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익 칼럼] 일본, 그 '반성 없음'의 구조

한겨레 2021. 8. 1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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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익 칼럼]우리나라가 몇차례의 혁명 혹은 그 비슷한 유사 변혁과 권력 교체를 통해 국민적,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도약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렀는데 돌이켜보면 일본은 천황의 '만세 일계'를 자랑하며 전후 60여년 동안을 중국과 별로 다름없는 '일당독재'적 자민당 체제 속에서 '갈라파고스 현상'에 갇혀 온 것이다. 게다가 상징적 표상인 천황, 문벌로 나뉜 내각, 완강한 관료로 삼분된 권력 구조 때문에 새로운 정책 선택 결정권과 그 결과론적 책임을 서로 미룬다.

김병익 문학평론가

2년 전의 이맘때 나는 ‘전범국의 자기기만’이란 제목으로 일본의 국가적 ‘반성 없음’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이 칼럼을 썼다. 스스로 일으킨 전쟁에서 결국 미군에 투항하면서 자신들을 원폭 피해자로 자처함으로써 전범국이란 책임에서 벗어나며 그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선배 언론인 최정호 선생의 지적에서 배운 관점이었다. 그 후 나는 내 글의 책임을 지기 위해 일본의 한국에 대한 태도에 좀 유심했고, 그 관점은 오히려 더 강조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발전했다. 일본은 반성은 고사하고 부끄러운 역사를 지우는 데 급급하다는 사실을 잇달아 확인한 때문이었다.

그들은 미국과 독일에 세워질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맹렬하게 반대하며 ‘일본군 위안부’란 운명이 안겼을 인간의 보편적 슬픔을 읽지 못한 채 자신들의 비행에 대한 비난으로만 여겨 그 증거를 지워버리려 했다. 이어, 군함도의 유네스코 인류사 유적 지정 문제가 제기되었다. 어느 나라든, 인권의 나라인 영국과 미국에도 개발과 개척 시대에 소년공 학대와 원주민들에 대한 폭력이 자행되었고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면서 잘못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보상에 나서기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군함도 개발을 자랑하면서 거기에 자행된 식민백성에의 강제와 고통을 인정하지 않았고 유네스코의 권고에도 그 기록을 기피하며 자신들의 역사를 미화하려고만 했다.

그리고 우리 법원이 한국인 징용공에 대한 일본 기업의 보상을 지시한 판결을 내리자 일본은 기업들의 대한국 부품 수출을 제한하는 보복조처를 취했다. 국제간의 사법부 판결 적용에는 복잡한 의견들이 개입하겠지만, 사법 차원의 문제를 경제 영역의 보복으로 전환한 궁상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일이었다. 이어, 주요 7개국(G7) 회의 확대에 미국이 한국도 포함시키려 하자 일본이 노골적으로 반대한 것. 그럼으로써 그들은 아시아적 ‘사대선린’ 체제를 깨트리며 ‘대동아공영권’의 패권국이란 화려한 수식을 지키려 했다. 그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으로 응징되어야 했는데, 원자탄의 피폭국이란 명분으로 오히려 전쟁 피해국으로 분장하여 그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고서 미국의 비호 아래 50년대의 한국전쟁, 60년대의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의 병참기지가 됨으로써 전후 복구에서 더 나아가 세계 2위의 부국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국에 대해, 그 발전에 대해, 더 억누르지 못해 안달하는 듯 보였다.

드디어 외교관으로서 인격과 국격을 의심케 한 소마 히로히사의 극우적 망언. 나는 여기 이르러 일본의 한국에 대한 억지가 혹 한때의 자기네 식민지였던 나라의 비약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준 전반에서는 아직 우리가 일본에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긴 하지만, 지난 60년 동안 조금씩 일본을 추격해왔고 어떤 부분은 추월했다고 자부해도 좋을 점들이 보였다. 1980년의 한국 개인소득은 일본의 6분의 1이었지만 지금은 일본이 4만달러 남짓이고 한국은 3만달러를 넘었으며 일본이 자랑하던 자동차 산업도 미국과 동남아에서 한국에 추격당하고 21세기 산업으로 각광받는 반도체와 배터리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크게 앞선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선진국’으로 만장일치 공인받은 한국의 역동적 성장에 그들은 놀라고 질시하며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을 확인시켜준 것이 미국인 학자 태가트 머피의 <일본의 굴레>란 저서였다. 일제 식민시대에 태어났기에 일본우월주의를 아직 벗지 못한 내게 이 책은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도전’당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미국에서 신세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일본의 전자기기 거인들이 한국의 대기업 삼성에 밀려 골동품이 되어간다”며 “한국의 기업들이 소비자 가전제품에서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고 평하고 그럴 만큼 한국이 유리한 점 세가지를 꼽는다: “한국에는 국제화된 엘리트가 더 많다; 한국의 정치경제 기관들은 훨씬 더 명확한 권력 구조와 뚜렷한 책임 소재를 갖고 있어 빠르고 과감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남북 대치와 북한의 위협이란 ‘실존적 위협’ 때문에 실수가 허용되지 않는다.”

쓰쿠바대학 교수로 일본에 누구보다 정통해 보이는 저자는 일본의 이러한 사양(斜陽)은 “일본의 전범들은 원치 않은 재난에 마지못해 끌려들어 간 수동적 피해자처럼 행동했다”고 비판한 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를 인용하면서 ‘다테마에’(겉태도)와 ‘혼네’(속마음) 간의 오웰식 이중사고를 적용한다. 그 겉과 속의 다름이 책임지지 않는 태도를 가져오고 그 무책임이 반성도, 비판도 희석시키며 혁명이란 생각도 못 할 일로 만든다. 우리나라가 지난 60년 동안 몇차례의 혁명 혹은 그 비슷한 유사 변혁과 권력 교체를 통해 국민적,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도약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렀는데 돌이켜보면 일본은 천황의 ‘만세 일계’를 자랑하며 전후 60여년 동안을 중국과 별로 다름없는 ‘일당독재’적 자민당 체제 속에서 ‘갈라파고스 현상’에 갇혀 온 것이다. 게다가 상징적 표상인 천황, 문벌로 나뉜 내각, 완강한 관료로 삼분된 권력 구조 때문에 새로운 정책 선택 결정권과 그 결과론적 책임을 서로 미룬다.

“일본은 미국의 품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 세계 3대 부국임에도 정상회담에서는 미국 눈치를 보며 기를 못 펴는 ‘소국 근성’의 일본을 보고, 메이지 유신에서 오히려 ‘왕권 강화의 복고주의를 통한 근대화’에 이른 역설을 성취한 대신 “1930년대의 제도적 결함들을 1945년 이후 고치려 하기보다는 감추기에 급급했다”는 머피의 날카로운 비판에 나는 공감했다. “한국인들이 세계화에 일본보다 훨씬 더 우월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그의 인식이 미국 학자의 ‘다테마에적 발림’은 결코 아니었다. 그 무력감, 무책임, 무반성의 실재가 무더위 속에서 펼쳐진 2021년의 ‘2020 도쿄올림픽’에서 재현된 것이다. 세계 최대의 행사를 유치했음에도 정작 그 유치 공로자는 개회식에 불참하고 천황은 ‘축하’를 전하지 못하는, 그럼에도 8월 땡볕과 코로나 델타의 긴급사태 속에서 무관중 경기로 강행하는 책임을 아무도 묻지도, 지지도 않았다. 세계를 위한, 미래를 향한 어떤 비전도 보이지 않은 폐회식에서 나는 왜소해진 왜국을 또 보았다. 이런 일당 장기정권 체제의 정치적 무책임 구조가 한국을 오염시키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우리 양당체제의 정책 선택과 그 책임 담당이 일본보다 앞서 있다는 자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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