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소리 나는 NFT 열풍, 예술 시장 판 뒤집을까

한겨레 입력 2021. 8. 10. 05:06 수정 2021. 8. 10.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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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대 고가 미술품부터
K팝·방송 등 대중문화까지
독립예술가 새 판로 생기고
'움짤·밈' 가치 창출 가능성도

표현이 진부해도 어쩔 수 없다. 2021년의 인터넷은 “억!” 소리가 났다. 엔에프티(NFT, 대체 불가능 토큰) 기술 때문이다. 디지털 아트 작가인 ‘비플'의 작품이 한국 돈으로 셈하여 780억원에, ‘크립토펑크’ 시리즈의 한 작품이 132억원에 팔렸다. 유명 작가 뱅크시의 작품을 1억원에 사서 불태운 다음 “이제 원본은 없다”고 선언하면서 그 퍼포먼스를 엔에프티로 팔았더니 외려 값이 4억원으로 뛴 일도 있었다.

바다 건너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꺾은 대국의 엔에프티는 2억5천만원, 한국 예술가 ‘미스터 미상’의 작품 <머니 팩토리>는 5억4천만원에 거래되었다. 7월 말, 미스터 미상의 작품 하나가 엔에프티 999개로 시장에 나왔다. 엔에프티는 판화처럼 하나의 도안으로 번호만 다른 여러개의 토큰을 찍어낼 수 있다. 합하면 1억원이 넘는 액수다. “아무리 미스터 미상이라도 999개는 많지 않을까? 다 팔리는 데 오래 걸리겠지?” 나의 착각이었다. 27분 만에 999개의 토큰이 ‘완판’되었다.

꼭 이렇게 값비싼 미술 작품만 엔에프티 시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친숙한 대중문화도 엔에프티로 나오고 있다. 7월 초에는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가 블록체인업체 두나무와 손을 잡고 트와이스, 투피엠(2PM) 등 소속 가수들 관련 엔에프티를 곧 발행할 것이라는 소식이 눈길을 끌었다. <무한도전> 특집 로고 같은 <문화방송>(MBC)의 추억 돋는 영상도 엔에프티로 발매되기 시작했다. 인기 방송인과 아이돌 팬클럽이 구매자로 나선다면 엔에프티 시장은 더욱 뜨거워질 터다.

돈 이야기는 물릴 만큼 했으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엔에프티의 시대, 예술은 어떤 변화를 겪을까? 여러 분야 전문가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내가 들은 얘기를 전하기 전에 엔에프티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필요하다. 질문, 중요한 정보를 적은 장부는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까? 금고에 꼭꼭 숨길 수도 있지만, 거꾸로 장부를 엄청 많이 복사해 엄청 많은 사람에게 맡겨도 된다. 블록체인의 ‘분산 원장' 방식이다. 이를 위해 장부를 맡아줄 사람을 많이 구해야 한다. 장부 관리에 참여하면 ‘코인’을 주는 것은 그래서다. 토큰 역시 코인처럼 쓰이는 보상물인데, 두 종류가 있다. 번호가 붙는 토큰과 붙지 않는 토큰이다. 고유번호가 붙어 바꿔치기 못하는 토큰을 ‘대체 불가능한 토큰’(non-fungible token)이라고 한다. 머리글자를 따 ‘NFT’다. 이 엔에프티 기술을 어디에 쓸까? 예술품 거래에 맞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예술품에 연결해 고유번호 붙은 토큰을 발행하고 예술품 대신 사고파는 것이다.

‘비플’로 알려진 디지털 아티스트 마이크 윙클맨이 지난 2월21일께 자택 스튜디오에서 디지털 아트 프로세스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엔에프티 작품을 경매를 통해 6930만달러에 판매한 바 있다. AP 연합뉴스

창작물을 거래하는 방식이 바뀌면 창작자도 영향을 받는다. 어떤 작가들에게 엔에프티는 새로운 기회다. <비비시>(BBC) 보도를 보면 캐나다의 화가 앨러나 에징턴은 엔에프티로 작품을 팔아 빚도 갚고 집도 사고 아들 치료에 쓸 돈도 벌었다 한다. “새로운 판매 방법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만도 독립음악가에게는 반가운 일이죠.” 밴드 원펀치의 보컬 박성도가 내게 한 말이다. ‘아트 & 테크 커뮤니케이터’로 자신을 소개하는 엔에프티 연구자 김민지는 한국 엔에프티 예술가들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코로나19로 전시 기회가 줄고 작품을 팔 길이 막힌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엔에프티 창작에 관한 지식을 쌓고, 대가를 요구하지 않은 채 다른 작가에게 그 지식을 나누어 주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창작자뿐 아니라 수용자 역시 영향을 받는다. 김민지는 “내가 주목하는 엔에프티의 가치란 연결성”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외국의 경우 ‘크립토펑크’처럼 시리즈로 나온 “엔에프티 작품을 소유한 사람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상어가족’과 ‘핑크퐁’으로 유명한 스마트스터디의 이승규 부사장은 “엔에프티가 메타버스와 결합하면 모두의 예술 혹은 예술의 민주화를 촉진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물음의 답도 바뀔 수 있다. 지금껏 예술로 다루어지지 않던 인간 활동이 예술 시장의 영역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미디어아트나 공연이나 체험 등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던 인간 활동이 엔에프티를 통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부사장의 의견이다. 한편 이화여대 김남시 교수는 “기존에 사고팔던 대상이 아니라 에스엔에스(SNS)에서 공유만 되던 조야한 이미지나 ‘움짤’이나 인터넷 ‘밈’ 등이 엔에프티를 통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상황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종류의 예술을 탄생시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엔에프티에 대해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엔에프티가 가져올 예술의 변화도 한계가 있다. “엔에프티가 예술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는 있지만, 기존 예술계의 질서를 전복시키리라 단언하기는 어렵다. 유명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 더욱 돈을 벌고 유명 작가일수록 엔에프티 작품을 고가에 판매할 가능성이 높다”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엔에프티 시대가 되더라도 예술계 안에서 부의 쏠림 현상은 여전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엔에프티를 자산으로 생각하고 접근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저작권 전문가이자 스스로 만화가이기도 한 이영욱 변호사는 “작품의 엔에프티를 산다고 해서 작품의 저작권이나 작품을 이용하고 전시할 권리까지 이전받는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앞으로 “모종의 규약과 체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엔에프티 시장은 불안정한 채로 머물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글 첫머리에 언급한 비플 역시 “엔에프티 시장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지금 시장은 거품이 끼었다”고 쓴소리를 한 일이 있다. 780억원에 작품을 팔고 난 직후에 한 말이니, 질투심으로 뱉은 괜한 소리는 아닐 터이다.

김태권(NFT 시대에 기대가 큰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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