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진 치킨 양념과 뼛조각..'재활용품 악취'가 코를 찔렀다, 폭염 속에서

이승욱 2021. 8. 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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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기자가 '재활용쓰레기 선별작업' 해보니
9번 세척해도 염분은 그대로 남아 버리는 재활용품 수두룩
플라스틱 비닐 제거 고역..비닐성분 우유갑은 종이와 분리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수색동 재활용 선별시설에서 <한겨레> 이승욱 기자가 재활용품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은평구 제공

무지막지하게 쏟아져 나왔다. 컨베이어 벨트 위 재활용 쓰레기들은, 손도 못 댔는데 멀어져갔다. 슬슬 겁이 났다.

지난 5일 아침 7시 서울 은평구 수색동 재활용 선별시설. 33m 컨베이어 벨트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양쪽에 10명씩 분리 작업을 할 20명이 자리를 잡았다. 밤새 동네 곳곳에서 날마다 50t씩 몰려드는 재활용 쓰레기는 이들의 손을 거쳐 다시 자원으로 탄생한다.

① “재활용품, 버리기 전 가볍게 한번만 씻어주세요” 작업장에 들어서자마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얼마 안 돼 냄새의 정체를 알게 됐다. 치킨 포장 상자에서는 어김없이 먹다 남긴 양념과 치킨 뼈가 쏟아졌다. 피자나 케이크 포장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음식물 찌꺼기가 폭염 속에서 역겨운 악취를 뿜어냈다.

음식물 찌꺼기는 냄새만 괴로운 게 아니라 재활용 자체를 막는다. 폐기물에 남은 염분은 재활용품 판매 가능 여부를 결정한다. 그런데 9번가량 세척을 해도 염분이 지워지지 않아 그냥 버려야 하는 재활용품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엄덕진 운영소장은 “일본은 집에서 재활용 폐기물을 미리 한번 씻고 버리는 게 생활화돼 있어서 분별 과정에서도 5번 정도만 세척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9번을 해도 부족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수색동 재활용 선별시설 내부 모습. 매일 50톤이 넘는 재활용 폐기물이 이곳에 모여든다. 은평구 제공

② “무섭다. 검정 봉투 속이…’ 작업이 한창일 때 검은 봉투 하나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온다. 작업자들이 두려워한다는 바로 그 검은 봉투다.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무심코 옆구리를 뜯었더니 담배꽁초가 터져 나온다. 절어 있는 담배 냄새가 작업장을 뒤덮었다.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를 검정 봉투에 담아 재활용품으로 내놓는 것은 매일 선별 작업을 하는 이들에게 단순히 부주의한 행동이 아닌, 사기에 가까운 일이다.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수색동 재활용 선별시설에서 <한겨레> 이승욱 기자(왼쪽)가 재활용품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은평구 제공

작업자들은 재활용품이 아님에도 환경미화원들이 고생해서 거둬 선별시설까지 흘러 들어오는 ‘그냥 쓰레기’ 양이 엄청나다고 한다. 하루 평균 들어오는 재활용품 50t 가운데 대부분은 선별 작업 뒤 그냥 버려진다. 서울 전체로 보면 2019년 기준 재활용 폐기물 141만8390t 가운데 40~45%는 재활용품이 아닌 그냥 쓰레기라고 한다.

③ “우유갑·종이컵, ‘종이’가 아닙니다” 종이라고 다 같은 종이가 아니라는 사실도 이날 체감했다. 선별할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 바로 종이 속 우유갑과 종이컵을 골라내는 일이었다. 무심코 우유갑을 종이로 분류했다가 몇차례 지적을 받았다. 선배 작업자는 “우유갑이나 종이컵은 성분에 비닐이 있어 따로 분리해야 한다”며 “우유갑이나 종이컵을 다른 종이상자와 함께 묶어서 가져오면 이를 다시 구분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처음부터 따로 분리해 내놓도록 캠페인을 하거나 제도 개선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④ “화장지 포장 비닐에 담지 마세요” 선별 작업 중 복병을 만나기도 했다. 바로 두루마리 화장지 포장 비닐이었다. 이 비닐은 일반 비닐봉지와 달리 아무리 손가락에 힘을 줘도 찢어지지 않았다. 가위를 쓰면 간단하지 않으냐고? 그건 작업장 컨베이어 벨트 속도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일일이 가위를 썼다가는 재활용 폐기물을 선별할 수 없다. 이순자 작업반장은 “가장 뜯기 어려운 게 화장지 포장 비닐이다. 여기에다 재활용 폐기물을 넣어서 버리면 뜯느라 손이 아파서 혼이 난다. 일반 비닐봉지에 넣어주기만 해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수색동 재활용 선별시설 내부 모습. 은평구 제공

⑤ “플라스틱 용기에 붙은 비닐 꼭 제거해야” 플라스틱 용기나 음료수 페트병 등에 붙어 있는 비닐이나 라벨을 떼어내는 일도 대부분 작업자의 몫이다. 지난해 12월25일부터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는 투명 플라스틱 라벨을 떼어낸 뒤 분리수거하도록 의무화됐지만 현실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서근식 작업부장은 “제도가 달라졌지만 아직 가정에서 재활용품을 제대로 분리 배출하지 않는다”며 “특히 플라스틱 용기에 비닐이 붙어 있는 상태로 선별장에 도착하면 이걸 정확하게 골라서 떼어내기가 참 어렵다”고 했다.

오전 작업이 끝나갈 때, 엄 소장은 “사람들은 여기서 재활용 쓰레기를 종이나 페트병 등 종류대로 분류하기만 하는 줄 알지만 실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같은 종이라도 코팅 종류별로 구분해야 한다. 플라스틱도 음식물 찌꺼기가 남았는지, 비닐이 붙었는지에 따라 처리 요령이 다르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각 가정에서 분리 배출할 때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꼽아달라’는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100% 정확히 배출해 달라곤 못 하겠습니다. 배출 전 재활용품을 한번만 씻어서 내놓아주면 좋겠습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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