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잉여인간'"..고독사 벼랑 끝에 선 중장년층[죽음보다 무서운 외로움]

2021. 8. 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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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위기에 몰린 중장년층 인터뷰
"경제력 잃은 후 가족으로부터 외면"
"한번 실패하면 재기하기 힘든 사회"
"교류 잃지 않기 위해서는 경제력 必"
신림동 고시촌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는 양모(50)씨. 그는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3년 전부터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살아가고 있다. 재취업에 몇 차례 도전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다. 신혜원 수습기자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신혜원 수습기자] “잉여인간.”

장모(64) 씨는 스스로를 그렇게 지칭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6년째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다. 어쩌면 가족을 피해 혼자 살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른다. 경제력을 잃어버린 후로 가족들로부터 받는 무시와 소외를 견딜 수 없어 도망쳐 나왔다. 그 후 그에게 ‘고독사’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자신의 일이 되었다.

헤럴드경제는 장씨와 같이 고독사 벼랑 끝에 선 중장년층을 만났다. 이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중장년층의 고독사 원인은 경제적·심리적 빈곤이었다.

장씨는 15년 전만 해도 잘 나가는 IT 회사의 임원이었다. 은퇴 후 시작한 사업에 실패하면서 그의 삶은 벼랑 끝으로 떨어졌다. 그때부터 가족들의 차가운 시선은 시작됐다. 결국 아내와는 이혼했다. ‘환갑날 만큼은 같이 식사를 하고 싶다’는 애원마저 가족들은 외면했다. 극단적인 선택도 생각했다. 장씨는 “이렇게 살 바에는 일찍 가버릴까하는 생각도 하지만 극단적 선택을 할 용기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의 한 복지재단에서 일하며 60만원대의 급여를 받아 생활하고 있다. 월세 40만원, 수도세·전기세 등 공과금을 제외하고 나면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은 2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양모(50) 씨 역시 경제적 상실을 이유로 스스로를 가두며 살아가고 있다. 신림동 고시촌 미니원룸에서 거주하고 있는 양씨는 3년 전 휴대폰 번호를 바꿨다. 지인들과의 모든 연을 끊었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는 입장 때문이었다. 사람과의 끈을 차단한 채 살아가기 시작했다. 양씨는 “경제적으로 누렸던 것들이 없어지니 초라해졌다”며 “여유가 안 되니 단절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양씨는 “나이를 먹으면 쉽게 직장을 못 가진다”며 “젊은 사람 쓰려고 하지 누가 나이 먹은 사람을 쓰려고 하겠나”라며 중장년층 취업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서울 양천구 카페에서 만난 박모(51) 씨는 재취업을 여러번 시도했지만 나이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박씨는 한때 직업전문학교를 다니며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신입으로 들어오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박씨는 “이런 경우를 몇 번 겪다보니 자존감도 낮아지고 취업 의지도 많이 없어졌다”고 했다.

유독 중장년 1인가구를 향한 사회적 시선은 차갑다. 혼자 살고있는 중장년층에게 부정적 시선이 따라온다. 양씨는 “고시촌에서 산다고 하면 ‘오죽하면 그런 곳에 살겠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20여 년을 혼자 살아온 박씨도 “사람들의 선입견이 담긴 눈빛에 서글퍼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는 ‘저 사람에게 문제가 있어서 혼자 살고 있구나’라는 편견 섞인 시선에 위축된다고 말한다.

고독사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지난 5월 서울시는 고독사 위험군인 중장년층 1인가구에 집중한 예방 대책을 확대하겠다고 했으나,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거의 없다. 박씨는 “정부는 중장년층 1인가구 정책을 화려하게 한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받는 느낌은 알맹이 없는 정책들”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실제로 폭염 속에서 박씨는 서울시에 1인가구 폭염 관련 지원정책이 있는지 문의해봤으나, 별다른 정책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더위를 식힐 수 있는 무더위쉼터도 코로나로 인해 닫은 곳이 많은 상황이다.

중장년층을 ‘애매한 나이대’라고 규정했다. 박씨는 “중장년층은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나이대라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며 “아동은 아동 나름의 복지, 노년층은 노년층대로의 전문성을 가지고 복지정책이 시행되는데 반해 중장년층은 애매모호한 입장”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고독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교류를 통해 심리적 위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중장년층들은 그런 교류를 위해서는 경제력을 상실하지 않는 게 우선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씨는 지난해 한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한 1인가구의 외로움과 문제점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위안을 얻었다. 당시 박씨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자체만으로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어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를 지속할 수 없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몇 회 이후부터는 돈이 필요했다”며 “지속적인 사회적 프로그램이 부족하다”고 했다.아울러 박씨는 경제적 빈곤을 토로하며 “10년 전 우울감을 이겨내는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가족과 그렇게 연이 끊어지지 않았을 텐데”라며 고개를 떨궜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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