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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여백신 희망자 줄 섰는데..멀쩡한 AZ백신 폐기되는 이유

이홍근 기자 입력 2021. 08. 05. 16:39 수정 2021. 08. 0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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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서대문구청 대강당에 마련된 ‘서대문구 제2호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 개소 둘째날인 지난달 20일 백신을 맞은 고3 학생들과 시민들이 이상 반응 확인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경기도 용인의 한 위탁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간호사 A씨는 최근 관할 보건소로부터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11회분을 폐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2차 접종도 AZ백신을 맞겠다’는 50대 남성 B씨의 요구로 보건소에서 AZ 백신 1바이알(12회분)을 받았는데, 보건소는 “B씨에게 접종할 1회분 외 나머지 11회분은 전량 폐기하라”고 지시했다. A씨는 “잔여백신을 등록하면 1초도 안 돼서 마감될 정도로 백신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멀쩡한 백신을 버리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장이라도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잔여백신 접종 희망자가 쏟아지는 가운데 곧바로 접종해도 문제가 없는 코로나19 백신이 폐기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는 백신 품질에 문제가 없더라도 AZ백신 개봉분은 ‘1차 접종에 사용하지 말라’는 질병관리청의 지침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고연령층으로 AZ 백신 1차 접종 대상자를 제한하던 지난 6월 만들어진 지침이 지금까지 유지되면서 접종에 쓰일 수 있는 백신마저 폐기되고 있는 것이다. 보건소가 A씨에게 백신을 폐기하라고 지시한 것도 지난 6월 만들어진 ‘위탁의료기관 2차 접종 시행지침’에 따른 것이다.

AZ 백신은 한번 개봉되면 6시간 이내에 소진해야 한다. 이 때문에 사용하고 남은 백신은 잔여백신으로 등록돼 이 시간 내에 접종이 가능한 시민에게 기회가 돌아간다. 그럼에도 A씨가 폐기한 사례처럼 품질에 문제가 없는데도 1차 접종 분량으로 활용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고, 이 같은 사실은 질병관리청도 파악하고 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공개한 ‘국내 백신 접종 시작 후 폐기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 2월26일부터 7월1일까지 백신 8886회분이 폐기됐다. 접종에 쓸 수 없는 ‘온도 일탈’로 폐기된 백신이 7667회분(86.2%)으로 가장 많았지만, ‘접종과정 오류’에 따른 폐기도 113회분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접종 가능한 백신이 폐기되는 것은 수급 상황이 불안정한 여러 백신들 간에 1차와 2차 ‘접종 주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학계에서는 1~2차 접종 사이의 기간을 AZ는 8~12주, 화이자는 3주, 모더나는 4주로 권고하고 있다. 지난 6월 기준으로 방역당국은 AZ의 접종 간격을 11~12주로 정해놨었는데, ‘남는 백신’이라는 이유로 1차로 주사를 맞췄다가 석달 가까이 지난 뒤 접종을 못하는 상황 등을 염두에 두고 지침을 만든 것이다. 최근 발표된 ‘8~9월 예방접종 시행계획’에서는 AZ도 8주 간격으로 맞도록 조정됐지만, ‘4주 간격’으로 접종하기로 정한 화이자·모더나와는 여전히 주기가 일치하지 않는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AZ는 접종 간격이 길어서 2차 접종분 확보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1차 접종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AZ 접종 이후 화이자를 맞는 ‘교차접종’도 가능한 상황에서 백신 수급이 불확실하던 6월 당시 지침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질병관리청도 접종 가능한 백신의 폐기 사례를 인지하고 있으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지침이 만들어진 6월 말까지만 해도 50대 미만의 AZ 접종은 금지돼 있었고, 50대 이상도 2차는 mRNA 백신(화이자·모더나)으로 바꾸려던 중이라 해당 백신을 맞을 대상군이 별로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는 12일부터 60~74세 미접종자 대상으로 AZ 1차 접종이 다시 시작되는 만큼 멀쩡한 백신을 폐기하지 않도록 지침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백신 폐기와 관련해 “9월까지 1차 접종이 거의 완료되기 때문에 (당국이) mRNA 백신 쪽으로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가능한 낭비는 하지 않아야 하지만 정부가 mRNA 백신 수급에 자신 있고 AZ 백신이 인기가 없다는 점도 고려된 것 같다”고 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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