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배' 언론중재법, 고칠거면 제대로 고치자

정철운 기자 입력 2021. 8. 1. 20:06 수정 2021. 8. 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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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민주당 개정안, 고의·중과실 기준 등 여러 조항 허점 많아 바꿔야…언론계, '대안' 없이 반대만 하면 "언론 책임" 요구하는 현실과 괴리 커질 수도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1. 2012년 한겨레가 정수장학회-MBC 비밀회동을 단독 보도했다.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을 활용하려 한다는 의혹 제기가 가능했던 공적 사안이었다. 그러나 보도한 한겨레 기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의하면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한 경우'는 '고의·중과실'에 해당해 한겨레는 실제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게 될 수 있다.

#2. 유성기업은 2018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13곳 언론사를 상대로 37건의 기사에 반론·정정보도 청구에 나섰다. 청구 대상은 사실상 '노조파괴'를 언급한 모든 기사였다. 노동자들 주장을 기사화한 것까지 “사실이 아니”라고 조정 신청에 나섰다. 심지어 사실과 다른 내용의 반론·정정보도 청구도 담겨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의하면 '정정보도청구등이 있는 기사를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 '고의·중과실'에 해당한다. 유성기업이 조정 신청을 제기한 기사를 인용 보도하는 순간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이 된다.

#3. 2008년 SBS '긴급출동SOS24-찐빵소녀'편에 대해 재판부는 “허위사실일 뿐만 아니라, 제작진이 이미 자신들만의 사실과 결론을 도출하고 줄거리를 구상한 다음 이에 맞추어 취재 및 촬영을 진행하고 편집해 제작한 악의적 프로그램”이라고 판결했다. 피해자측은 1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SBS가 당시 방송으로 약 3억 원의 광고 수익을 올렸다며 3억 원 배상 판결을 냈다.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 이후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면 2020년 SBS 매출액(7055억 원)의 1만분의1~1000분의1인 7000만원~7억원 사이 위자료가 산정되고 여기에 최대 5배 징벌배상이 가능하다. SBS가 물어야 할 최대 배상액은 35억 원 수준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난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8시간30분(정회시간 포함)간의 회의 끝에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을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표결 처리됐다. 개정안을 두고 한국기자협회·전국언론노동조합·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 등 언론4단체부터 한국신문협회와 민주언론시민연합까지 거의 모든 언론단체가 지금 법안 그대로 본회의 통과는 안 된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물론 '배액배상'에는 동의하지만 일부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배액배상' 자체도 도입해선 안 된다는 주장까지 '반대'에도 스펙트럼이 있는 상황이다.

▲게티이미지.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징벌적 손해배상' 여부를 판단하는 '고의·중과실' 기준이다.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한 경우 △정정보도청구등이나 정정보도등이 있음을 표시하지 않은 경우 △정정보도청구등이 있는 기사 또는 정정보도·추후보도·열람차단이 있었음에도 정정보도·추후보도·열람차단 되기 전의 기사를 별도의 충분한 검증절차 없이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 △계속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를 통해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 △제목과 기사 내용을 다르게 하는 등 기사 제목을 왜곡하는 경우 △사진·삽화·영상 등 시각자료와 기사 내용을 다르게 해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가 고의·중과실에 해당한다.

언론인권센터 언론피해구조본부장인 김준현 변호사는 “고의·중과실 추정 기준을 납득할 수 없다.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한다고 모두 악의적 기사로 볼 수 없다”면서 “고의·중과실 기준은 다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장인 김성순 변호사도 “고의·중과실 기준은 전부 삭제하는 게 나아 보인다”고 밝혔다. 언론중재법과 언론 판례에 밝은 한 변호사도 “고의·중과실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굳이 별도로 규정할 필요 없다”며 일괄 삭제가 맞다고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역시 “고의·중과실 추정 기준은 합리성이 떨어지거나 추상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취재 과정에서 언론보도 본질과 관련 없는 위법이 있는 경우나 언론중재법에 따른 정정보도 조정 결과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은 경우 배액배상제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언론중재법상 정정보도는 고의나 과실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데 배액배상제 고의중과실 추정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며 전면 수정 또는 삭제를 요구했다.

민언련은 그러면서 “언론사와 관계에서 정보 불균등 상태에 있는 시민이 고의·중과실에 의한 허위조작 보도임을 입증할 마땅한 방법은 마련되지 않은 채 5배 배상제만 신설된 게 시민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묻고 싶다”면서 “지금 개정안으로는 일반 시민에겐 배액배상 실익이 거의 없으면서 권력집단에게 배액배상제를 악용할 길을 열어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우려했다. 언론 4단체 또한 개정안의 고의·중과실 기준으로는 “불법 노동 실태를 취재하기 위한 잠입 취재가 '법률위반'이 되고, 공직자 비리 연속보도는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가 된다”며 전면 폐기를 요구했다.

▲게티이미지.

'악의를 가지고 허위·조작보도를 한 경우'에만 정치인·공직자·대기업이 언론에 징벌적 손배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대해선 엇갈린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언론 4단체는 “이 조항은 공인에 대한 엄격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한 요건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수월하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 준 셈”이라며 공적 보도 위축을 주장했다. 이들은 “악의에 대한 하위 규정은 정치인·공직자·대기업 등이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용어로 채워져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언론인권센터 김준현 변호사는 “징벌배상은 허위보도 책임을 묻는 것으로 공직자 감시와 별개의 문제”라며 “언론노조 등의 입장에 원칙적으로 반대”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민주당이 언론계 반발을 감안해 조항을 만든 것 같은데 개정안대로면 공직자는 사실상 (징벌배상 청구에서) 제외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밝힌 뒤 “만약 언론이 무차별 사생활 보도에 나섰는데 공직자라는 이유로 징벌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면 문제다. 언론은 공직자 보도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오히려 예외규정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사별 매출액 기준으로 손해배상액 하한선을 설정하는 개정안에도 문제 제기가 나온다. 언론중재법과 언론 판례에 밝은 변호사는 “매출액 1만분의 1이라는 손해배상액 하한선이 어디서 어떤 근거로 나온 건지 생뚱맞다. 또 개정안대로 배상하게 되면 매출 규모가 적은 언론사들은 징벌배상이 아무 의미 없는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년 신문산업실태조사'에 의하면 연 매출 100억 원 이상 사업체는 49개사로 전체의 1.2%였으며 1억원 미만 사업체는 57.3%, 1억~10억원 미만 사업체는 36.4%로 나타났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신문업체의 93.7%가 보도로 인해 최대로 때려 맞을 징벌배상액은 500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 김준현 변호사는 “연 매출 100억 이상 언론사는 몇 프로, 1억~10억은 몇 프로, 1억 미만은 몇 프로 이런 식의 구성이 합리적”이라고 제안했다.

이밖에도 김준현 변호사는 “개정안에서 중재위원의 정치색를 빼려고 노력한 대목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새로 추가한 열람차단청구권은 실효성이 없어서 빼도 된다. 지금도 민사소송에 가처분신청이 있다”고 했으며 “정정보도 시 지면의 최소 2분의1 크기를 명시한 조항도 맞지 않다. 기존 법에 (크기는) 당사자 간 협의로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민변 김성순 변호사도 “열람차단청구권이나 손해배상액 산정기준에서의 언론사 매출액 활용 등은 성숙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언론계가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형법상 명예훼손죄 폐지도 빠져서는 안 될 논의다.

여당은 지금 '8월 중 본회의 통과'라는 일정에 의미를 두기보다 입법 이후 상황까지 길게 봐야 한다. 그리고 “시민 권리 보호와 저널리즘의 순기능 강화”라는 대전제에서 개정안을 재설계해야 한다. 언론중재법과 언론 판례에 밝은 변호사는 “징벌배상이 도입되면 기존 위자료 액수가 더 내려갈 수도 있다. 판사들이 징벌배상까지 고려해 징벌배상 전 기준 금액이 되는 위자료를 낮추는 식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설령 민주당이 발의한 대로 법안이 통과되어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서는 언론 보도에 따른 실질적 피해구제까지 예측이 어려운 변수가 많다는 의미다.

▲게티이미지.

손 봐야 할 것 많지만…악법이라고 반대만 하면 끝?

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협회 등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반헌법적 언론중재법 개정을 즉각 중단하라”면서 이번 개정안이 “향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 및 정부 정책의 비판·의혹 보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과거 군부 독재정권이 무력으로 언론자유를 억압했다면 지금의 여당은 무소불위의 입법권을 행사하며 언론을 통제하려 하고 있을 뿐 본질은 같다”면서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헌법소원을 예고했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5년 언론중재법 도입 뒤에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006년 1월 동아일보는 “노 정권은 인격권 보호라는 미명 아래 개인이 구제받기 쉽도록 한다며 언론중재법을 제정했지만 비판언론을 통제하려는 의도를 숨기지는 못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입법 선례를 찾기도 어려운 이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법이 언론자유에 대한 과잉 억압을 통해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헌법소원 결과 언론중재법 대부분 조항은 합헌으로 나왔다.

15년 이상이 흐른 지금 언론중재법을 기반으로 한 언론중재제도는 언론분쟁 해결의 준사법적 조정 중재 기구로 자리 잡았다. 민사소송과 다르게 조정 신청에 인지대가 없고, 변호사 조력 없이도 반론·정정보도가 가능하고 중재부의 직권조정에 의한 기사삭제도 가능해졌다. 언론을 괴롭히기 위한 공직자·대기업 등의 악의적 조정 신청도 물론 존재하지만 부작용보다는 시민들이 얻게 된 실익이 더 크다는 평가다.

이석형 언론중재위원장은 “해외 선진국에는 공적 언론 중재 기구가 없다. 뉴욕타임스 부사장을 만나 언론중재위를 소개했더니 부럽다고 하더라. 언론중재위는 국제적 관심과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언론중재법을 향해 “비판언론 통제”, “언론자유 과잉 억압”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찾기 어렵다.

물론 당시 언론중재법과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똑같이 비교할 수는 없지만 언론이 '이해관계'에 얽혀 있을 때 과잉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유추할 수 있다. 시민들도 가깝게는 2015년 청탁금지법(김영란법) 도입 당시 언론인이 대상에 포함되자 언론계가 “언론자유 침해”라며 격렬하게 반발했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시민들은 여당에 신중한 언론중재법 개정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언론계의 날 선 입장도 비판적으로 독해해야 할 상황이다.

▲게티이미지.

지금껏 언론개혁은 '자유와 책임'이란 양 날개로 날아왔다. 정치·자본권력으로부터 언론의 자유를 확보하는 운동과 오보나 정파적 보도와 관련해 언론의 책임을 강화하는 운동이 상호보완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현재는 낮은 언론신뢰도 속 '책임'을 강화하려는 사회적 여론이 더 커 보인다. 이번 개정안은 여당이 이 같은 여론에 급히 올라탄 결과다.

미디어오늘이 2009년~2018년까지 언론 관련 민사판결에서의 손해배상 판결 인용액을 분석한 결과 500만 원 이하가 47.4%였고 500만~1000만 원이 23.4%였다. 2019년에도 언론 관련 손해배상 청구사건에서 500만 원 이하 판결이 53.8%, 500만~1000만 원이 22.6%였다. 변호사 비용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소송에 실익이 없다. 이 같은 통계를 언론도 모를 리 없다. 더욱이 디지털시대 오보의 전파속도와 범위가 달라진 점을 고려하면 위자료는 높아져야 하지만 오히려 20세기에 비해 줄어드는 추세라는 분석이다.

법 개정에 따른 언론자유 위축은 충분히 우려하고 예상할 수 있는 미래다. 그러나 동시에 언론 보도에 따른 피해구제가 부족한 현실도 있다. 민변과 언론인권센터가 징벌배상에 찬성하는 이유다. 언론계가 미래만 우려해서는 사회적으로 징벌배상을 요구하는 현실과의 괴리만 커진다. 김준현 변호사는 “(중재법 개정안에) 손 봐야 할 게 많지만 징벌적 손배제가 악법이라는 주장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언론계는 언론 보도 피해에 따른 배상액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거나, 또는 징벌배상이 없어도 될 정도로 저널리즘의 질적 향상을 보여야 한다.

SBS기자 출신의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법학박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언론에서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이 있다. 그런데 언론만의 문제가 아닌 것도 많다. 대선을 앞두고 이런 식으로 언론법제를 졸속으로 뜯어고치는 문제가 언론의 문제보다 작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도 “언론단체들도 이런 엉터리 법안이 나올 때나 모여서 성명 내고 대책을 고민할 게 아니라 평소에 언론의 품질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도 절실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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