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전체 위한 소수 희생' 앞세워 사회모순 책임 기업에 돌려 [세계는 지금]

이귀전 2021. 8. 1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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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급 공포 초강력 기업 규제
알리바바 마윈, 핀테크 규제 비판이 단초/ 자회사 앤트그룹 기업공개 이틀전 불허
반독점·개인정보 보호·금융 안정 등 이유
인터넷 기업 중심 다양한 분야 규제 강화
알리바바엔 사상 최고 3조여원 과징금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 美 상장 강행 철퇴
당국, 올 '전면적 샤오캉 사회' 달성 주장 후/ 공산당 최대 과제인 '빈부격차' 해소 박차
시진핑 장기집권 체제 공고화 위해서는
마오쩌둥의 '공부론'으로 좌회전 불가피
국민 소비지출 많은 사교육·부동산 타깃
관영매체 '간 보기'.. "지금은 시작에 불과"
“사회주의와 자본시장의 균형을 재조정하는 과정으로 기간, 강도, 범위, 속도 면에서 전례가 없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중국 당국의 초강력 기업 규제에 대해 “사회 필수품과 공공재 관련 분야에서 자본시장보다 사회복지와 부의 재분배를 우선시하고 있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중국 당국의 최근 규제 움직임은 ‘길들이기’ 차원을 넘어섰다. 시장의 혼란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개인정보 침해, 불평등, 국가안보 위협 등 사회 모순의 책임을 기업에 씌우는 형국이 되고 있다. ‘전체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공산당의 전통적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를 통해 공산당의 정당성을 확보해 내년 20차 전국대표대회(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장기집권 체제를 공고화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 공고화를 위한 대응에 나선 것이어서 민간 분야에 대한 강경한 규제는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 ‘핵폭탄’급 공포 심어준 규제

중국 당국의 기업 옥죄기는 지난해 10월 불거진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의 ‘설화’가 분수령이 됐다. 마윈은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금융서밋 연설에서 당국의 핀테크(금융기술) 규제를 정면 비판했다. 당국은 중국 최대 규모가 될 예정이던 앤트그룹 상장을 무산시켰다. 중국 공산당과 민간 기업 간 긴장과 균형은 이때부터 무너져 관(官)이 시장을 압도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중국 기업은 공산당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자본주의 시장을 두드릴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13일 월스트리트저널과 골드만삭스 등에 따르면 중국 규제 당국은 지난해 11월 앤트그룹의 상장 무산 이후 반독점, 데이터 보안, 사회 불평등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50건 넘는 대응을 취했다. 일주일에 한 건꼴로 규제를 통해 기업 손보기에 나선 것이다.

당국은 알리바바에 이어 대형 인터넷 기업을 중심으로 부동산, 사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민영 기업을 대상으로 규제를 강화했다.

시장감독관리총국은 지난 4월 알리바바에 자국 반독점법 사상 최고액인 182억2800만위안(약 3조222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중국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텐센트와 최대 음식 배달업체 메이퇀 등 이른바 ‘빅테크’ 기업들이 줄줄이 반독점, 개인정보 보호, 금융 안정 등의 이유로 규제 대상이 됐다.

중국의 ‘기업 길들이기’는 7월 들어 시장 전망을 훨씬 뛰어넘는 ‘핵폭탄’급 공포로 다가왔다. 단순한 규제가 아닌 기업은 물론 거대 산업을 순식간에 소멸시킬 정도로 강력했다.

시진핑 주석이 2014년 설립한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이 지난 6월 30일 미국 증시에 상장하자, 사흘 후 데이터 보안 위험에 대비하고 국가안보 및 공공이익을 지킨다는 이유로 네트워크 보안 조사에 착수했다. 이어 디디추싱이 운영하는 애플리케이션(앱) 20여개의 다운로드 금지 명령을 내렸다. 당국은 미국 상장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줬음에도 디디추싱이 상장을 강행한 것을 ‘당국을 무시한 처사’로 여겨 괘씸하게 생각한다. CAC는 회원 100만명 이상의 자국 인터넷 기업이 미국 등 해외 증시에 상장하려면 반드시 국가안보 위해 여부에 대한 사전 심사를 의무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영리 추구형 사교육 업계의 ‘씨를 말리는’ 규제를 도입해 시장을 초토화했다.

사교육 기관들이 의무교육(초등·중학교) 과정의 학교 수업 과목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불허하고 기업공개(IPO) 금지로 자금 조달도 막았다. 외국인이 사교육 분야에 투자하는 것도 차단됐다.
가계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여 낮은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편이라지만 너무 극단적인 규제가 시행된 것이다. 중국교육학회의 2016년 자료에 따르면 중국 6~18세 학생의 75% 이상이 방과 후 개인교습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1200억달러(약 138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사교육 시장을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홍콩과 미국 등에 상장된 중국 사교육 분야 기업 주가는 투매 수준으로 하락했다.

다이 밍 화천자산관리 펀드매니저는 블룸버그 통신에 “과거 시장은 특정 산업을 대상으로 한 정상적 규제를 기대했지만 지금은 정부가 필요하다면 심지어 한 산업 전체나 일부 선도 기업을 죽이는 것도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기업 제물로 시진핑 주석 체제 공고화

중국은 올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어느 정도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린다는 ‘전면적 샤오캉 사회’ 목표를 달성했다고 주장했다. 다음 목표는 빈부격차 해소다. 빈부격차 심화는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 명분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산당이 직면한 최대 도전 중 하나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역설적으로 빈부격차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중국 정부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2017년 지니계수는 0.467이다. 숫자가 커질수록 안 좋은데 일반적으로 0.4를 넘으면 심각한 수준이다.

시 주석이 올해 들어 다 같이 잘 살자는 ‘공동 부유’를 핵심 정책 목표로 제시한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내년 가을 열릴 20차 당대회에서 장기집권을 무탈하게 이뤄내기 위해선 성장 우선주의인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에서 분배와 균형을 중시하는 마오쩌둥의 ‘공부론’(共富論)으로 좌회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민과 중산층의 민심을 확보하려면 중국 내부의 불평등을 줄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산당이 겨냥한 것이 민간 영역이다. 중국 국민의 소비 지출이 너무 커 불만으로 지적된 사교육, 부동산 등이 주요 타깃이 됐다.

공산당이 체제 안정과 국가안보 등을 위해 시장의 우려와 반발은 아랑곳하지 않는 행보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현재의 기업 옥죄기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당국은 시장 반응을 보기 위해 관영매체가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시장의 분위기를 확인하는 ‘간 보기’ 작업을 반복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사교육, 빅테크 업체 등에 대한 초강력 규제를 꺼내 들다 보니, 다른 업계도 ‘규제 몽둥이‘에 맞을 수 있다는 우려에 바짝 엎드리는 중이다.
실제 신화통신이 발행하는 경제지인 경제참고보가 지난 3일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중독을 ‘정신적 아편’으로 지적하며 당국의 강력한 규제를 주장하자 중국 게임 대장주 텐센트와 넷이즈 등의 주가가 폭락했다. 파문이 커지자 경제참고보는 ‘정신적 아편’이라는 표현을 들어낸 새 기사로 대체했다. 또 신화통신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장호르몬과 청소년의 전자담배 흡연 위험을 경고하는 기사를 내보내자 관련 주가는 폭락했다. 관영매체 등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기업과 주식 투자자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봤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다.
관영매체의 간 보기가 반복되자 기업들이 몰려 있는 광둥성 선전의 관영 매체 선전상보가 “언론이 여론으로 주식시장 흐름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 언론의 증시 교란 방지를 촉구한다”고 신화통신 등을 겨냥해 비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시장의 불안이 커지자 팡싱하이 중국 증권감독위원회(CSRC) 부위원장은 지난달 말 글로벌 은행·투자사 대표들과 비공식 회동에서 “최근 당국의 철퇴는 특정 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지 중국 시장을 글로벌 시장에서 디커플링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차이나 리스크’ 잠재우기에 나섰지만 시장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중국 당국이 산업을 통째로 날려 버릴 수 있는 막강한 규제의 칼을 휘두를 것이란 불안감이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증시에서 벌어진 일은 중국 관영매체 보도의 행간을 읽으려 하거나 시장이나 산업정책과 관련한 공식 지침과 시장의 루머를 구분하기 위해 애쓰는 투자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한다”며 “중국 당국은 주요 정책 발표 전에 여론을 시험하기 위해 관영매체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이들 보도는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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