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지네가 지배하는 섬, 해마다 슴새 3천 마리 포식

조홍섭 2021. 8. 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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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필립 섬에 어둠이 내리면 소리 없는 포식자가 사냥에 나선다.

루크 할핀 오스트레일리아 모나시대 박사 등은 호주 노퍽제도에 속한 작은 무인도 필립 섬에서의 현지조사와 동위원소 분석 등을 통해 왕지네가 이 섬에 가장 많이 서식하는 바닷새인 검은날개슴새를 적극적으로 사냥해 섬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 구실을 한다고 과학저널 '아메리칸 내추럴리스트'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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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길이 30cm 남태평양 필립 섬 고유종, 밤중에 땅속 둥지 새끼 사냥
필립 섬의 최상위 포식자인 왕지네과 고유종 지네와 그 먹이인 검은날개슴새. 땅굴 둥지에서 키우는 어린 슴새 새끼가 공격을 받는다. 사진에는 지네의 크기가 과장되게 표현됐다. 지네의 실제 크기는 28∼30㎝이다. 루크 할핀, ‘아메리칸 내추럴리스트’ (202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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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필립 섬에 어둠이 내리면 소리 없는 포식자가 사냥에 나선다. 올봄 태어난 검은날개슴새는 땅굴 둥지에서 길이 30㎝의 무척추동물 포식자와 맞닥뜨린다.

1984년 이 섬에서 처음 발견된 왕지네 과의 고유종인 이 지네는 앞다리가 변형된 독니로 어린 새의 몸에 독을 주입해 몸을 마비시킨 뒤 서서히 체액을 빨아먹는다. 해마다 알을 하나만 낳는 이 슴새 부부는 올해 번식을 망쳤다.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 노퍽제도에 자리 잡은 필립 섬은 사람이 들여온 돼지, 염소, 토끼로 황폐화했다가 가축을 제거하면서 생태계가 회복되고 있다. 루크 할핀 제공

루크 할핀 오스트레일리아 모나시대 박사 등은 호주 노퍽제도에 속한 작은 무인도 필립 섬에서의 현지조사와 동위원소 분석 등을 통해 왕지네가 이 섬에 가장 많이 서식하는 바닷새인 검은날개슴새를 적극적으로 사냥해 섬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 구실을 한다고 과학저널 ‘아메리칸 내추럴리스트’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이제까지 왕지네가 먹이로 사냥하는 척추동물로는 양서류, 박쥐, 도마뱀, 뱀 등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 새가 대상에 추가됐다. 할핀 박사 등은 “왕지네가 무얼 먹는지 알아봤더니 죽은 슴새 새끼에서 일관되게 물린 상처를 발견했고 지네 한 마리가 슴새 새끼를 공격해 먹는 것을 실제로 목격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땅속 둥지에서 자라는 검은날개슴새 새끼. 필립 섬에서 가장 개체수가 많은 바닷새이다. 트루디 채트윈 제공.

연구자들이 섬의 슴새 밀도와 공격 빈도 등을 토대로 추정한 결과 면적 207㏊의 섬에서 해마다 왕지네가 사냥해 포식하는 검은날개슴새 새끼의 수는 2109∼3724마리에 이를 것으로 계산했다. 그러나 검은날개슴새는 이 섬에 서식하는 13종의 바닷새 가운데 가장 많아 번식 쌍이 1만9000쌍에 이르기 때문에 “지네의 포식은 충분히 회복 가능한 수준”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검은날개슴새는 30년 이상 장수하는 종이고 한 해에 새끼 한 마리만 기르는 등 번식력이 약하다. 따라서 지네는 슴새의 개체수에 장기적인 영향을 끼치는 포식자 구실을 한다.

왕지네를 정점으로 한 필립 섬 생태계의 먹이그물. 루크 할핀 외 ‘아메리칸 내추럴리스트’ (2021) 제공.

연구자들이 조사한 지네의 먹이 가운데 척추동물은 48%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30.5%포인트가 도마뱀이나 도마뱀부치 같은 파충류였고 검은날개슴새는 7.9%포인트를 차지했다. 물고기도 9.6%포인트였는데 다른 새가 둥지에서 떨어뜨린 것이었다.

연구자들은 “바닷새가 잡은 물고기나 오징어를 둥지에 가져와 새끼에게 먹이는데 지네는 새를 포식함으로써 바다의 영양물질을 육지에 퍼뜨리는 생태계의 포식자 노릇을 한다”고 논문에서 설명했다. 이렇게 옮겨온 영양물질이 식물의 양분이 되고 황폐한 곳에 식물이 자라면 슴새가 번식하는 순환이 일어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검은날개슴새 새끼를 포식하는 왕지네의 모습. 루크 할핀 외 ‘아메리칸 내추럴리스트’ (2021) 동영상 갈무리.

사실 필립 섬에는 1980년대까지 왕지네가 매우 드물었다. 사람들이 퍼뜨린 돼지, 염소, 토끼가 섬의 생태계를 황폐화했기 때문이다.

이후 도입한 가축을 제거하자 헐벗은 땅에 숲이 살아났고 숲 속 땅바닥에 굴을 파고 둥지를 트는 검은날개슴새가 급증했다. 이후 슴새 새끼를 포식하는 왕지네도 크게 늘었다.

연구자들은 “필립 섬의 왕지네는 육지의 육식동물과 비슷한 생태적 지위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필립 섬의 왕지네는 30㎝까지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용 논문: The American Naturalist, DOI: 10.1086/71570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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