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검 "CCTV 조작 없다"..본질은 '사참위 부실 조사'

김성수 입력 2021. 8. 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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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검이 DVR(CCTV 영상 저장장치) 바꿔치기와 CCTV 영상 파일 조작 등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제기한 모든 의혹들에 대해 ‘증거 없음’ 결론을 내리고 지난 10일 석 달간의 수사를 마감했다. 이에 대해 사참위는 “납득하기 어려우며, 향후 특검 수사 내용을 검증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금번 특검이 내린 결론의 근거를 분석한 결과, 사참위의 조사와 판단 과정이 합리성을 크게 결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사참위가 남은 10개월의 활동 기간 동안 진상규명의 성과를 내기 위해선 조사의 관점과 방식 등에 대한 내부 재정비가 절실해 보인다.

CCTV 영상 파일 이상 흔적, '조작' 아닌 복구 프로그램 '버그' 때문

사참위는 지난해 9월, 법원에 보관 중인 세월호 CCTV 영상 파일 속에 기술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이상 흔적이 있다면서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세월호 CCTV 영상 파일은 2014년 6월 22일 수거된 세월호 DVR의 하드디스크 속 데이터들을 법원의 증거보전 명령에 따라 2개월에 걸쳐 복구한 것이다.

▲ 사참위가 설명한 세월호 DVR 하드디스크 복구 과정과 문제

당시 수거된 세월호 DVR 속의 하드디스크는 모두 2개, 이 가운데 4월 16일 참사 당일의 영상이 담겨있는 디스크에 대해서만 데이터 복구가 진행됐다. 복구에 사용된 프로그램은 PC-3000으로, 원본 디스크 속의 모든 데이터들을 묶어 하나의 파일(이미지 덤프)로 만들어 준다. 당시 이 덤프 파일 중 4월 10일부터 16일까지의 CCTV 영상 녹화 파일을 추출해 7zip 프로그램으로 압축시켜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사참위는 파악했다. 

덤프 파일은 당시 법원 촉탁인으로 지정돼 복구 작업에 참여했던 김인성 전 한양대 교수가 보관하다 1기 특조위에 인계했다. 사참위는 1기 특조위로부터 이 덤프 파일을 넘겨받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상 현상을 발견했다. 법원 제출 파일은 덤프 파일의 일부를 추출한 것이므로 두 개의 파일이 당연히 똑같아야 하는데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사참위가 공개한 법원 제출 CCTV 파일 속 '이상 흔적'

구체적인 차이점은 데이터 저장의 최소 단위인 섹터 간의 비교를 통해 확인됐다. 법원에 제출된 4월 10일부터 16일까지의 CCTV 영상 파일들 속에서 서로 다른 섹터에 동일한 소스코드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사참위는 이를 특정 섹터에 담겨 있던 소스코드가 다른 섹터로 ‘복사돼 덮어써진’ 결과라고 판단했고, 이는 의도적 조작에 따른 것일 수밖에 없다고 봤다. 사참위는 법원 제출 파일 속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 섹터가 무려 18,353개에 달하며, 그 가운데 62%가 참사 당일인 4월 16일 영상 파일들 속에서 확인됐다고 밝혔다.

▲ 사참위가 제시한 '법원 제출 CCTV 파일'과 '덤프 파일'의 불일치 모습

사참위는 다른 영역의 데이터가 덮어써진 섹터에 본래 어떤 데이터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덤프 파일을 분석했다. 법원 제출 파일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됐더라도, 이 파일의 출처 격인 덤프 파일에는 본래의 데이터가 남아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덤프 파일 속의 동일 섹터들은 모두 ‘0’의 값으로 채워져 있을 뿐 영상으로 재생될 수 있는 형식의 데이터가 없었다. 사참위는 이 역시 조작의 흔적이라고 판단했다. 누군가 덤프 파일에도 손을 대서 문제의 섹터들을 모두 ‘0’으로 채워 놓았다고 본 것이다. 사참위는 이 같은 문제점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조작 의심 흔적들이 존재한다면서 특검 수사를 요청했다.

뉴스타파는 사참위가 공식 발표한 ‘세월호 CCTV 파일 조작 의혹’에 대해 검증 취재에 나섰다. 우선 지난해 11월 광주지법 목포지청에 보관 중인 세월호 CCTV 영상 파일들을 유가족과 함께 복제해 입수했다. 1차 분석 결과, 사참위가 제기한 ‘이상 흔적’들이 사참위가 밝힌 것보다 오히려 10개 많은 13,363개 섹터 속에서 실제로 확인됐다.

▲ 이상진 교수가 설명한 PC-3000 프로그램의 데이터 복구 원리

그러나 이 분석을 담당한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이상진 교수팀은 ‘이상 흔적’이  조작과는 무관해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다. 세월호 DVR 하드디스크 복원 시 사용된 PC-3000 프로그램은 원본 디스크에서 접근 가능한 데이터들을 그대로 가져와 대상 디스크에 옮겨준다. 하지만 원본 디스크의 배드섹터, 즉 물리적 결함 때문에 데이터를 읽을 수 없는 영역은 대상 디스크에 ‘0’으로 표시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그러니까 사참위의 주장처럼 복구된 세월호 CCTV 덤프 파일 속의 18,353개 섹터는 누군가 인위적으로 ‘0’으로 만든 게 아니라 프로그램 자체가 그렇게 구동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해석하면, 복구된 덤프 파일 속에서 ‘0’으로 표시돼 있는 섹터들은 원본 디스크에서는 아무 것도 읽어낼 수가 없는 배드섹터였다는 것이므로, 이 영역에 어떤 데이터를 인위적으로 집어넣든 ‘조작’으로서의 의미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에 제출된 파일에 남아 있는 또 다른 ‘이상 흔적’은 여전히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사참위 주장대로 이 파일이 덤프 파일로부터 추출된 이상, 서로 달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이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세월호 CCTV 영상 복구 작업을 직접 수행했던 전유형 전 명정보기술 부장을 만나 당시의 구체적인 작업 방식을 물었다. 그 결과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사참위가 추론했던 것처럼 DVR 하드디스크에서 덤프 파일을 만들어낸 다음 여기서 영상 파일을 추출했던 게 아니라, 덤프 파일 생성(이미징)과 영상 파일 추출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는 것이다. 

▲ 전유형 전 명정보기술 부장이 설명한 세월호 DVR 하드디스크 복원 과정

동시에 작업을 벌인 이유에 대해 전유형 전 부장은 “당시 DVR 하드디스크의 물리적 훼손 상태가 심각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미징 작업 도중에 아예 작동 불능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았고, 이럴 경우엔 가장 중요한 데이터인 참사 당일 영상을 아예 확보하지 못할 수 있었으므로, PC-3000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개별 파일 추출 기능’을 동시에 가동시켜 참사 당일 영상을 먼저 확보할 수 있도록 작업을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에 따르면 세월호 CCTV 영상 파일은 생성된 경로가 아예 다른 2개의 버전이 있었다는 뜻이 된다. 

이에 대해 이상진 교수는, PC-3000으로 이미징과 파일 추출을 동시 진행해 복구한 데이터들도 이론적으로는 서로 일치해야 한다면서도, 그 같은 복구 방식이 일반적이지는 않은 만큼 재연 테스트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전해 왔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뉴스타파는 이상진 교수팀과 세월호 DVR 복구 작업을 직접 진행했던 명정보기술팀을 한 자리에 모아 테스트를 진행했다. 

복구 작업 당시와 최대한 같은 환경을 설정했다. 이를 위해 PC-3000의 2014년 당시 버전(v5.6)을 우선 확보했다. 또 ‘원본’ 디스크의 조건 역시 세월호 DVR 하드디스크와 유사한 조건을 갖도록 하기 위해 4개의 파티션으로 나눈 뒤 각각 99개 씩의 샘플 동영상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PC-3000을 연결해 이미징 기능과 파일 추출 기능을 동시에 작동시켰다. 이때 원본 디스크의 헤드 작동을 물리적으로 방해함으로써 일정한 숫자의 배드섹터를 만들어 냈다. 역시 세월호 DVR 하드디스크와 유사한 조건을 주기 위해서였다.

▲ 재연 테스트를 통해 확인된 PC-3000의 '버그' 현상

재연 테스트 결과 이미징 기능을 통해 복구된 덤프파일 속에는 원본의 배드섹터 영역이 정상적으로 ‘0’으로 채워져 나타난 반면, 파일 추출 기능을 통해 복구된 파일들 속에는 같은 영역에 ‘0’아닌 특정 데이터가 담겨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데이터의 출처를 확인해 봤더니 바로 인접한 파일 속의 데이터 일부였다. 사참위가 제기한 ‘이상 흔적’이 그대로 재연된 것이다. 이상진 교수는 이 현상이 PC-3000 프로그램의 2014년 당시 버전의 오작동, 즉 일종의 ‘버그’로 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스타파가 재연 테스트를 통해 확인한 이 같은 현상은 세월호 특검의 수사 결과에도 동일하게 담겨 있었다.

‘기술 분석’과 ‘합리적 정황 판단’보다 ‘의심’ 앞섰던 사참위

그렇다면 사참위는 왜 이 같은 검증을 하지 못하고 조작 의혹을 제기한 걸까? 지난해 사참위의 조사를 받았던 김인성 전 한양대 교수는 “조사관들이 복구 파일 속에서 확인된 이상 현상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해주지 않고, 왜 덤프파일을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고 말했다. 즉, ‘이상 현상’을 ‘조작 흔적’으로 규정한 뒤, 조작의 행위자를 찾는 데 집중했다는 것이다. 전유형 전 부장 역시 지난해 사참위 조사 과정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사참위 조사 당시 법원 제출 파일에 나타난 이상 현상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면 작업 담당자로서 어떤 기술적 설명이 가능한지를 놓고 함께 고민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면서 아쉬움을 표시했다.

▲ 세월호 DVR 하드디스크 복구가 진행됐던 명정보기술 작업실

사참위가 제기한 세월호 CCTV 파일 조작 의혹은, 사실상 명정보기술에서 진행된 2개월의 복구 작업 과정에서 누군가 데이터에 손을 댔다는 가설을 밀어붙인 결과였다. 그러나 당시 복구 작업 현장의 보안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사했다면 이 같은 가설을 세우는 것 자체가 무리했던 측면도 있다. 김인성 전 교수와 전유형 전 부장, 그리고 작업 현장에서 교대로 불침번을 섰던 세월호 유가족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당시 복구 작업실에는 4대의 CCTV가 설치됐고 유가족들과 변협 소속 변호사들, 해경 등 10명 가까운 인원이 CCTV 모니터실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참관을 했다. 매일 같이 작업이 끝난 이후엔 하드디스크 원본을 캐비넷에 넣은 뒤 테이프로 봉인했고, 열쇠는 법원 촉탁인인 김인성 교수가 보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현장을 지켰던 세월호 유가족 김병권 씨(단원고 고 김빛나라 아버지)도 “워낙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누구든 조작 행위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검, DVR 바꿔치기 의혹도 기각...뉴스타파 검증취재와 동일한 수사 결과

특검은 DVR 수거 과정 관련 의혹도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사참위가 제기한 이른바 ‘DVR 바꿔치기 의혹’의 핵심 근거는, DVR 전면 덮개의 열쇠 구멍 방향이 수중에서 촬영한 영상과 바지선에 올려진 30여 분 뒤 촬영된 영상에서 서로 달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특검은 DVR이 바지선에 올려지고 1분여 뒤 해군 관계자에 의해 촬영된 사진들 속에서 열쇠구멍 방향에 변화가 없었다는 점을 이유로 이 주장을 기각했다. 이는 2년 전 뉴스타파 검증보도의 내용과 동일한 것이었다.

사참위가 제시한 또 다른 핵심 근거인 DVR 우측 손잡이 안쪽 고무패킹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사참위는 수중영상 속에서는 이 고무패킹이 떨어져 있었던 반면, 바지선 위에서 촬영된 영상 속에선 부착된 상태였다면서 두 DVR이 서로 다른 장비였다고 주장했다.

▲ 고무 패킹의 '압축'을 지적한 특검 수사 결과와 2년 전 뉴스타파 보도
▲ 손잡이 모서리 흠집의 동일성을 지적한 특검 수사 결과와 2년 전 뉴스타파 보도

그러나 특검은 우측 손잡이 모서리 부분의 흠집들이 수중과 바지선 위 영상 속에서 동일하다는 점, 그리고 고무패킹이 발포 고무 재질이었던 탓에 수중에선 수압에 의해 눌려 마치 떨어져 나간 것처럼 보였다는 점 등을 근거로 사참위 주장을 기각했다. 이 역시 뉴스타파가 검증보도를 통해 지적했던 내용이었다.

부실한 영상 분석과 자의적 해석이 낳은 사참위의 판단 오류

사참위가 제기한 DVR 바꿔치기 의혹의 근거는 거의 대부분 영상 분석을 통해 마련됐다.  사참위는 의혹의 근거들이 영상분석 전문기관의 감정에 따른 것임을 늘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특검 수사 결과를 보면,  사참위가 의존했던 영상분석 전문기관의 감정에 오류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중 영상 속 DVR 손잡이의 고무패킹 부착 여부 분석, DVR에 연결됐던 커넥터 반출 화면 분석 등이 대표적이다. 전문기관의 감정 부실이 사참위 판단의 오류로 이어졌을 수 있다.

하지만 전문기관의 감정 결과를 사참위가 자의적으로 해석, 잘못된 판단으로 연결된 경우도 있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사참위의 영상 분석 용역을 수행한 법영상분석연구소는 수중 영상 속 DVR 우측 손잡이 모서리의 흠집이 바지선 인양 이후 사진들 속의 흠집들과 동일하다는 감정 결과를 보고서로 제출했다. 인양 전후의 DVR이 동일한 장비라는 명확한 근거였지만 사참위는 이 같은 감정보고서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채 DVR 바꿔치기 의혹을 공식 발표했다.

구재모 한국영상대학교 교수는 “이 같은 문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사참위가 판단한 근거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확립되었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관련 전문가들의 교차 검증을 받는 방식의 ‘열린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뉴스타파 김성수 sskim@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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