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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배달 체험기] 폭염 속 4시간 걸어도 일당 1만원대..치킨도 못 사먹는다 [언박싱]

입력 2021. 08. 04. 09:06 수정 2021. 08. 0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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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 많이 도전한다는 도보배달, 실상은?
4시간 일해도 치킨 못 사먹어
무자비한 '플랫폼 상사' 견뎌야
'그날 운'에 따라 배달비는 천차만별
보랭가방을 멘 기자가 편의점을 나서고 있다.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어떡하지? 5분밖에 안 남았네. 죄송해요, 죄송해요.” 지난 7월 29일 서울 서대문구 한 편의점. 이날 배달 주문을 처음 받았다는 직원은 편의점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주어진 시간 안에 배달 준비를 끝내야 하는데 물건을 찾지 못했던 것. 결국 준비시간을 3분 남기고서야 직원에게서 봉투를 건네받았다. 봉투 안에는 1.4ℓ 세제 2통과 500㎖ 음료 2개가 담겼다. 총 무게는 3.8㎏이었다.

“띠링~” 스마트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24분 안에 편의점에서 약 1.3㎞ 떨어진 곳에 배달하라’는 ‘배달 플랫폼 상사’의 지시(?)였다. 걷다 뛰기를 반복하면서 시간 내 배달을 마치고 받은 돈은 3110원(세금 제외). 첫 배달을 마쳤을 뿐인데 등에 땀이 흥건했다.

‘꿀알바’로 불리는 도보배달의 실상은 ‘극한 알바’였다. 폭염과 거리두기 장기화로 배달 주문이 늘어 고수익을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달리, 시간당 수입은 커피 한 잔 수준에 불과했다.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었지만 돈을 많이 벌려면 플랫폼이 원하는 시간에 나를 맞춰야 했다. 매주 달라지는 조건을 달성해야만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던 7월 마지막 주, 사흘 연속 도보배달을 해봤다.

배달가방 구매비, 세금 3.3%를 제외하고 사흘 동안 받은 총수입은 5만388원이었다. 김진아 CP
4시간 일해도 치킨 못 사먹어

기자는 지난 7월 29~30일 이틀간 퇴근 후 저녁시간, 토요일인 31일은 낮 3시간, 밤 3시간 동안 서울 마포구·서대문구 일대에서 도보배달을 했다. 근무시간은 총 12시간, 배달 건수는 15건이었다. 주문을 기다리는 대기시간을 포함하면 근무시간은 14시간 이상이었다. 배달가방 구매비, 세금 3.3%를 제외한 총수입은 5만388원. 하루에 버는 돈은 약 1만6000원이었다. GS리테일의 우딜, 배달의민족의 배달커넥터, 쿠팡이츠 배달파트너, 도보60 등 4개의 배달원 전용플랫폼을 통해 주문을 받았다.

도보배달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준비물은 보랭가방이다. 중고 거래를 통해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보랭가방을 샀는데, 몇 달간 도보배달을 했다는 가방 판매자는 이런저런 노하우를 알려줬다. 그는 “혹시 종일 일하려는 거냐? 요즘 같은 날씨에 오래 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마트폰 앱을 깐 뒤 간단한 가입 절차를 밟으면 누구나 배달원이 될 수 있다. 운송 수단이 필요 없기에 여자 배달원이 많은 편이다. 우딜은 지난해 기준 여성 배달원 비중이 28.8%였다.

지도에 선을 그어 이동 경로를 계산하는 인공지능(AI·왼쪽), 배달 수요에 따라 달라지는 배달비용. [우딜·쿠팡이츠 배달파트너 앱 캡처]
배달원 사정 안 봐주는 무자비한 ‘플랫폼 상사’

가방 판매자의 조언은 사실이었다. 체감온도가 40도 가까이 되는 낮시간대는 장시간 근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낮에 거리로 나섰다가 뜨거운 태양열을 견디지 못하고 일을 포기하기도 했다. 물론 열대야도 만만치 않았다. 걷다 보면 머리부터 등까지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낮보다 견딜 만했지만 그만큼 수당이 적어 수입이 줄었다. 며칠 동안 연이어 일하는 것도 버거웠다. 근무 3일째 되는 날에는 달리기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다리에 무리가 왔다.

하지만 폭염보다 무자비한 건 배달 플랫폼이었다. 평균 1㎞ 내외의 이동거리를 플랫폼이 지시한 시간 안에 가야 하는데, 실제 거리와 맞지 않는 때가 많았다. 직선거리로 이동 경로를 추천하기에 도로 상황도 반영되지 않았다. 마포구 연남동·망원동처럼 골목이 많거나 서대문구 연희동·창천동처럼 언덕이 많은 동네를 걸을 때는 주어진 시간 내 배달이 어려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라이더유니온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의 직선거리 기준 배달료와 배달시간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늦을 경우 배달시킨 사람이 평가를 안 좋게 줄 수 있어 시간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신호등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거나 길을 막는 사람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비켜 달라”고 말하는 일이 잦았다.

상사가 플랫폼이니, 난처한 상황을 마주해도 대응이 어려웠다. 손님이 현관문을 안 열어줘도 어려움을 호소할 사람이 없었다. 나체로 물건을 받는 남성을 만났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일을 그만하고 싶어도 배달이 배정되면 쉬기 어려웠다. 배정받은 배달을 거절하면 ‘당신의 평점이 낮아진다’는 경고문을 날리는 플랫폼도 있었기 때문이다.

배달물건이 쌓여 있는 올리브영 사업장. 김빛나 기자
‘그날의 운’에 따라 배달비는 천차만별

사흘간 플랫폼을 관찰한 결과, 마포구는 일반음식점을 제외하고는 외식 프랜차이즈, 편의점, 올리브영 순으로 주문이 많은 편이었다. 편의점 배달은 식품이 많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생필품 주문에 과자나 음료를 함께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올리브영에서도 기초화장품부터 보디용품까지 다양한 주문이 들어왔다. 폭염 여파로 아이스크림 주문은 낮부터 밤까지 꾸준히 많았다.

하지만 배달비는 배달원이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구조였다. 300m가 채 안 되는 거리를 배달할 때와 1㎞ 넘게 배달할 때의 금액이 같은 경우도 있었다. 여러 번 배달할 경우 플랫폼이 추가로 지급하는 프로모션 비용도 매주 달랐다. 기본 배달비도 시시각각 바뀌었다. 낮에는 3500원이었다가 밤에는 2500원이 되는 식이다. 라이더들도 프로모션 정책에 불만이 많았다. 음식점에서 만난 한 라이더는 “일괄적으로 공지하지 않고 지역따라, 그날 상황에 따라 프로모션을 진행하니 답답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불확실한 수입에도 도보배달원 간 경쟁은 치열했다. 보수가 적거나 배달거리가 멀어 고민하던 찰나의 순간에 다른 배달원에게 주문을 빼앗긴 경우도 많았다. 도보배달 정보를 공유하는 네이버 ‘배다트(배달과 다이어트)’ 카페는 가입자 수만 해도 10만명이다. 배달원들이 꼽은 도보배달의 최대 장점은 운동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다. 배달하는 날은 하루 2만보는 거뜬히 걷을 수 있어서다. 배달물량이 몰리는 날에는 운 좋으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일하려는 사람도 많으니 배달 플랫폼도 배달원에게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줄이는 추세다. 배달업계 관계자는 “거리두기 4단계로 배달 수요가 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는 수준까지는 아니다”며 “이제 일반인 라이더도 많아졌다. 특정 시간대를 제외하면 주문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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