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도쿄 올림픽 덕분에 무더위를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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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각자도생 끝내고 국제 교류 할 수 있다는 메시지 줘
무더웠던 지난 토요일 저녁, 모처럼 가족과 함께 거실 TV 앞에 둘러앉았다. 저녁 7시부터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의 3경기를 잇달아 시청했다. 야구는 미국에, 축구는 멕시코에 잇달아 패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가며 배구 한·일전을 보기 시작했다. 마침 마지막 5세트가 진행 중이었다. 우리 대표팀이 12-14 매치 포인트까지 밀렸다. 일본이 1점만 더하면 패하는 상황….
여기서 한국 배구 역사에 기록될 만한 투혼(鬪魂)이 나왔다. 박정아의 연속 득점으로 듀스를 만든 후 16-14로 역전, 세트 스코어 3대2로 승리했다. 순간 의자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아들과 하이파이브도 했다. 한·일 배구전을 다시 보며 감동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저녁 11시를 훌쩍 넘겼다. 1년 중 가장 더운 요즘 4시간 넘게 거실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른다. 이날 배구 한·일전의 지상파 3사 시청률 합계가 25%를 넘은 것을 보면 우리 가족만 올림픽을 즐긴 것이 아닌 것 같다.
코로나 사태로 1년 늦게 개최된 도쿄 올림픽은 바이러스 확대로 우울한 지구촌에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단을 도쿄에 보낸 각국은 자국 선수단과 세계적인 운동선수들을 보면서 작은 위로를 얻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민 단합’ 효과도 나오고 있다. ‘방역 독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규제가 심한 한국에서 웃음꽃을 피우게 하는 화제는 올림픽뿐이다. 양궁 경기에서 안산·김제덕이 중요한 고비에 ‘10점’을 쏠 때 각 가정과 사무실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외신 매체가 놀랄 정도로 ‘폭풍 수영’을 보여준 황선우는 젊은 층은 물론 중장년층의 카톡이나 인스타그램에서도 회자하고 있다. 저녁 6시 이후 모임을 갖지 못하자 온 국민의 관심이 올림픽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도쿄 올림픽은 지난 1년간 개최 여부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국제사회에는 취소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국제적인 마케팅 회사 입소스(IPSOS)가 지난 5~6월 28국 2만명을 상대로 여론 조사를 한 결과 57%가 반대했다. 특히 한국의 반대 여론이 가장 심해 86%를 기록했다.
여론대로 올림픽을 취소하는 것이 바람직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소속 약 200개 국가에서 1만명 넘는 선수가 도쿄로 모여든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지금은 올림픽 선수촌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지만, 확진자가 폭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각 나라가 계속 문을 걸어 잠그고 올림픽을 취소하는 것보다는 득이 많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세계에서 1만명 이상이 모인 도쿄올림픽은 국제사회가 앞으로 참고할 교본(敎本)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다른 전염병이 나와도 그것에 무릎 꿇지 말고 각국이 각자도생(各自圖生) 대신 협력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벤트가 됐다. 코로나가 잘 통제되며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끼리는 과감하게 여행 및 인적 교류를 추진할 분기점도 만들어냈다.
이런 계기를 만들어 준 일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올림픽 개최로 얻은 것이 거의 없다. 대부분 무관중으로 진행되는 탓에 부흥 올림픽과는 거리가 멀게 됐다. 1년 연기되면서 개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반면, 최대 1조원으로 추산되던 입장권 수입은 사실상 증발해 버렸다.
일본 국민은 올림픽 개최 여부로 마음이 힘든 1년을 보냈다. 코로나 때문에 마음 놓고 지지도 못하고, 부흥에 방해가 될까 봐 반대 목소리도 높이지 못했다. 올림픽을 정권 연장에 쓰려고 했던 ‘아스가(아베+스가) 정권’은 비판받아야 하나 노심초사한 일본 국민은 위로를 받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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