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형 칼럼] 금메달 6개 한국 선진국 맞아?

김세형 입력 2021. 8. 10. 06:03 수정 2021. 8. 1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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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 한국대표팀이 마지막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세형 칼럼] 언론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막을 내린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은 6개의 금메달을 땄는데 이는 1984년 LA올림픽 이후 36년 만의 가장 안 좋은 성적이었다. 그러나 올림픽 성적이 나빴다고 타박한 언론보다 즐겼다는 제목이 압도했다.

4위로 메달을 못 딴 김연경(배구)은 금메달 3관왕 안산을 능가하는 주인공이었으며 황선우, 우상혁 등 4등 선수들의 미담이 우리를 미소짓게 만들었다.

종합 2위를 하고도 불행한 중국보다 확실히 한국인은 선진국임을 자부할 마음의 소양은 갖추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유엔기구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운크타드(UNCTAD) 6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국민 앞에 자랑 삼아 뉴스를 소개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 비로소 유엔이 인정한 선진국이 됐으며 그것은 문재인정부가 이뤄낸 쾌거처럼 생각한 국민들도 있었을 것 같다.

우리의 뇌리엔 선진국 하면 얼핏 G7이나 안보리 상임이사국(5개국) 같은 개념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선진국 입지가 확실한가. 아니면 그 문턱 언저리에 아직 서성거리고 있는가.

이번 올림픽 때 국민이 보여준 품격 문화. 그리고 문 대통령이 64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 말을 계기로 좀 정확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국제기구 경험이 풍부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권오규, 허경욱 씨 등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등으로 부터 설명을 들었다. 그들에겐 확실한 공통적인 답이 있었다.

바로 OECD 가입이 그 선진국 멤버의 기준이란다. 한국은 1996년 김영삼 대통령 당시 OECD 멤버가 돼 선진국클럽에 명단을 올린 거고 당시 29번째였다.

1961년 20개국에서 현재는 37개국으로 자꾸 늘어나는 추세다. 그 명단을 보면 콜롬비아 헝가리 체코 칠레 같은 나라도 있고 인구 33만명밖에 안 되고 변변한 기업 하나도 없는 아이슬란드, 리투아니아 같은 나라도 들어있다. 선뜻 선진국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소득 10만달러를 넘나드는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는 명단에 없다.

OECD보다 한 수 위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하면서 당시 부시 대통령이 구성한 G20 회원국이다.

당시 한국은 금융위기 극복 우등생으로 꼽혔으며 2010년 일본 도쿄를 제치고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자 세계가 깜짝 놀랐다. 미국에서 2회, 영국, 캐나다에서 한 번씩 개최한 후 서울로 G20 정상이 집결한 것이다. 한국의 위상은 이 당시가 지금 문 대통령 정부보다 훨씬 높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사회가 자타가 공히 선진국으로 분류하는 기준은 OECD 내 개발원조위원회(DAC·Development Assistant Committee) 멤버 15개국이다.

이 나라들은 개도국 때 원조를 받다가 잘사는 부자나라가 돼서 이제 다른 나라에 원조의 손길을 뻗치는 나라들이다. 한국은 자랑스러운 2010년 DAC 회원국으로 승격했다. 2차 대전 이후 개도국에서 이 지위까지 오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미국 영국 일본 스웨덴 노르웨이 스위스 스페인 한국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뉴질랜드 포르투갈 헝가리 슬로바키아 아이슬란드가 자랑스러운 이름들이다.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국방비를 더 뜯어내려는 속셈이었겠지만 틈만 나면 "한국은 부자나라인데…"라고 국제사회에서 동네방네 떠든 것도 '한국=선진국' 선전을 잘해 준 셈이다.

이처럼 2010년에 한국은 DAC, G20 멤버국으로 충분히 선진국이 돼 있고 국제사회도 그리 알고 있는데 운크타드가 뒤늦게 한국 선진국 승격 운운하는 것은 자다 봉창 치는 격이다.

사실 운크타드는 개도국의 산업 및 무역을 장려하기 위해 설립된 '개도국용' 유엔기구이다.

UNCTAD가 한국을 승격시키기 전 선진국으로 분류해놓은 국가명단을 보면 사이프러스, 그리스, 로마교황청, 아이슬란드, 리헤텐슈타인, 몰타. 산마리노, 모나코, 터키 등을 망라하고 있다.

한국은 어느 모로 보나 그리스 터키만 못하단 말인가.

그래서 UNCTAD 분류는 개도국들의 놀이터일 뿐 권위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 분류에서 터키 뒤따라 64년 만에 한국을 선진국으로 올려놓은 것은 운크타드의 직무유기다. 이걸 자랑이라고 외교부가 쪼르르 청와대에 올리고 물정에 어두운 문 대통령은 뭘 모르고 그대로 읽었던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12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 양자회담장 앞에서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매경DB

OECD-DAC 회원국 가운데, 진짜 선진국이 되려면 한 단계 더 높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품격이 요구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코로나 팬데믹 같은 전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이 닥쳤을 때 국제사회에 선뜻 거액을 쾌척할 줄 아는 후덕한 국민성을 국제사회에 보이는 게 중요하다.

한국은 코로나19 초반 1000만달러를 내겠다고 한 것은 좀 우스웠다. 문 대통령이 런던 G7 회의에 초청되자 이를 2억달러로 높여 겨우 만회했다"고 설명한다.

나는 G7 정상들의 기념촬영에서 문 대통령의 위치가 비교적 중앙으로 배치된 것은 2억달러 기부약속을 한 다음이 아닐까 상상해봤다.

2019년 국별 DAC 기부금을 보면 미국, 영국, 일본 순(順)이고 회원국 평균기부액은 GDP의 0.35%인데 한국은 0.15%로 인색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국제적으로 수전노처럼 보이는 건 곤란하다.

한국은 선진국 증표로 GDP 세계 10위, 1인당소득 3만달러 이상, 수출-수입액 규모 등 경제성적표를 흔히들 나열한다. 중국은 1인당소득이 1만1000달러밖에 안 돼서 제외될 것이다.

명문대학 보유, 세계적 기업, 첨단기술, 군사력 등도 중요한 기준이다. 이 기준으로 G2 중국은 G1 미국에 아직 너무 멀리 뒤져 있다.

자유민주주의(정치), 인권, 언론의 자유, 문화, 사회적 현상, 부자들의 기부 등도 비교대상이 될 것이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열위였던 문화에서 K팝 인기(BTS)가 고조되고 이건희 회장이 타계하면서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쾌척하고 금년 들어 김범수(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봉진(우아한형제들 의장) 등의 거액기부자들이 나타난 것도 한국이 선진국으로 성숙돼 가는 좋은 요소들이다.

이들 모든 요소를 감안해도 한국은 세계 10위권 근처에는 되는데 1인당 GDP 3만1000달러는 세계 26위밖에 안 되니 더 분발해야 한다. 기본소득으로 나눠먹어 버릴 때가 아닌 것이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랄지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얼마나 신뢰하는가"도 선진국 요소로 중요하다는 대목을 본 적이 있다.

상대에게 깡패 같은 위협감을 주는 중국 러시아는 그런 점에서 낙제점수이고, 낯선 사람 효과에선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3국이 63점쯤 되는데 한국은 34점으로 나왔다는 영국 이코노미스트(Ecnomist) 분석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이것이 국가매력인데 무척 중요한 척도이다.

권오규 전 부총리는 한국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재미난 사연을 소개했다.

태평양 한가운데 파푸아뉴기니, 동티모르, 부건빌이라는 신생 3개국이 독립해 정부수립을하면서 한국더러 국가개발계획을 도와달라고 한단다.

그동안 호주 중국에 지하자원 등을 수탈당해 그들을 끔찍히 싫어해 미국도 일본도 싫고 (나중에 승냥이로 변하지 않을) 한국에 중앙은행 설립도 SOS를 치고 있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3개국은 증권거래소 설립 시 한국에 도움을 요청해 한국모델로 세워줬다.

K팝도 팬이 많아졌듯 한국은 이렇게 국제사회에서 어필하는 분야도 생겼다.

그렇다면 한국은 정말 선진국이 된 걸까.

그런 구석도 있고 '아니올시다'는 구석도 있는 혼재된 상황이다. 미국처럼 소득 6만5000달러에 세계를 압도하는 첨단기술 기업, 군사력, 대학 보유 등등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도 국민 스스로가 아직 자신감이 부족하고 "내가 정말 선진국 시민이 맞아?"라고 쭈뼛거린다. 그것은 일본인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G7회의에서 스가 총리가 그렇게 행동했지 않은가.

서울대 K교수가 손경식 회장을 찾아와 의자에 앉더니 "대한민국 선진국 맞습니까?"라고 묻더란다.

그러더니 K교수는 "다른 분야에 비해 국민의식 수준이 아직 모자란다"며 정치가 저렇게 엉망인데도 여론이 반으로 갈린 상황을 한탄하더란다.

정부의 A장관은 더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줬다.

하버드대학 유학 시절 인도 출신 학생이 "한국인의 종교는 무엇이냐"고 묻더란다.

종교는 정신적 우주의 중심이다. A는 불교 기독교 유교 등등을 말했더니 인도 유학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국, 일본인의 종교는 돈(money) 같아 보인다"고 말하더란다.

그러면서 미국인의 종교는 아메리카, 캐나다인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것, 그리고 인도인에겐 신(神)을 종교라고 했다. 미국인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미국을 지킨다는 본류로 지금도 6·25참전 시 사망한 군인의 유해를 북한에서까지 송환하는 것을 우리는 본다. 캐나다에서 근무할 때 보니까 매년 6·25참전 기념행사가 있으며 캐나다 군인 516명이 전사했다는 발표를 거기서 듣고 알았다고 한다.

필자 스스로도 이 글을 쓰면서 한국이 선진국이 맞는가에 대해 각계각층 리더들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짐작하겠지만 가장 많은 견해는 기업, 기술, 대학 등은 선진국 수준이지만 정치와 국민의식이 아직 선진국으로 부족하다는 결론이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5년 4월 13일 베이징에서 장쩌민 주석을 만난 후 한국 특파원들에게 "한국은 기업은 2류,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로 이대로는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는 발언을 지금 한국에 대입하면 답을 얻을 수 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의 나이가 53세에 불과했다. 지금 그런 연배의 기업총수가 같은 내용의 발언을 하면 청와대와 여당은 무슨 반응을 보일까.

현재는 각 분야가 몇 점일까를 탐문해보면 "기업은 1류, 정치는 4류 그대로, 정부(관료)는 영혼을 잃고 5류가 돼버렸다"고 한다.

정부는 소득 1만달러도 안 된 시대의 과거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이 쓴 '내가 살고 싶은 행복한 나라'는 사실 한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한 조건을 기술한 책이다.

영국에서 박사 학위과정, 재무관 등으로 오랫동안 생활하며 보니 영국 사람들이 한국인에 비해 특별히 머리가 좋은 것도 부지런한 것도 아닌데 어디서 차이가 나는지 곰곰이 관찰해본 결과 다음 5가지 분야에서 한국보다 영국이 우위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1)나라 사랑하는 마음, 국가 안보관, 스스로를 사랑하라.

2)법치주의 확립,

3)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4)개방과 경쟁의 원칙.

5)복지 포퓰리즘 경계

한국의 후진성과 관련있는 사안에 대해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6·25 때 나라를 구한 백선엽 장군 장례식에 불참하고 6·25참전국에 고마움을 표하지 않고 국군포로나 유해 송환을 김정은에게 요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1위, 출산율 세계 꼴찌, 한국의 행복지수는 OECD 회원국 꼴찌에서 두 번째인데 왜 개선 노력을 하지 않는가.

청년일자리, 국가경쟁력을 키울 혁신성장위원회 회의는 왜 한 번도 주재하지 않는가.

여당(정치)이 공수처, 언론탄압(중재법 개정), 기업규제 3법 등 후진형 법 제정(기도)을 하는 걸 왜 방조해 왔는가.

종합해보면 한국은 아직 일류선진국은 아니고 3류가 아니라면 2류선진국쯤 될 것 같다. 세계증권시장에서 MSCI지수에서 한국은 개도국이고 농산물 개방 등 국제 협상에서 스스로 개도국대우를 해달라고 조른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각종 제도가 선진국다워야 하고 그에 걸맞지 않은 제도(法)들을 만들면 세계가 한국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표현의 자유와 직결된 언론의 자유를 해치는 법안을 만들면 안 된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권력기구도 마찬가지다. 3권분립이 제대로 지켜느냐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모든 분야에서 문재인정부는 한국의 선진국 위치를 2010년보다 후퇴시켰고 현재도 언론중재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어 진행형이다.

행정·입법·사법도 한 손에 움켜쥐고, 공수처, 선거법(연동형비례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도 한국의 선진국 지위를 의심케 하는 법들이다.

지난 정기국회 시즌 사회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악법들이 이낙연 대표 시절 줄줄이 통과됐다.

역사 속에서 아르헨티나 그리스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도 한때는 한국처럼 2류급 선진국까지 치고 올라갔었으나 국민들은 그 후 지도자를 잘못 뽑아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대통령리스크'가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쪼그라들게 만든 것이다.

결국 국민의식+정치가 국가의 운명을 최종 결정한다는 결론이다.

도쿄올림픽을 마친 시점과 문 대통령의 시기에 안 맞는 선진국 자랑질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깨달아야 할 의미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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