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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주택가에서 5분만 이동하면.. 미국의 두 얼굴

차노휘 입력 2021. 08. 0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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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지금] 내가 목격한 미국의 인종 간 격차

[차노휘 기자]

 루스벨트아일랜드 공원에서 요가하는 사람들
ⓒ 차노휘
'7월 5일 뉴욕시티에서 살인 사건 발생. 60대 브루클린에 사는 남자가 노숙자를 집으로 데리고 가는 선행을 베풀었으나 노숙자에게 살해당함.' 위와 같은 살인 및 총기 사고에 관한 뉴스를 미국에선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올버니에서 2주 머물렀을 때 한국 식당에서 불고기 비빔밥을 먹고 숙소로 걸어가다가 영업을 하지 않은 식당 벽면에 특이한 벽화가 있어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전날 그곳에서 '슈팅'이 있었다고 말했다.

콘크리트 정글과 같은 맨해튼과 달리, 올버니는 뉴욕 주 수도라고 하지만 전원에 둘러싸인 작은 소도시에 오래된 유럽풍 건축물이 있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이런 곳 또한 총기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슈팅이 있었다는 그곳을 굳이 나누자면 올버니에서는 아웃사이더 구역이었다.

올버니의 두 구역 
 
 분수대 너머 올버니의 주청사 건물
ⓒ 차노휘
 
올버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조적으로 인종에 따라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올버니 주청사와 힐튼 호텔 인근은 다운타운이다. 이곳에는 오래된 유럽풍 건축물과 비즈니스 센터가 들어서 있다. 사업가나 정부 변호사들에 의해 주요 업무가 처리되고 보수층이 많다.
다운타운 인근은 제법 고급 주택들이 들어 서 있다. 하지만 차로 5분에서 10분 정도를 달리면 흑인들이 주로 많이 사는 거주지가 나온다. 도로도 건물도 상점들도 가꾸지 못한 정원도 그 외양이 다운타운과 다르다. 
  
 이스트리버 너머 맨해튼이 보이는 루스벨트아일랜드
ⓒ 차노휘
 
내가 묵었던 호텔에서 청소를 담당하는 직원들 또한 모두 유색인종이었다. 맨해튼을 돌아다닐 때도 문지기나 검표 직원 등은 거의 다 흑인들이었다. 맨해튼 이스트 59번가와 2애비뉴에서 루스벨트아일랜드(Roosevelt Island)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서 타는 트램 관리인도 흑인이었다. 그는 왼손에 새 마스크 몇 장을 쥐고는 마스크를 미처 착용하지 못한 손님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루스벨트아일랜드에 좀 더 대해 말하자면 그 섬은 퀸스와 맨해튼 사이 이스트리버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이다. 퀸스보로브릿지 아래 면적 147에이커의 섬은 원래 교도소와 천연두나 정신 병원이 자리 잡은 곳이었고 환자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서 지금은 낭만적으로 보이는 등대에서 감시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초부터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와 코압(co-op)이 들어서며 현재는 인구 1만 4000여 명이 거주하는 인기 장소가 되었다. 최근에는 아이비리그 코넬대학 공학계열 대학원 코넬 테크(Cornell Tech) 캠퍼스까지 들어섰다. 트램 외에도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운행하는 페리와 지하철 F 노선, 자동차 등을 이용하거나 또는 걸어서 퀸스나 맨해튼으로 갈 수가 있다.
 
 지금은 비싼 맨션으로 바뀐 오래전 루스벨트아일랜드에 있던 정신병원 건물
ⓒ 차노휘
 
얼마 전, 아침 일찍 브루클린을 가기 위해서 지하철역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창구 벽 쪽에 몇 사람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어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봤다. 벽면에 보안 경고 종이 두 장이 붙어 있었다. CCTV에 찍힌 두 명의 모습 아래 각각 버스 운전자 폭행범과 살인 미수범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맨해튼 보로인 루스벨트이지만 이곳의 모든 공공시설이나 건물은 뉴욕시티가 아니라 뉴욕 주에서 관리한다. 경찰도 주 경찰이고 섬을 도는 무료 셔틀 버스도 주에서 관리한다. 지하철 내에도 각각 경찰 두 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코로나 이후 한 명 더 늘어 지금의 숫자가 되었다. 혹시 모를 인종차별적인 폭력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루스벨트아일랜드 식품점에 붙어있는 알림 종이들
ⓒ 차노휘
 
아무래도 보안 경고 종이를 본 날은 주위에 위험한 사람이 없는지 더 살피기 마련이다. 잔뜩 긴장한 그날 나는 브루클린브릿지와 차이나타운 그리고 리틀이태리를 걷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루스벨트아일랜드로 돌아와서는 식품점에서 음식 몇 가지를 샀다.

계산을 끝내고 나서려는데, 출입문 오른쪽 벽면에 또 뭔가가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코로나 백신 사이트 주소 그리고 식품점에서 출시한다는 새로운 음식 알림, 개 산책이나 돌봄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광고 옆에 'Hall of Shame'(수치심의 전당)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그 아래, 물건을 훔치다가 CCTV에 잡힌 세 명의 남자 사진이 편집되어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두 눈이 여실히 드러나는 청년은 누가 보더라도 잡으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붙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진을 붙여놓고 수치심의 전당이라는 타이틀로 경고하니 아직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 사진이 되레 보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이스트리버 너머 보석처럼 아름다운 맨해튼 빌딩 불빛을 뒤로하고 아파트로 귀가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런 폭력적인 뉴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할렘을 가더라도 주말이면 플리마켓이 열려서 동네 사람들과 외부 사람들을 반긴다. 루스벨트아일랜드도 주말이면 오래된 교회를 중심으로 아미쉬를 포함한 주민들 혹은 외부인들이 채소와 과일이며 장신구들을 햇살 좋은 마대 위에 펼쳐놓는다. 간혹 교회에서 주최하는 음악회와 갤러리 오픈 음악회 등을 마련하여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

폭력 속의 평화? 평화 속의 폭력?
 
 루스벨트아일랜드 오래된 교회 건물 주변의 플리마켓
ⓒ 차노휘
 루스벨트아일랜드 플리마켓
ⓒ 차노휘
 
올버니도 주청사 인근 박물관에 그들의 생생한 역사를 전시한다. 인디언들과 많은 동물의 피 위에 그리고 자연 파괴 위에 세워진 나라임에도 그들의 치부를 과감히 드러낸다. 911 기념 공원도 과감히 맨해튼의 금싸라기 땅 위에 세워서 그들의 아픔을 전함과 동시에 평화를 갈망한다.

인종차별이 있다고 하지만 이민자들에게 땅을 내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인정한다. 폭력 속에 평화가 있는 것인지 평화 안에 폭력이 잠재하는 것인지. 마리화나가 합법이며, 그야말로 터지기 일보 직전의 지뢰밭 같다가도 맛있는 비빔밥 같다가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매력적인 나라임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매력적인 이곳도 델타바이러스 위기감이 이번 주부터 닥쳤다.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제는 야외든 실내든 상관없이 마스크 착용이 필수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바이러스19는 인종도 평화도 폭력도 가리지 않고 어디든 스며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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