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인형, 구원자.. 당신에게 냉장고란

구둘래 2021. 8. 3. 11: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쓰레기로드]'제로웨이스트 키친-회복되는 부엌'
2주 참가기.. 냉장고에 넣고 우리가 잊은 것, 우리가 쓰레기봉투에 넣고 잊은 것
토마토, 양파 등 식재료를 걸어서 보관하는 류지현 작가의 이탈리아 부엌. 테이스트북스 제공
코로나19로 집콕 하며 배달음식, 많이도 시켜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 남은 ‘음식’을 바라볼 때, 이 냄새나고 끈적거리는 ‘쓰레기’를 눈앞에서 얼른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내다버리면서 죄책감도 같이 버린다.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버리면 그 죄책감은 좀더 가벼워질지 모른다. 버리고 온 쓰레기는 잊히고 끼니때는 또 다가온다.
뒤돌아선 그때, 음식물쓰레기의 여정은 시작된다. 매일 새벽 집 앞을 오가는 누군가의 손에 실려 한데 모인다.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찢고 털고 부수고 말리고 쪄서 갈색 가루가 돼 먹이로, 퇴비로 쓰인다. 잊어버리려 했던 죄책감을 좇아갔다._편집자주
자투리 채소를 모아 육수를 만든다. 테이스트북스 제공

2021년 7월11일 일요일 저녁, 첫 줌 회의 첫 만남

2010년의 독일 다큐멘터리 <테이스트 더 웨이스트>, 농부가 “농사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슈퍼마켓 실무진)들이 와서 나에게 크기는 이래야 한다, 색깔은 이래야 한다고 가르친다”며 화낸다. 다큐멘터리는 멀쩡한데도 규격에 맞지 않는다고,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버려지는 먹거리 실태를 고발한다.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류지현씨(당시 네덜란드 거주)도 보인다. 그는 다큐멘터리에서 부엌 곳곳에 보관해놓은 달걀, 사과, 감자, 당근 등을 보여준다. 사과와 감자는 같이 보관하면 사과가 감자 싹이 돋는 것을 방지한다. 그의 부엌이 특별한 것은 냉장고를 맹신하지 않아서다. “냉장고에다 음식을 넣으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그의 프로젝트 이름은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하라’.

그의 첫 저서 <사람의 부엌>(2017)의 부제는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아서’이다. 사바나, 안데스, 쿠바, 이탈리아 등 전통 부엌을 찾아다녔다. 2021년 6월 말 그의 두 번째 책 <제로웨이스트 키친>(테이스트북스 펴냄)이 출판됐다. 철학을 실천하는 레시피가 함께하는 실용서이다. 출판을 계기로 ‘밑미’(생활 변화를 목표로 하는 플랫폼 https://nicetomeetme.kr)를 통해 ‘제로웨이스트×기록’ 미션 실천팀이 꾸려졌다. 제로웨이스트 매장인 피커 송경호 대표가 리추얼 메이커(활동에 도움말을 주는 이)로 참여했다. 나를 포함한 18명이 2주간 리추얼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줌(인터넷 화상회의 플랫폼) 만남을 가졌다. 첫 번째 주(7월12~18일)에 자신의 식재료 보관법을 검토해보고 두 번째 주(19~25일)에 보관법과 장기 음식 보관 레시피 등을 실행해보는 일정이다.

남는 채소를 이용해 잼, 피클, 식초 등을 만들면 장기 보관할 수 있다. 테이스트북스 제공

7월12일 월요일 냉장고란 뭘까

이사하기 위해 보러 간 집에 냉장고 5개가 있는 걸 봤다. 부엌에 마주 보는 입식 냉장고가 2개 있고(하나는 김치냉장고), 뒤베란다에 1개, 앞베란다에 김치냉장고 2개가 있었다. 집주인은 자식들을 독립시킨 뒤 반찬을 일일이 해주는 정 많은 분인 것 같았다.

나에게 냉장고는 ‘예수님’이다. 나의 죄를 대신 사해준다. 일단 먹고 남은 것을 냉장고에 넣어둔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다음에 열면 냉장고에 남았던 음식은 먹을 수 없게 돼 있다. 먹고는 바로 버리기에 미안했던 음식을 그제야 버린다.

나에게 냉장고는 ‘걱정인형’이다. 된장국을 끓였다가 내일 먹어도 괜찮을까 걱정되면 냉장고에 넣는다. 그러고는 잊어버린다. 류지현 작가 말대로 그렇게 잊는데, 다른 한편으론 그것이 ‘생활의 편의’다. 걱정을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냉장고는 든든하고 고맙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하라’ 특강을 하는 류지현 작가. 옆에 선 이가 ‘지현 다비드’로 함께 활동하는 남편 다비드 아르투프. 아시아문화원 제공

2021년 7월13일 화요일 냉장고 안 쓰는 사람들

일본의 ‘퇴사한 아사히 기자’로 유명한 이나가키 에미코는 냉장고 없이 산다. 이나가키가 저서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일본의 원전 의존에 대한 걱정과 함께 절전을 시작해, 퇴사 뒤에는 냉장고와 밥솥이 전기를 많이 먹는다는 것을 알고는 아예 코드를 뽑아버렸다. 그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냉장고가 없던 에도시대 사람들이 단순소박한 식사에도 언제나 웃으면서 식사를 마친다며(드라마라서?), 밥과 국 그리고 쓰케(절임) 종류의 반찬 하나라는 단순한 식사를 시작한다. 그날 먹는 밥은 모두 그날 짓고, 쓰케 종류는 된장에 박아놓는 거라 냉장고가 필요 없는 식사가 됐다. 그런데! “밥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간다”고 할 정도로 단순하게 살아가면서 밥이 맛있어졌다고 말한다.

독일에 거주하는 김이수씨는 남편의 제안에 따라 냉장고 코드를 뽑았다(<생태 부엌>). 냉장고는 친척들이 집에 왔을 때 켤 정도로 손에 꼽힌다. 그가 냉장고를 쓰지 않게 된 것은 독일 집에 있는 ‘켈러’라는 저장 공간이 큰 구실을 한다. 집의 지하 혹은 반지하에 있는 켈러는 온도 10도 정도를 유지한다.

냉장고에 넣는 대신 물에 담가 보았다.

2021년 7월14일 수요일 냉장고 재고를 적다

미션 참가자들의 카드를 유심히 읽었다. 오늘의 미션은 냉장고, 냉동고, 실온 등에 보관하는 식재료를 적는 것이다. 나는 엽서 칸이 좁아 ‘등등, 그 외 다수’ 등으로 적어넣었다. 으아악, 다들 “냉장고에 든 게 많아 놀랐다”고 하는데… 내가 제일 많다.

싱크대 밑에 보관한 감자와 토마토, 애호박.

2021년 7월16일 금요일 냉장고 환상

“아따, 알뜰하네. 버리는 게 하나도 없어.”

그렇다. 다른 말로 ‘제로웨이스트 키친’이다.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시회 ‘냉장고 환상’(2021년 9월26일까지) 부대행사로 이루어진 류지현 작가의 특강을 듣던 참가자가 말한다. 금방 류지현 작가는 잘 안 마른다 싶은 것이 있으면 더 가늘게 썰어서 말리라고 말한 참이다. 찻잎을 말려서 소금을 만들고, 사과 껍질을 깎아 식초를 부어 사과식초를 만들고, 자투리 채소를 모아 미네스트로네(이탈리아 요리로 파스타나 쌀을 넣은, 채소가 많은 수프)를 만들고, 커피 찌꺼기도 모아 요리에 활용한다. 파와 쪽파 등은 먹다가 남으면 부엌에 마련한 작은 텃밭에 심는다.

<낭비와 욕망>(수전 스트레서 지음, 이후 펴냄)에 나오는 옛날 부엌과 비슷하다. 19세기 살림 매뉴얼에 따르며, 찻잎 찌꺼기는 카펫에 먼지가 덜 앉게 하는 데 활용됐다. “먹을 수 있는 것을 재항아리나 돼지통에 버리는 사람은 헤퍼서가 아니라 그것을 활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난받았다. 곰팡이가 필 것인가, 상한 것이 우려되느냐 등 고기의 ‘상한’ 정도(‘신선한’ 정도가 아니라)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도 달랐다. 시간이 경과한 케이크, 상한 버터, 상한 돼지기름에도 재활용 방법이 있었다. 알뜰한 주부는 남은 기름을 튼 손에 발랐다. 그래도 남은 쓰레기는 겨울 아궁이에 태워서 열을 내는 데 쓰고 여름에는 묻었다. 어떤 경우든 ‘버린다’고 할 만한 경우는 없었다. 영어의 쓰레기는 개러지(garage), 러비시(rubbish), 리퓨즈(refuse), 트래시(trash)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개러지’는 특별했다. 동물성 쓰레기와 채소 쓰레기를 지칭하는데 냄새가 나지만 여러 쓸모가 있기 때문에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강의 뒤 ‘냉장고 환상’ 전시를 기획자인 심효윤 아시아문화원 연구원과 함께 둘러봤다. 심효윤씨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알아가던 냉장고를 칼럼으로 정리하고 있다(‘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 전시회에서 가장 감동적인 작품은 문화원이 기획한 ‘일인가구·무연고자 부엌 조사 및 스토리텔링’과 연관돼 있다.

몸이 불편해지면서 요양원에 입원하게 된 김씨 할머니의 냉장고는 음식이 뭐가 들어갈 틈 없이 빽빽하다. 심효윤씨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술을 못 마시는 김씨 할머니 집의 담금주였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무연고자 유품으로 담금주가 있었다. 프로젝트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혼자가 되어 떠나간 이들도 한때는 자신과 누군가를 위해 냉장고를 채우고, 채워진 냉장고를 비우며, 또 담금주를 담그고 누군가와 함께 마시기를 기원하며 살았을 것이다.” 작가들은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냉장고 꽃무늬 그림, 냉장고 속 음식을 그렸다. 소비 칼로리별로 냉장고를 분류한 설치작품도 만들었다.

먹고 남은 뒤 말린 찻잎.

7월20일 화요일 관리비 고지서를 들여다보다

미션 첫째 주, 냉장고를 비우고 주말에 물김치를 해서 아파트 RFID(음식물쓰레기 개별계량기)에 2㎏을 넘긴 숫자를 두 번 찍었다(2.15㎏과 2.25㎏). 다른 날은 여름이라 출근하면서 갖고 나가 버렸다(150~250g). 지난달의 관리비 내역 고지서가 날아왔다. 6월에 모두 7.5㎏을 버렸다고 표시됐다. 한국 1인 음식물쓰레기 폐기량은 하루 368g, 1년 134㎏, 한 달 11㎏이다. 식당 등의 폐기물을 고려하면 평균 이상 수준이다. 놀라운 것은 딴 데 있다. 음식물폐기물 7.5㎏의 처리비용은 970원에 불과하다.

장기간 보관법, 양파잼.

7월21일 수요일 미나리 하나

미국에서 냉장고는 대공황기에 가격이 낮아졌는데, 판매회사들은 냉장고를 마련해 ‘절약’하라고 마케팅했다. “500g을 사면 15센트지만 750g은 19센트이고, 750g을 사서 냉장고에 넣어 보관하라”는 것이다(<낭비와 욕망>). 한국에서는 금성사가 1965년 처음 냉장고를 선보였다. 짧은 기간 우리는 냉장고에 보관하는 방법 외엔 모르는 바보가 됐다. 

“‘밖에 둬야 맛있는데 왜 냉장고에 넣죠?’ 좋은 토마토의 비밀이 (여기에) 숨어 있다.”(<사람의 부엌>) 바나나는 냉장고에 넣으면 안 되는 대표적인 과일이다. 남쪽 태생인 고구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냉장고에 넣지 않으면 훨씬 더 맛있다. 달걀도 실온에 둬도 한 달을 먹을 수 있다. 열대야와 함께 리추얼이 시작됐다. 밖에 내놓는 것이 망설여졌다. 싱크대 밑에 양파, 달걀, 당근, 감자, 토마토를 넣었다가 다음날 달걀은 냉장고에 넣었다. 냉장고 속에 있던 미나리를 꺼내 뿌리 쪽을 물에 담갔다. 저녁에 무침을 해먹기 전에 보니 미나리 하나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다. 너, 산 거니?

매일 작성한 미션 카드, 냉장고 물건을 적은 미션 카드가 빽빽하다.

7월24일 토요일 이엠을 주문하다

7월 초 기사를 준비하면서 음식물쓰레기 수거와 처리시설을 다녀왔다. 음식물쓰레기는 거의 100% 재활용된다. 100%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숫자다. 하지만 재활용 수치에는 음폐수가 포함된다. 서울 도봉구 음식물자원화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88%가 음폐수다. 12%는 살아난 걸까? 음식물로 만들어진 사료는 가열되고 분쇄되고 건조돼 원래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다. 모든 것이 섞여서 가장 낮은 질로 변했다. 에너지를 가해봤자 엔트로피 법칙(열역학 제2법칙), 음식물은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다.

예전에 취재했던 ‘똥의 극과 극’과 비슷하다. 집에서 재활용한다면 땅에 유익한 퇴비가 되지만, 시설로 들어가는 순간 냄새나고 소독해야 하고 멀리해야 하는 물질이 된다. 버리면 그냥 가루가 된다. 최선은 쓰레기가 되기 전 음식일 때 다 먹는 것이다.

“물건들은 추하기 때문에 버려지는 것인가 아니면 쓰레기장으로 향하기 때문에 추한 것인가?”(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 판단 이전에 버리는 행위로 추함은 결정된다. 버리면 추한 것이다. 행위는 물질을 결정한다. 쓰레기가 되기 전에 음식물을 구해야 한다. 음식물쓰레기 위에 이엠(EM·발효액)을 뿌리는 것이 가정에서 가장 많이 쓰는 ‘퇴비화’ 방법이다. 이엠을 사기로 했다(대형마트를 돌아다녔는데도 안 보여서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7월26일 월요일 결산 줌 회의

2주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한 일이 많다. “과소비가 확실히 줄었다.”(주연) “기분 좋은 반성문이었다.”(하딸) “냉장고 정리에서 나아가 물건들도 정리했다.”(고은)

“부엌은 차가운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꺼내 뜨거운 불로 익혀 먹는 공간일 뿐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을 통해 우리의 생명을 이어가는 곳”이라는 류지현 작가의 말처럼 많은 이가 부엌에 서서 많은 생각을 했다. “순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부엌이 반려공간이 됐다.”(김미화) “보관을 잘한다는 것보다 생명이란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됐다.”(초롱) “살아 있는 생명에 기한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생각이 다른 물건의 ‘생명력’에 대한 생각으로도 이어졌다.”(신은지)

송경호 대표는 정리하는 말을 덧붙이면서 “‘연결성’이란 단어가 많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인간과 인간의 모임에서 인간과 자연의 연결. 참가자의 “바나나가 새까매져서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는 데 대한 송 대표의 말. “밖에 매달아 시커메진 게 제일 맛있어요. 불안하더라도 이 방법이 옳다는 것을 믿으면 더 해보세요.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생명 있는 것을 들여다본 것이니까요.”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