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성 질환에 뇌심혈관질환 포함해야..노동자를 과로로 내몰지 마라 [릴레이 기고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무엇이 문제인가 ④]

이철갑 | 조선대 직업환경 의학과 교수 2021. 8. 16.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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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7월9일 중대재해법 시행령이 입법 예고되어 이해관계자 의견을 듣고 있다. 노사 모두 중대재해에 해당하는 직업성 질병의 종류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는 직업성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어떤 의무를 다해야만 하는지가 주요 관심사다.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질환은 일을 지나치게 많이 하여 피로가 누적되고, 결국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같은 질병으로 사망(과로사)하거나 평생 치명적인 장애가 남는 질병이다. 노동계는 시행령에 과로를 예방할 수 있는 뇌심혈관질환이 제외되어 중대재해법 제정 취지가 무력화되었다고 비판한다.

반면 경영계는 형사처벌은 대상과 범위가 명확해야 하므로 업무 외 개인적 요인이 작용하는 뇌심혈관질환 제외는 당연하다는 태도다. 정작 고용노동부는 시행령에 뇌심혈관질환이 포함되면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층, 가족력 보유자 등 질병 발생 가능성이 큰 계층에 대한 채용을 크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고, “처벌과 연계되는 만큼 자칫 뇌심혈관질환 등에 대한 업무상 재해 인정에 소극적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일면 타당한 지적들로 그럴 개연성이 있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 예비후보 윤석열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 “사람 잡는 대통령이 되시려는 것 같다”며 “시대착오적인 노동관”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비판에 대해 “짧은 기간 내에 집중적인 근로시간의 투입이 필요한 업종들이 있고, 근로자들에게도 필요하기 때문에 이 무리한 정책(주 52시간)이 일자리도 만들지 못한다”라고 해서 더 큰 문제가 되었다. 자본주의 역사는 곧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는 기초 상식조차 없지 않을 터인데, 고용 확대를 위해 근로기준법을 위반해 주 52시간 이상 과로해도 무방하며,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원한다 했기 때문이다.

노동부 통계상 2019년 직업성 뇌심혈관질환자는 1460명으로 과로사가 503명이다. 과로사의 10%가 30대 이하다. 뇌심혈관질환자의 21.8%는 40대, 35.5%는 50대이며, 60세 이상 고령은 35.3%로, 3분의 2가 50대 이하다. 이 숫자는 과로성 뇌심혈관질환으로 추정되는 산재 신청자 3077명 중 인정된 거다. 한참 일할 나이에 과로로 쓰러지면 개인의 불행일 뿐 아니라 가족이 해체되는 사례도 많다.

과로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윤석열 말처럼 ‘주 120시간씩’ 장시간 일하거나, ‘짧은 기간 내에 집중적’으로 높은 강도로 일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만약 하루 8시간 동안 일할 분량을 노동강도를 높여 4시간에 마치도록 하고, 노동시간마저 12시간으로 늘리면 사업주의 이윤은 3배가 된다. 하지만 노동시간 자체를 무작정 늘리기는 쉽지 않으므로, 노동강도를 높이는 유인책을 쓴다. 아예 플랫폼노동자처럼 ‘형식적인 사업주’로 만드는 것 같은 기발한 방법도 많다. 그리고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원한다고 하지만, 과로는 노동자가 어쩔 수 없이 한다. 과로를 선호하는 이는 ‘실질적으로 노동을 지배하는 사업주’이다.

과로가 뇌심혈관질환을 일으키는 기전은 이미 밝혀져 있다. 과로에 해당하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법률적 규범도 만들어져 있다. 혹자는 산재보험은 사업주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노동자를 보호하는 사회보장제도인데, 이를 근거로 사업주를 처벌하자는 게 합당한지 묻는다. 그러나 산재도 과로와 관련이 있어야 인정한다. 분명한 것은 주 52시간 이상 과로를 금지한 근로기준법만이라도 지켜진다면 고령이거나 기저질환이 있더라도 뇌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은 대폭 낮아진다. 따라서 직업성 질환에 뇌심혈관질환이 포함되어야 한다.

중대재해법의 사회적 공감대는 매년 500명 이상 발생하는 과로사와 같은 질환을 줄이려면 사업주의 과로 방지 의무를 분명히 하고, 노동자를 과로로 내몰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약속이다. 시행령의 직업성 질환 목록에서 뇌심혈관질환을 제외할 어떠한 이유도 정당하지 않다.

이철갑 | 조선대 직업환경 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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