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탄소중립 시나리오 뜯어보기] ①잔여 배출량·원전 편

윤지로 2021. 8. 7.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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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시나리오에 따라 0∼2억t 배출
프랑스와 스위스는 순 배출량 '제로'
독일은 넷 제로 넘어 순 흡수국으로
원전 비중은 나라마다 큰 차이
'원전 확대'하는 나라는 없어
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이 지난 5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탄소중립 실현 방향을 담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공개하고 대국민 의견수립을 진행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공개된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두고 말이 많다. 환경단체는 “탄소 중립 없는 탄소 중립 시나리오”라고 비판하고, 산업계는 “달성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는 입장이다. 논란이 되는 내용은 △잔여 배출량 △원전 비중 △산업 부문 감축량 △달성 가능 여부 등이다. 우리보다 앞서 탄소 중립을 선언한 유럽에서는 이 부분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을까. 영국과 독일, 프랑스, 스위스 네 나라의 정부 혹은 탄소중립위원회와 비슷한 성격을 띠는 기관이 발표한 시나리오를 토대로 2회에 걸쳐 짚어본다.

◆잔여 배출량: 독일은 넷 제로 넘어 ‘탄소 흡수’, 프랑스·스위스는 ‘넷 제로’, 영국은 다양

탄소 중립이란, 이산화탄소(온실가스)를 배출한만큼 다시 흡수해서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온실가스를 줄인다 하더라도 소의 트림에서 나오는 메탄처럼 도저히 줄일 수 없는 배출량이 있기 때문에 이런 개념이 도입됐다.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가 내놓은 2050 시나리오는 크게 3가지 안으로 구성됐다. 1안의 배출량은 1억5390만t, 2안은 1억3720만t, 3안은 8260만t이다. 2018년 배출량(7억2760만t)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79%(1안), 81%(2안), 89%(3안)가 줄어든다.

이렇게 배출한 온실가스는 숲이나 온실가스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로 다시 흡수한다. 1안에서는 그 양이 1억2850만t, 2안은 1억1850만t, 3안은 8억2600만t이다. 이렇게 해서 최종적인 순 배출량이 각각 2540만t, 1870만t, 0t이 된다. 3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실제 탄소 중립을 그린 건 3안 하나인 셈이다. “탄소 중립 없는 탄소 중립 시나리오”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윤순진 탄중위 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유럽연합(EU)이라든지 영국의 경우에도 시나리오에 잔여배출량이 포함돼 있다. 완전한 순 제로 시나리오만 들어가 있지는 않다”고 했다. 
EU 전체 시나리오엔 잔여 배출량이 있지만, 개별 국가를 살펴보면 잔여 배출량 없는 넷제로나 심지어 마이너스 배출(온실가스 흡수)을 목표로 둔 나라도 있다. 먼저 영국은 기술 적용 가능성과 태도 변화 등에 따라 3가지 선택지를 마련했다. 먼저 첫 번째 안은 ‘코어 옵션’(Core options)으로 비용 면에서나 기술 면에서나 달성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나리오다. 여기서는 2억t 남짓 배출하고 소량을 흡수해 1억9300만t을 순 배출한다. 넷 제로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

코어 옵션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게 ‘추가 야심 옵션’(Further Ambition options)다. 보다 진일보된, 그러나 아직 상용화를 장담하기 어려운 탄소 포집 기술을 적용해 이산화탄소 순 배출량을 3500만t으로 줄인다. 

‘불확실한 옵션’(Speculative options)은 순 배출량을 0으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넷 제로 시나리오다. 다만, 영국 기후변화위원회(CCC)는 “불확실한 옵션은 준비 안 된 기술을 포함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데다 사회적으로 수용되기 힘든 내용이 있다”며 “2050년까지 가능할 지 불확실하지만, 이 옵션 가운데 일부는 영국 내부적으로 넷 제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보면, 영국도 한국처럼 3가지 안 가운데 하나만 넷 제로인 셈이다. 다만, 각 분야 별로 어떤 기술이 적용 가능하며 실현 가능성이 어떻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했다는 차이가 있다.

프랑스와 스위스는 모두 말 그대로 순 배출을 0으로 하는 넷 제로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 프랑스의 2018년 배출량은 4억4500만t이었다. ‘프랑스 국가 저탄소 전략’을 보면, 2050년에는 8000만t을 배출하고 이와 비슷하거나 약간 더 많은 양을 흡수해 순 배출량을 제로로 맞출 계획이다. 

스위스는 ‘장기 기후 전략’에서 2050년 1180만t을 배출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를 스위스 국내에서 탄소포집·저장(CCS)과 네거티브 배출기술(NET)을 적용해 700만t, 해외 NET로 480만t 흡수해 배출량을 전부 회수할 계획이다.

독일은 지난 5월 탄소중립 달성 시점을 2050년에서 2045년으로 5년 앞당긴 바 있다. 독일은 당초 2045년 배출량을 8200만t까지 줄인 뒤, 2050년에는 6200만t을 배출하고 6400만t을 흡수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정부의 온실가스 저감 목표가 불충분하다고 결정함에 따라 2045년 넷 제로를 달성하고, 2050년에는 나라 전체가 ‘온실가스 흡수원’이 될 전망이다.
◆원전 비중: 나라마다 천차만별… ‘늘리는’ 나라는 없어

한국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는 원자력의 비중이 6.1∼7.2%로 지금보다 약 4분의 1에서 5분의 1로 줄어든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과 산업계와 원전 학회 등에서는 ‘대부분의 국가가 원전 비중을 최소 20% 이상 유지한다’거나 ‘가장 안정적인 원전을 확대하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럽 4개국의 시나리오를 보면, 원전 비중은 나라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아예 ‘탈원전’을 하는 나라도 있고, 여전히 큰 몫을 남겨두는 나라도 있다. 다만 비중을 늘리는 나라는 없었다.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탈원전을 선언한 대표적인 나라다. 이에 따라 2010년 발전의 22%를 책임졌던 원전의 비중은 2020년 11%로 감소했고, 2022년에는 탈원전에 접어든다. 독일은 석탄이나 원전을 완전히 배제하고 100%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독일의 탄소 중립 시점인 2045년이면 재생에너지가 91%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에너지저장장치, 수소 등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는 발전 부문 탄소 배출량이 거의 없는 나라다. 인구가 워낙 적기도 하지만, 전기를 대부분 원자력과 수력으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2015년 원자력의 전력 생산 비중은 34%, 수력은 59%로 두 발전원이 93%나 차지한다. 그러나 2017년 신규 원전을 짓지 않는 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해 탈원전 수순을 밟고 있다. 줄어드는 원전은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게 된다.

영국에서는 2000년 이후 전체 발전량 중 20% 가량을 원자력이 담당해왔다. 영국의 원전 설비 용량은 9GW인데 이 가운데 8GW가 2020년대 폐기될 예정이다. 폐쇄 원전을 대체하기 위해 3기의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데, 이 중 1기(3GW)는 건설 중이고 2기는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영국 CCC는 “향후 소형모듈원전(SMR) 사용에 따라 원전 의존도가 올라갈 수 있다”고 문을 열어두긴 했지만, 시나리오에서는 2∼5%로 지금보다 비중을 줄였다.

한국처럼 원전이 정치 쟁점화된 프랑스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프랑스는 1970년대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원전을 크게 늘려 현재 전력 생산 비중이 70%나 된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한 가지 발전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번지면서 2035년까지 원전 비중을 50%로 낮추기로 한 상태다. 그러나 그 이후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 없다. 프랑스 원전의 평균 나이는 35년으로 56기 가운데 거의 절반이 5년 내 설계 수명 40년을 넘긴다.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임에도 방향이 서지 않은 건 정치적 이유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는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탈원전을 주장하는 녹색당과 풍력에 반대하며 원전을 고수하자는 우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절반은 원자력을 환경 ‘위협’이라고 응답했고, 47%는 ‘기회’라고 답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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