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인종차별주의자'.. 인도네시아 反韓 감정 커지나

고찬유 2021. 8. 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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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혐오 중단' 한국의 이중성 꼬집어 
SBS 드라마, MBC 올림픽 사고로 사태 커져 
진종오 발언 후 한국 네티즌 잇따라 사과
 "경제력으로 무시하는 인식 개선 시급"
한국의 이중성을 꼬집는 삽화. 한국인들이 '아시아 혐오를 중단하라'며 백인들에겐 읍소하면서 동남아시아 국가 국민들을 노예 취급한다고 지적했다. SNS 캡처

'#SouthKoreaRacist' '#한국인종차별주의자' '#StopAsianHate(아시아 혐오 중단)'.

최근 인도네시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가장 뜨거운 해시태그(검색용 키워드) 운동이다. 인도네시아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제한 조치 연장 등에 밀리긴 했지만 한때 검색어 1위였을 정도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한국과 한류를 사랑했던 인도네시아에 반한(反韓) 감정이 커지는 분위기다.

4일 드틱닷컴 등에 따르면 최근 한국 사격의 간판 진종오의 부적절한 발언과 사과 논란이 인도네시아 반한 감정에 다시 불을 지폈다. 진종오는 지난달 28일 귀국 후 인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조직위(국제올림픽위원회)가 준비를 잘못한 것 같다. 테러리스트가 1위 하는 말도 안 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진종오가 지목한 선수는 2020 도쿄올림픽 남자 10m 공기권총 금메달리스트인 이란의 자바드 포루기다. 이스라엘 매체들이 포루기가 이란혁명수비대(IRGC) 조직원이었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이후 진종오는 SNS를 통해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고 사과했다. 인도네시아 매체들도 이 사안을 다뤘다.

인도네시아 SNS에서 인기 주제 1위에 오른 '#한국은 인종차별주의자' 해시태그. SNS 캡처

진종오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SNS 트위터에는 '#한국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드틱닷컴은 "이 해시태그는 인도네시아에서 1위를 차지했고, 여러 국가에서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K팝의 나라가 정말로 인종차별주의 국가인지 논쟁하고 실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이중성을 꼬집는 삽화. SNS 캡처

특히 한국의 이중성, '내로남불'을 꼬집는 삽화가 널리 퍼지고 있다. 한국인들이 백인들 앞에선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 아시아에 대한 혐오를 멈춰달라'고 읍소하는 반면, 동남아시아 10개국 국민들에겐 '너희는 노예 인종이야'라고 비웃는 장면이다. 한 교민은 "낯뜨겁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SBS가 드라마 '라켓소년단'의 인도네시아 비하 논란과 관련해 SNS 계정에 댓글로 사과하자 인도네시아 네티즌들이 제대로 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SNS 캡처

인도네시아의 반한 감정은 6월 이후 한국 방송사들의 잇단 사고와 맞물려 커지는 상황이다. 6월 14일 방영된 SBS 드라마 '라켓소년단' 5회에선 현지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욕으로 받아들이는 단어가 들어간 '개매너'라는 대사가 연거푸 등장했고, 인도네시아가 상대를 이기기 위해 무례한 행동을 한 것처럼 묘사했다. 당시에도 '인도네시아 모욕 및 비하'라는 비난이 비등했다.

지난달 23일 MBC는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방송하면서 인도네시아 위치를 말레이시아에 표기했다. 우리나라 위치를 북한의 개성쯤에 표시한 격이다. 더구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역사적으로 영토 분쟁, 문화적으로 원조 논쟁을 이어온 앙숙으로 '동남아의 한일 관계'라 불릴 만하다. 두 방송사 모두 인도네시아가 수긍할 만한 공식 사과를 하지 않았다.

MBC의 도쿄올림픽 개막식 방송 중 인도네시아 소개 장면. 인도네시아를 가리키는 표시가 말레이시아에 찍혀 있다. 화면 캡처

인도네시아 네티즌들의 반응은 차갑다. "영화 산업도 좋고 음악도 좋지만 인종차별은 참을 수 없다" "인종차별주의, 외국인 혐오, 여성 혐오 국가가 우리를 무시하고 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여전히 원시적이고 후진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라켓소년단'부터 시작해서 페미니스트인 자국 선수를 모욕하더니 이젠 이란 선수까지 모욕하는 한국은 문제 국가다" "아시아 혐오를 중단하자고 하면서 정작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노예나 테러리스트로 간주한다. 아시아가 K팝 산업 최대 시장이라는 걸 잊었나" 등이다.

현지인 지식인과 교민들도 이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에바 라티파(45) 국립인도네시아대(UIㆍ우이) 한국어문화학과 교수는 이날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한민족이라는 특수성과 경제 발전을 이뤄냈다는 자긍심이 일각에서 다른 국가를 차별하는 모습으로 변질된 것으로 보인다"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6년째 이 땅에 살며 인도네시아 근현대사를 집필한 배동선(58) 작가도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낮은 국가를 우습게 보는 인식이 내재돼 있다가 비하 발언과 비하 표현으로 표출된 것"이라며 "한국 내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인도네시아의 '한국은 인종차별주의자' 해시태그 운동에 사과한 한국 네티즌의 글. SNS 캡처

인도네시아는 SNS, 유튜브에서 한류 언급 및 시청 비율 세계 1위, 한국에 대한 국가이미지 조사(2018년)에서 '긍정' 비율(96%) 세계 1위다. 최근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그나마 한국 네티즌들이 인도네시아의 해시태그 운동 이후 SNS에 잇따라 사과를 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인도네시아 매체들이 한국인의 사과 행렬을 다루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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