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금지" 벨라루스..올림픽 대표 망명으로 드러난 '독재국가'의 민낯

박용하 기자 2021. 8. 5.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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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7년째 집권’ 루카셴코 정권
플래시몹 시위에 황당 선언
인권 탄압에 교도소 곧 포화
“반정부 인사 수용소 건설”

도쿄 올림픽에 참가했다가 폴란드로 망명한 벨라루스 육상대표 크리스티나 치마누스카야가 4일(현지시간) 바르샤바에 도착해 벨라루스 반체제 인사 파벨 라투시코(왼쪽)와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바르샤바 | AP연합뉴스

올림픽은 각국이 국력을 선전하는 장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숨기려 하는 치부를 드러낼 때도 있다. 올해 도쿄 올림픽에서는 ‘유럽의 마지막 독재국가’ 벨라루스의 실태가 폭로됐다. 육상선수 크리스티나 치마누스카야의 망명 사건으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정권의 비상식적인 인권탄압이 드러난 것이다.

지난해 6선 연임에 성공하며 27년째 집권 중인 루카셴코는 집권 전까지는 범죄 척결로 대중들의 호감을 산 인물이었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뒤 반대파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며 권위적인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3선 금지를 철폐하고 장기집권 야망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그의 탄압은 상식을 벗어났다. 2006년 시위대가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로 말없이 박수를 치는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벌이는 깜짝 행사) 형식의 시위를 벌이자 루카셴코는 “참전용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공개석상에서 박수치는 것을 금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시위대는 휴대전화 벨소리 울리기, 아이스크림 먹기 등의 시위를 벌였다. 2012년에는 비행기로 비판 메시지와 함께 테디베어 인형을 살포하는 시위도 벌어졌다.

날이 갈수록 루카셴코가 잡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지며 교도소는 포화 상태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CNN은 4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정부가 소비에트 시절 미사일 저장시설 부지에 반체제 인사들을 가두기 위한 강제수용소를 건설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루카셴코의 탄압 대상에는 스포츠 스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해 8월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포함한 1000여명의 선수들이 시위대에 대한 고문 금지와 새로운 선거를 요구하는 공개 서한에 서명했다. 그러자 선수 95명을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구금하고 그중 7명은 기소했다.

체육계 탄압은 후폭풍을 불렀다. 실력 있는 선수가 축출된 자리를 억지로 메꾸려다 보니 국제대회 성적이 떨어진 것이다. 벨라루스는 2016년 리우 올림픽 때 금메달 1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4개를 땄지만 도쿄 올림픽에선 이날까지 금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를 획득하는 데 그쳤다.

루카셴코는 최근 정부 인사들과 회동하면서 올림픽 성적과 관련해 “선수들이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고 현지 매체 ‘BELTA’가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그는 또 “실패에 대한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대표팀 일부 코치진이 이번 올림픽이 끝난 뒤 귀국을 회피할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루카셴코 정권의 인권탄압이 계속되자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최근 벨라루스 관리들과 관련 단체들의 자산을 동결하는 등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루카셴코는 올해 러시아와의 정상회담만 4차례 개최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러시아가 인근 국가들의 반러시아 전선 확대를 막기 위해 벨라루스 독재정권을 이용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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