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수급자 기다리다..'차박' 생활 50대, 차 안에서 숨졌다

강은 기자 2021. 8.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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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8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 초안산 인근에 주차된 차량에서 50대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차량 뒤편에 먹다 남은 편의점 도시락이 그대로 놓여 있다. 강은 기자


지난 8일 오전 8시30분 서울 노원구 월계동 초안산 인근 길가에 세워진 승용차에서 50대 남성 김모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주변 택시기사들에 따르면, 근처 사우나에서 장기 투숙하던 김씨는 코로나19로 사우나에서 생활하기 어렵게 되자 차에서 숙식을 해결해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가 깨트린 창 사이로 김씨의 담뱃갑과 테가 부러진 안경이 보였다. 김씨의 ‘집’이었던 낡고 찌그러진 은색 소나타 차량 왼쪽 뒷바퀴 부근에는 지난 밤 먹다 내놓은 것으로 보이는 편의점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당일 아침 운동을 나온 주민이 차량에 쓰러져 있는 김씨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노원경찰서 관계자는 9일 “타살이나 극단적인 선택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 “유족 진술 등을 종합했을 때 지병에 의한 사망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근처에 택시를 세우고 대기하는 기사들 말을 종합하면, 김씨는 작년 겨울부터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그 안에서 생활했다. 자녀는 없었으나 일부 친척과는 연락하고 지냈다고 한다. 기사들은 그가 오후 6~7시면 사라졌다가 오전 6~7시가 되면 다시 돌아와서 항상 같은 곳에 차를 주차했다고 전했다. 김씨와 자주 마주쳤다는 택시기사 A씨는 “일하러 가는 것인지 저녁에는 (김씨가) 항상 자리를 떴다가 새벽에 돌아와 차 안에서 잠을 잤다”고 했다. 택시기사 B씨는 “원래 사우나에서 생활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마저도 어렵게 되자 차에서 생활했다고 김씨가 (주변에) 말하곤 했다. 한겨울에도 차에 이불을 가지고 다니면서 살았다”며 “식사도 변변치 않게 늘 컵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다”고 했다.

김씨는 불법주차 단속에 걸릴 때마다 잠시 자리를 피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고 한다. 택시기사 C씨는 “일주일 전쯤에는 인근 한옥집 근처에 김씨의 차가 계속 놓여 있었던 것을 봤다”면서 “너무 더워서 그늘진 곳을 잠시 찾아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씻을 곳이 따로 없었던 김씨는 인근 주민센터 샤워실을 이용했다. 주민센터 건물 1층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김모씨는 “(김씨가) 일주일에 1~3번 정도는 변기와 세면대가 함께 있는 넓은 칸막이 안에서 씻고 갔다”면서 “화장실 바닥이 물바다가 되기 때문에 안에서 씻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본인 소유의 집이 경매로 넘어간 이후 차나 사우나에서 생활했다”면서 “지난 6월 김씨와 상담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으나 보통 수급자가 인정되기까지 두세 달 정도 걸린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을 우려해 6월과 7월에 긴급생계비를 각 47만원씩 지원했다”고 말했다. 복지지원 신청을 하고 수급자격을 인정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고시원 등에서 지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으나 김씨가 거절했다”고 했다.

송아영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공부조 자체가 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로 짜여 있다. 긴급생계비 지원을 한다고 해도 한시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금액이 지원된다”며 “김씨가 주거지원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금액이나 기한 면에서 주거상실을 극복할 만한 지원책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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