 또 가치 있게 만들어서 저 자신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꿈이었고 기업인으로서 목표였습니다."

인정받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는 말이 애처롭게 반복된다. 누구의 손자, 누구의 아들이 아니라 이재용으로 인정받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실타래가 꼬여도 너무 꼬였고' 자신에 대한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시간이 간다고 이 얽힌 실타래가 풀릴 것 같지도 않다. 말 그대로 인생의 바닥이었다. 그래도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 엉클어진 이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모든 사람이 자신을 비웃고 조롱하는 듯한 상황에서도 가야 할 방향까지 잃은 것 같지는 않다.
책임을 진다는 말이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사법 처벌을 받는 상황은 도리 없이 받아들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확고하다. 재벌의 아들로 태어난 '죄'는 있지만 자신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최고 권력자에게 뇌물을 줬다는 검찰의 기소는 결단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람의 최후 진술에는 '참회'와 '송구' '반성'이라는 말이 넘치고 '모든 것이 자기 책임'이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라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전히 억울하다.
 
"삼성물산 합병으로 제가 국민연금에 손실을 끼치고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고 의심하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부족하고 못난 놈이라도 서민들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고 제가 그런 욕심을 내겠습니까. 너무 심한 오해로 정말 억울합니다. 이 오해만은 꼭 풀어주십시오." (이재용 1심 최후 진술 중)

4.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애매한 기구다. 법적인 근거를 가진 것도 아니고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권고에 따라 급조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삼성의 변화를 주도하는 기구다. 바탕은 허약한데 힘은 막강하다. 적어도 삼성 안에서 이 기구는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한다. 법에 근거하지 않은 임의기구라서 오히려 법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역설을 보여준다. 외부의 목소리를 삼성에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삼성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게 이 기구의 설립 목적이었다. 이 기구를 주도하는 사람이 전 대법관 김지형이다. 대법관을 지내고 몇 차례의 고위 공직 제안을 거절했던 김지형이 위원장직을 수락한 것은 삼성이 한국 사회에서 일개 기업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김지형 전 대법관


"많은 사람들이 말렸고 저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삼성을 보는 시선이 크게 엇갈리는데 그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삼성이 어떤 형태로든지 좀 더 새로운 역할, 국제 사회에서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족쇄가 되는 것, 발목을 붙잡는 것을 없애 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제안을 수락한 거고요."

-법적인 근거가 없고 이재용의 구명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이니 이재용의 말 한마디면 없어지는 기구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임의 기구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는 이유로 회사 쪽에서 이 기구를 백지화시킨다면 회사가 감당해야 할 부담도 엄청날 겁니다. 그래서 제가 위원장직 제안을 계속 고사하다가 총수를 직접 만나서 이 기구의 존재와 역할, 영속성을 개런티 받고 그것을 공개하는 조건으로 수락한 겁니다."

지난해 위원회 출범 이후 두 사람은 5번 만났다. 공개적인 만남도 있었고 비공개적인 만남도 있었지만 술잔을 기울이는 편안한 만남은 없었다.

-이재용 인상은 어땠습니까.
"생각했던 것과 비슷했어요. 젠틀하고 예의 바르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말수가 굉장히 적어요. 그건 이건희 회장과도 비슷한 거 같아요. 가족 내력인지도 모르겠는데 말수는 적은 편이예요. 달변 스타일도 아니고…. 이재용을 여러 번 만나면서 인간적으로 너무 힘들게 태어났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 '너 이재용 같은 삼성가 자식으로 태어날래' 하고 물으면 그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옆에서 지켜 보니 참 힘든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때로는 부드러운 조언이었지만 때로는 거친 압박일 때도 있었다. 지난 해 5월 대국민 발표와 관련해 삼성 내부에서는 이재용이 직접 나서는 것에 대하여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휴가 중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김지형은 발표 하루 전날 이재용을 만났다.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나는 발표를 이 부회장이 직접 하는 것이 이렇게까지 고민할 사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총수가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을 비교하면 답이 너무 뻔한데 만약 이재용 부회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발표를 한다면 준법감시위 입장에서는 공개적으로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힐 것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압박이 통했던 것일까, 이재용은 직접 발표에 나섰고 두 차례나 허리를 깊게 숙이며 더 이상의 경영권 승계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의 목소리로 약속했다. 준법감시위의 설치, 준법감시위의 권고의 수용은 예전에는 삼성 안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삼성맨 가운데는 있을 수 없는 굴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삼성을 보는 차갑고 투명한 시각이 담긴 준법감시위 권고안을 수용한 것은 기본적으로는 이 사람이 그만큼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지만 이번 기회에 자신과 삼성의 원죄를 털고 가야 한다는 생각도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5. 이인용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 충성심으로 무장한 사람이다. 이인용의 말은 명쾌하고 정연했고, 균형이 잡혀 있었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보이기 어려운 태도였다. 이재용이 이 사람에게는 자기 흉중에 있는 말을 하고, 이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인용은 삼성에서 4세 승계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이재용의 말을 2007년에 들었다. 삼성에서는 천기에 해당하는 말을 15년 전에 이재용에게 들었다는 것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준법감시위를 서울고등법원이 권고한 것이 2019년 10월, 삼성이 이 권고를 받아들여 전직 대법관 김지형을 위원장으로 하는 준법감시위를 출범한 것이 2020년 2월이다. 재판부 권고 이후 다섯 달이 걸린 것이다. 내부 논의가 치열했다는 뜻이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사회를 강화해서 이사회 안에 준법 감시를 담당하는 특별위원회를 두는 방식이 대안으로 논의되었지만 이재용은 준법감시위 설치를 선택했다. 준법감시위원장에 김지형을 위촉하고 김지형에게 위원회 구성을 사실상 일임했다. 백혈병 피해자 보상 문제로 김지형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이인용이 유일한 삼성 사내 위원으로 선정됐다. MBC 앵커 출신인 이인용은 삼성이 변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외부의 압력에 못 이겨 굴복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원래부터 준법감시위원회 설치에 회의적이었던 이인용은 대국민 발표에 4세 승계 포기를 포함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했다. 그 발표를 이재용이 직접 하는 것도 반대했다.

"저는 그렇게 발표를 할 경우 내부의 동요와 반발도 우려했습니다. 삼성에는 회장님 일가를 중심에 두는 독특한 문화가 있습니다. 오너와 전문 경영인들이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는 거죠. 우리도 회장님께서 이런 역할을 해주셔서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데 대한 고마운 마음이 있고 존경의 마음이 있거든요. 그리고 오너의 그런 역할은 지속돼야 한다고 보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런 구심점은 약화되는데 먼저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 거죠."

준법감시위에서 유일한 삼성 내부 위원이었던 이인용은 석 달 만에 준법감시위를 떠났다. 회사 업무와 위원회 업무를 병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부득이 사임한다고 했지만 이런 정황을 보면 이인용이 떠난 이유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준법감시위 역할과 기능, 권한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있었고 그 논쟁은 삼성의 미래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자 주도권 다툼이기도 했다. 오너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자는 내부 논리와, 오너의 권한을 전문 경영인에게 대폭 위임하고 시민사회와 소통을 강조하는 외부의 논리가 대립했다. 내부와 외부의 논리가 부딪힐 때 이재용은 외부의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였다. 구속된 이후 사흘 만에 공개한 옥중 메시지를 통해 준법감시위 활동을 계속 지원하겠다며 본연의 역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재용이 낸 유일한 옥중 메시지였다. 겉으로 보면 김지형을 포함한 외부 인사들의 목소리가 압도적인 듯하지만 이재용이 믿고 의지하는 참모들은 여전히 옛 미래전략실 출신 인사들이 대부분이고 그들이 이재용을 둘러싸고 있다.

<초격차>는 삼성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인 권오현이 공을 들여 쓴 책이다. 이 책에서 권오현은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역할 분담에 대해 꽤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 신사업 진출 같은 결정은 오너가 하지만 그것을 집행하는 권한, 예를 들면 조직 구성과 임원 인사 등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오너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재 상하관계인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관계를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바꾸자는 것이다. 권오현이 삼성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깨닫고 배운 것이니 이 책이 가장 필요하고, 이 책에서 가장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은 이재용일 것이다. 권오현이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이 책을 쓰면서 상정한 제 1독자는 이재용이라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권오현에게 문자로 이렇게 물었다.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회장님 조언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이재용 부회장일 거 같은데 이런 조언을 한 적이 있습니까?
권오현의 짧은 답은 이랬다. "조언은 요청이 있을 때 하는 것인데… 현역을 떠난 후 경영 얘기를 직접 나눈 적이 없습니다."

이재용에게 권오현의 이야기를 들을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듣고 싶은 생각이 아예 없었는지, 그도 아니면 그런 말을 들을 기회를 차단당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재용을 둘러싼 벽이 높다는 이야기가 이런 데서도 나온다.


6. 이건희 회장이 주재하는 모든 회의에 배석했지만 회의에서 이 사람은 늘 끝자리에 앉았다. 사장, 부회장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발언권도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낮은 자리에서 더 많이 듣고 배우라는 이건희식 황태자 교육법일 수 있지만 직급에 상관없이 늘 말석에 앉아 주로 듣기만 하는 이재용의 존재는 다른 삼성 임원들에게 이 사람은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재용은 그룹 임원들과 식사는 가끔 했지만 골프나 등산을 같이 한 적이 없다. 이인용도 이재용과 골프를 같이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등산도 혼자 다닌다. 지난해 가을 치악산 등산을 갔다가 쇄골을 다친 적이 있는데 이때도 혼자였다.

약한 모습, 흐트러진 모습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다른 앞에서 기지개를 켜거나 트림을 하거나 다리를 꼬거나 하품을 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특검에서 22시간 동안 조사를 받는 동안에도 전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아 당시 특검 사무실에서 화제가 되었다. SNS 활동도 일절 하지 않는다. 이 사람 말이 극히 짧다. 길어야 서너 문장이다. 이렇게 짧게 말해서야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싶었다. 2019년 이병철 회장 추도식에서 유족을 대표로 한 인사말도 겨우 예닐곱 문장에 불과하다. 말을 아낀 것이 아니라 그것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황제의 말이 장광설일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런던올림픽에서 가족들과 함께 응원하는 이재용


남들과 구별되는 존재, 땅에 발이 닿아 있지 않고 공중에 약간 떠 있는 듯한 존재,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존재였다. 이 사람의 영역은 다른 사람들의 영역과는 뚜렷하게 구별되었고 남들이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고독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일종의 삼성가의 문화 같은 것이다. 삼성에서 오너가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금기다. 아무리 애를 써도 홍라희, 홍석현 같은 이재용의 가족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집 주소, 전화번호는 말할 것도 없고 메일 주소도 알 수 없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데 이 땅에 주소를 두고 있지 않은 사람들 같은 느낌이었다. 삼성가에서 희미하게나마 사람의 냄새를 맡은 것은 이재용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때 홍라희와 이부진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는 한 삼성 관계자의 말을 들었을 때 뿐이었다. 25년 전 삼성 비자금을 폭로했던 김용철은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은 내가 납득하거나 이해하거나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야. 고공 플레이도 아니고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성층권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장충동 자택에서 어린 이재용과 그 가족들의 모습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은둔자의 이미지, 귀족적이고 제왕적인 이미지로 삼성 제국을 장악하고 다스렸다. 이 사람의 이미지는 그런 삼성가 전통에 따라 치밀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이 사람이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서울대 학적부에 아버지 직업을 회사원이라고 적었던 이재용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 같은 과 1년 선배였던 최영인과 연인인 척 손을 잡고 시위에 참가해서 최루탄 맛을 독하게 경험했고 전방 입소 거부 투쟁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 시절 그 정도 행동은 누구나 하던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삼성 후계자의 그런 행동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 것이었다. 과 여행이나 동기들 MT에도 빠지지 않았다. 과 여행을 겸해 갔던 1박 2일 설악산 산행은 지금도 동기들 사이에서 추억거리다. 형편이 어려운 동료의 등록금을 내주고 산행을 갈 때 친구들은 듣도 보도 못했던 고급 초콜릿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부잣집 티를 내지는 않았다. 흠모하던 여학생과 연애를 하다 6개월 만에 차이기도 했다. 동기들과 꽤 격렬하게 토론을 하곤 했는데 김우석은 이재용의 좋은 토론 상대였다.
 
"이재용은 적극적으로 논쟁에 참여했어요. 격렬한 논쟁을 마다하지 않는 친구였는데 재용이와의 논쟁 과정이 그렇게 튀지는 않았어요. 자기 주장을 적극적으로 폈고 남의 이야기도 잘 들었어요. 역시 큰 기업의 후계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김우석 방송통신심의위원)

어쩌다 자신은 앞으로 수십 만 명을 먹여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하긴 했지만 친구들 역시 그를 그렇게 특별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구범진, 김용욱을 비롯한 대학 동기들은 이 사람 결혼식은 물론 여동생 이부진의 결혼식에도 초대를 받아 참석했다. 어떻게 병역 문제를 해결할지 친구들과 함께 고민할 때는 영락없는 대한민국 20대 청년이었다. 국가대표 승마선수 경력을 살려 상무에 가는 것, 학사장교로 입대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했지만 어쨌든 1991년 11월 허리디스크를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그 당시 친구들에게 이재용은 "남에게 폐 안 끼치고 누구한테도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모범생"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대학 동기들과의 관계는 졸업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일 년에 한두 차례는 빠지지 않고 지속되던 모임은 이 사람이 부사장이 되면서 중단되었고, 이제는 한두 사람을 제외하면 관계가 끊어진 듯하다. 동기들 입장에서 보면 스스럼없이 대하기엔 너무 먼 존재가 된 셈이지만 이재용 입장에서 보면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사라지고 외로워졌다는 뜻이다. 대학 동기 김용욱에 따르면 부사장이 되던 해 연말 모임에서 이 사람은 '미친듯이' 잔을 돌렸다. 그 자리가 동기들 모임에 나오는 마지막 자리였다.

7. 대통령이 언급을 하고, 여당 대표가 운을 띄우고, 거의 모든 여야 대선 후보들이 장단을 맞춘다. 이 사람 가석방에 대한 가장 최근 여론 조사는 찬성이 70%, 반대 22%이다(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 기관 7.29 자 합동조사).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기부와 역대 최대 상속세 납부 발표 등으로 삼성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것을 감안해도 70%를 육박하는 찬성 응답은 놀라운 일이다.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 사람의 지위가 높든 낮든 돈이 있든 없든 똑같이 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재용을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대해 답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좀 (의외라서) 분석 대상이긴 해요. 여론조사 질문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도 궁금한데 촛불 시민이 변했다 이런 것은 아니라고 보고요. 지금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되는 것이 공정, 형평이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이런 응답이 나오는 것은 시대정신과는 잘 매치가 되는 것은 아닌데, 사면이나 가석방은 여론에 따라 결정할 일은 아닌 거 같아요." (박은정 참여연대 사무처장)


사면과 가석방 문제에 대해 삼성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다. 삼성이 배후에서 움직인다는 말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이 사람이 풀려 나온다면 그것은 삼성의 힘이다. 찬성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삼성과 이해 관계가 얽힌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500만 명이 넘는다. 삼성이 잘못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하거나 이 사람이 지은 죄 이상으로 벌을 받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억만금을 써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된다고 믿는 사람들, 삼성과 박근혜의 유착이야말로 국정농단의 핵심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경실련 등 1천56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발표한 성명에 녹아 있다. 이재용을 어떤 식으로든 풀어주면 문재인 정부가 건너지 말아야 될 강을 건너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그 목소리를 이 정부가 얼마나 무겁게 듣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8.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난 뒤 이 사람 처지는 다소 어정쩡했다. 실질적인 책임자였지만 그룹의 2인자는 아버지 이건희가 임명하고 권한의 상당 부분을 위임한 최지성이었다. 이재용은 최지성에게 예우를 갖췄다. 만날 일이 있으면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42층에 있는 최지성 방으로 찾아간 뒤 41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내려갔고 자동차를 탈 때나 식당 등에서 최지성에게 상석을 양보했다. 참모들은 회장 자리에 올라 책임과 함께 권한을 행사할 것을 권유했지만 이 사람은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는데…"라며 그 제안을 거부했다. 이인용은 자신의 관찰이라는 전제 하에 이재용의 처지를 이렇게 분석했다.
 
"이 부회장 본인의 포지셔닝이 굉장히 힘들었을 거라고 봅니다. 책임과 부담감은 어마어마하게 컸지만 권한을 100% 행사했느냐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창업하고 아버지가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이 삼성을 내가 맡아서 잘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그런데 본인이 정식으로 회장으로 취임해서 모든 것이 자기 책임과 권한 하에 있고 또 그렇게 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예요. 그런데 책임과 부담은 100% 지면서도 권한을 100%가졌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어쨌든 이건희 회장님이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지만 회장님이 임명해서 일상적인 권한을 위임한 미래전략실장이 있는 상황에서 절제를 했다고 봅니다."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2011년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에서 응원하는 이재용 부회장

이 사람이 삼성에 입사를 한 것이 1991년이니 올해로 만 30년이다. 이 사람 표현을 빌면 "회사가 수백 수천 배" 커졌고 삼성은 국내 재벌에서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회사의 폭발적인 성장 과정에서 이 사람이 어떤 기여를 했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게 없다. 입사 초기 e-삼성을 주도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지 않았다. 이 때 실패를 들어 이재용의 경영 능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는 시각은 여전히 남아있다. 기여한 게 전혀 없다는 말도 있지만 그렇게 야박하게만 말할 것은 아니다. 이건희 회장 유고 상황에서 삼성은 성장을 멈추지 않았고 그 맨 앞자리에 이재용이 있었다. 무노조 경영 방침을 폐지하고 시민사회와 소통을 추진한 것, 무엇보다 삼성의 성역 중 성역이었던 경영권 승계 문제에 결단을 내린 것은 어쨌든 평가할 부분이다.

아버지는 살아 있어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자신은 수시로 검찰과 특검, 법정을 오가야 했고 구속과 석방이라는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열차 안에서 내릴 수 없는 처지였다. 세계 초일류 기업들과의 경쟁은 한 순간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유능한 전문경영진들이 있다 해도 오너가 책임질 일과 전문경영인이 책임질 일은 달랐고 전문경영진과 자신의 이해관계가 늘 일치하는 것도 아니었다. 시스템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최종 책임은 자신의 두 어깨에 놓여 있었다. 불면의 밤이 이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전 삼성전자 임원의 전언이다.

"제가 가끔 문자를 보내드립니다. 이 분이 문자를 씹는 일이 없어요. 아무리 짧아도 꼭 답문자를 보내는데 문자를 보낸 시간이 새벽 2시, 3시, 어떤 때는 4시인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때까지 잠을 못 자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잠 한번 제대로 자보는 게 소원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이건희 회장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한 사람은 고인의 고등학교 친구인 김필규 전 KPK통상회장이다. 고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마지막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홍라희 여사의 뜻에 따른 선정이었다. 김필규는 이건희 회장이야 말로 선대에서 받은 기업을 더 크게 키운, 승어부(勝於父)를 이룩한 유일한 기업인이라고 기렸다.
 
"아버님 친구분의 추도사 가운데 승어부라는 말이 강하게 맴돌았습니다. 아버지를 능가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효도라는 말이었습니다. 경쟁에서 이기고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제가 꿈꾸는 승어부는 더 큰 의미를 담아야 합니다. (…)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 그게 기업인 이재용이 추구하는 바입니다. 이게 이뤄질 때 제 나름의 승어부에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파기환송심 최후 진술 중)

아버지를 이기는 방법은 아버지가 못해낸 것을 해내면 된다. 이건희는 비범한 기업인이었고 현대사에 기록될 만한 거인이었지만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면 작아지는 사람이었다. 경영권 승계의 원죄를 씻어내는 것, 그것이 승어부의 첫걸음이다. 그런 점에서 2016년 이후 이 사람의 노력은 방향은 제대로 잡고 있는 셈이다.

9. 지난달 초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재용에게 지인이 쓴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됐다. A4용지 6장 분량의 이 편지에는 이재용의 사면 문제에 대해 자신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이 정리되어 있었다. 사면이나 가석방으로 풀려날 경우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어떨지, 남은 형기를 다 마치고 나올 경우 기대할 수 있는 효과에 대한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이 편지에 이재용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서울구치소는 중앙 냉방장치가 없다. 수감자들은 벽에 달린 고정형 선풍기 한 대에 의존해 한여름을 보내야 한다. 옆에 있는 사람의 몸이 하나의 불덩이처럼 여겨진다는 혼거실에 비하면 한여름 징역살이는 독방이 낫다고 하지만 두 평이 안 되는 공간에, 이 불볕더위에 갇혀 지낸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고역일 것이다.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나갈 수만 있다면 나가고 싶을 것이다.


이 사람의 8·15 가석방은 이제 정해진 수순 같은 느낌이다. 갇혀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석방은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나가지 않겠다고 버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전 국민적 관심사가 돼 버린 자신의 가석방 문제에 대해 생각을 밝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특혜 시비가 불가피한 가석방이나 사면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질 것이다. 이 사람 약속에 대한 진정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다. 모범생 황태자의 이미지를 한 순간에 벗어내고 호부무견자(虎父無犬子)*,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못지않은 승부사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그 선택을 할지 말지는 오로지 이 사람 몫이다.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특혜라는 말이 듣기 싫어 며칠을 구치소에서 버텼던 이 사람에게 선택의 시간이 많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이 사람 형기는 이제 9개월 28일 남았다.

* 호부무견자(虎父無犬子): 아버지가 범인데 새끼가 개일 수 없다는 뜻       

(사진=연합뉴스)

윤춘호(논설위원) 기자spring84@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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