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국정원입니다"..국회 출석 자처한 박지원에 與野 발칵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3일 국회 정보위원회를 찾아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두고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이른바 '소신 발언'을 하면서 논란에 휘말렸다. 야권은 국정원을 겨냥해 "김여정의 하명 기관으로 전락했다"(하태경 국민의힘 정보위원회 간사)라며 박 원장에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지만 여권에선 "국정원의 (공식) 입장이라기보다는 이 워딩을 그대로 사용해서 본인의 소신, 박지원 원장의 입장을 밝힌 것"(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정보위원회 간사"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앞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1일자 담화를 통해 "우리 정부와 군대는 남조선측이 8월에 또다시 적대적인 전쟁연습을 벌려놓는가 아니면 큰 용단을 내리겠는가에 대하여 예의주시해볼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김 부부장의 담화로 인해 지난달 27일 남북 통신선 복원 결정 이후 남북 대화 모멘텀에 기대를 걸었던 문재인 정부는 대북 관계에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는 평가가 많다.
그만큼 박 원장도 현재 정세를 대북 관계와 관련한 중대 분수령으로 인식한 듯 보인다. 박 원장은 지난해 7월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에 물꼬를 트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취임사를 밝히기도 했다.
'햇볕 정책'을 펼쳤던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자 '정치 9단'으로 불리는 박 원장은 음지에서 대북 문제에 공을 들여 왔다. 북측 채널과 접촉을 이어오며 남북 관계 개선을 시도해 왔다. 또 5월26일부터 6월1일 방미해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과 만나며 미국의 대북 제재 등과 관련해 논의를 가졌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고 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박 원장은 국회의원 등 오랜 공직 생활을 지내며 쌓아온 해외 인맥이 풍부하다. 이에 막후에서 한반도 외교안보 현안과 관련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돼 왔다. 지난해 6월 북한 당국이 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을 당시 문 대통령이 박 원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조언을 듣기도 했다.
훈련 예정시기인 8월 중순까지 남은 일정이 빠듯하고 훈련이 한미 합의 사안임을 감안하면 갑작스런 훈련 중단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국정원측에서 급히 국회 출석을 자처한 것은 훈련 연기의 필요성이 그만큼 높다는 정세 판단을 내렸거나, 비록 입장 천명에 그치더라도 정부의 대북 관계 개선 의지를 북측에 알리기 위한 조치로 볼 수 밖에 없다. 훈련 중단의 실현성 여부와 별개로 대북 관계와 관련한 정세 관리 차원의 발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국회 정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은 3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 전체회의가 끝난 뒤 브리핑에서 "박지원 국정원장이 한미 훈련의 중요성은 이해하지만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고 북한의 비핵화라는 큰 그림을 위해 한미훈련(중단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김 부부장이 한미훈련 중단을 요구한 것은 기존의 입장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북한은 향후 한미 간 협의 및 우리의 대응을 예의 주시하면서 다음 행보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국정원은 밝혔다"고 전했다.
하태경 의원은 "국정원은 정보부서이지 정책부서가 아니다"라며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라는 김여정 요구에 대해 국정원 입장을 밝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박 원장의 발언과 관련, "국정원의 입장이 공개되지 않아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박 원장이 제 입장을 수용하지 않아 항의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러자 김 의원은 "(박 원장이) 국정원에서 그렇게 판단한다는 말씀은 하셨다"며 박 원장이 국정원 판단을 인용해 개인적 의견을 피력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대미 관계와 관련한 북한의 입장에 대해서는 "다양한 정보를 종합할 때 북한이 지난 3년간 핵실험을 하지 않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지 않았는데 미국이 상응 조치를 안 해줬다는 것에 불만이 쌓인 것으로 보여 대북제재를 유예해 북한의 불신을 해소해 줘야 대화 유인이 가능할 것이라고 박 원장은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런 취지로 한미 연합훈련도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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