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애들 혼내주는 딸, 레슬러 본능을 발견했다..아빠의 고민이 시작됐다

김연주 2021. 8. 1. 21: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이 영화 어때요?
인도 여성 레슬러 실화 바탕으로 한 '당갈'
한국 광복 이후 첫 메달도 레슬링에서 나와
도쿄올림픽 8월 1일부터 경기 시작

사람들이 올림픽에 열광하는 이유는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가 탄생하는 현장이기 때문일 겁니다. 특히 편견이나 벽을 깬 선수들에게 특별한 찬사가 쏟아지는데요. 필리핀에 첫 금메달을 안긴 역도 선수 디아스, 첫 혼성 양궁 경기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17살의 김제덕 선수. 이번 올림픽에서도 새로운 스타들이 속속 탄생하고 있습니다. 언젠간 이들도 영화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르죠.

올림픽이 한창인 요즘 생각나는 스포츠 스타를 다룬 인도 영화 '당갈'을 소개합니다. 역대 발리우드 흥행 1위를 차지한, 여성 레슬러 자매 기타 포갓과 바비타 포갓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린 영화입니다.

"내일 이기면 넌 혼자 이긴 게 아니라 수많은 소녀와 함께 이긴 거야. 남자들에게 무시당하고 집에서 아이나 키워야 할 모든 소녀를 위한 우승이지."

'당갈'이 주는 쾌감은 올림픽의 매력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공정한 경기장에서 누구나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가지는 것. 영화는 이 두 여성 스포츠 영웅을 통해 여성 인권과 스포츠맨십 그리고 부성애라는 주제의식을 골고루 섞어 빚어냅니다. 자극적이지 않은 착한 맛을 아주 정석의 방식으로 요리해 냈죠.

여성 레슬링 실화로 '인권'과 '부성애'

한국 관객이라면 첫 장면부터 흥미를 느낄 것 같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러시아와 미국 선수 간 경기를 지켜보는 전직 레슬링 선수였던 마하비르 싱 포갓(아미르 칸)의 모습으로 시작되기 때문이죠.
영화 스토리는 너무나 익숙한 구조입니다. 전직 레슬링 선수였던 포갓은 가정 형편과 가족들 반대로 금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레슬링을 포기합니다. 아들을 통해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내리 딸만 넷이 태어나면서 좌절되죠. 그러던 어느 날 두 딸이 또래 남자아이들을 신나게 때리는 모습에서 잠재력을 발견하고 딸들을 레슬러로 키우기로 결심합니다. 사실 보수적인 인도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는 굉장한 도전이었는데요. 여성은 나이가 들면 시집을 가 아이를 키우는 것 외에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첫째 기타(파티마 사나 셰이크)와 둘째 바비타(산야 말호트라)는 아버지의 훈련 속에서 재능을 발휘해 승승장구 승리를 거두며 국가대표 레슬러로 성장해 나갑니다.

사실 감동을 '반감'시키는 부분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꿈과 교육방식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부분, 나라를 위해 메달을 따야 한다는 목적 의식은 2021년 관객이 쉬이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영화가 2016년 인도에서 개봉한 만큼 시차가 있습니다.

인도의 3대 '칸', 아미르 칸의 명연기

그럼에도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배우들의 명연기인데요. 사실 영화가 관객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기는 건 아미르 칸이라는 배우입니다. 배우 샤룩 칸, 살만 칸과 함께 발리우드 3대 칸으로 불리는 인도의 국민 배우죠. 영화 '세 얼간이' 주인공으로 우리나라 관객에게도 익숙한 얼굴입니다.

그는 부리부리한 눈에 고집스러운 입매를 가진 말수가 없는 무뚝뚝한 아버지를 연기하는데요. 영화 내내 경기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 외에는 대사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덤덤한 얼굴이 딸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인한 슬픔과 기쁨으로 미묘하게 움찔거릴 때마다 가슴이 '찡'합니다. 아주 미세한 표정 변화로도 감정을 고스란히 전하는 명연기를 보여주죠.

사실 이 영화는 특별한 명대사나 명장면이 있는 건 아닙니다. 굉장히 어디서 들어본 듯한 대사와 장면의 연속인데요. 딸의 학교까지 찾아가 자존심을 내버리고 부탁하는 장면. 낮에는 엄하게 훈련시키지만 저녁에는 딸들 몰래 종아리를 주물러주는 모습.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아버지의 교육을 거부하는 딸에게 "나는 또 구식 취급을 받겠지"라며 자조하는 대사. 아빠를 이기고 의기양양해하는 언니에게 건네는 둘째 딸의 "아빠의 기술이 약한 게 아니라 아빠가 약해진 거야"라는 뼈아픈 일침. 인도 아버지와 한국 아버지들은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아는 맛이 맛있다고, 감동받았던 이야기에 또 한 번 감동받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아미르 칸은 20대에서 50대까지를 연기하는데 20대의 근육질에 날렵한 몸매와 50대의 복부비만 체형을 모두 소화합니다. 늙은 아버지를 먼저 연기한 뒤 살을 빼고서 젊은 장면을 찍었다고 합니다. 영화를 위해 28㎏을 증량하고 감량해 가면서 몸매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흥겨운 노래와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관전 포인트

"아빠는 우리 건강에 해로워요." "고장 난 차처럼 운이 없어요. 아빠가 바로 운전자."
흥겨운 노래는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입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새벽 다섯 시부터 반바지를 입고 거리를 뛰는 독한 훈련 장면에서 딸들이 부르는 귀여운 노래 가사. 인도 영화는 내용이 슬프건 기쁘건 화나는 상황이건 갑자기 군무가 시작되죠.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마살라란 영화 장르의 특징인데요. 처음 인도 영화를 접하는 분들은 개연성 없는 춤과 노래에 당황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그런 '갑툭튀'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그 대신 특유의 흥이 나는 배경 음악이 곳곳에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당갈 당갈"을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능금지곡 수준의 중독성 있는 멜로디입니다(영화 제목이자 노래 가사인 '당갈'은 인도어로 씨름장을 뜻합니다.)
레슬링은 별다른 장비나 도구 없이 옷을 잡는 것도 안 되고, 오직 몸만으로 상대방의 양 어깨를 매트에 닿게 만들려는 경쟁입니다. 선수 2명이 상대방을 매트에 꽂거나 던지겠다는 목적으로 벌어지는 순수한 기술의 대결입니다. 온 힘을 다해 몸을 내던지는 레슬링이라는 스포츠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흥겨운 노래에 모래밭 위에서 펼쳐지는 온몸을 던지는 액션. 2~3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공격과 방어가 쉴 새 없이 이뤄지는 만큼 박진감이 대단합니다.

영화는 2시간40분짜리로 러닝타임이 꽤 긴데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레슬링 경기가 영화 전반에 녹아들어 있어 전혀 길다는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당연히 이길 걸 알면서도 혹시나 질까봐 조마조마한 모습으로 영화를 보게 되는데요. 정말 실제 경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연출력이 대단합니다.

한국에 첫 금메달 안겨준 종목 레슬링, 위기에 처하다

그런데 이 레슬링이라는 종목 자체가 지금 응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레슬링은 최근 십수 년간 재미없다는 평가와 함께 부정부패, 편파 판정 논란에 휩싸이며 이번 도쿄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에서 제외될 뻔했습니다. 가까스로 기사회생했죠.

한국에게도 레슬링은 특별한 스포츠인데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양정모가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어요. 광복 이래 최초의 올림픽 대회 우승이었죠. 이후 레슬링은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11개, 은메달 12개, 동메달 13개를 따낸 대표적인 효자 종목으로 통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요.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는 그레코로만형 72㎏ 류한수(33) 그리고 130㎏급 김민석(28) 단 두 명만이 출전하는 데 그쳤습니다. 역대 올림픽 출전 최소 인원입니다.

2020 도쿄올림픽 레슬링 일정은 8월 1~7일로 남자 그레코로만형·자유형 각각 96명, 여자 자유형 96명 등 총 288명이 참가합니다. 금·은·동 각각 18개 메달을 두고 경기를 펼친다고 하네요.

영화 '당갈'은 레슬링의 룰과 기술을 상세하게 다뤄줍니다. 1일 시작하는 경기에 앞서 영화를 보면 경기를 한층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숨은 명작 찾기 코너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다양한 국적의 영화와 드라마를 주말에 소개합니다. 코로나19로 해외 여행이 어려운 요즘 방 안에서 세계의 다양한 명작들을 만나 보는 건 어떨까요?

[김연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