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탈레반이 날 찾아 죽일 것" K팝 팬 아프간 소녀 절규
K팝을 사랑해 이역만리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혼자 공부해온 17세 아프가니스탄 소녀 A의 평온했던 일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수도 카불이 함락되면서다. 카불에 사는 평범한 학생인 A는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뒤 집에 갇혀 TV 뉴스만 지켜보며 공포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17일 중앙일보와 나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를 통해 A는 현장의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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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으면 죽일 것”…아프간 소녀 인터뷰
A는 카불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도 한류의 팬이라는 것 외에 더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탈레반이 나를 찾아 죽일 것”이라면서다. A는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자신의 사진과 그가 카불에 있는 증거를 메신저로 보냈다. 카불 시내에 울려 퍼지는 탈레반의 노래를 A의 방에서 녹음한 음성 파일도 보내줬다.
A에 따르면 현재 카불 시내에서는 탈레반이 트는 노래가 계속 울려 퍼지고 있고, 창문 가까이 가거나 바깥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의 공포 분위기라고 한다. A가 보낸 음성 파일은 현지시각으로 새벽에 녹음된 것이었다. A는 “탈레반이 그들만의 특별한 곡을 연주하고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카불 거의 모든 곳을 점령했다”며 “경찰차를 타고 모든 사람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A와 가족은 집에만 머물러 있다. 그게 더 안전하다고 판단해서다. A는 “여자는 홀로 움직일 수 없고 남자와 움직여야 하는데, 공항 등에 사람이 많이 몰리면서 다칠 수 있다고 (부모님이) 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탈레반을 믿지 않아 밖으로 안 나가고 있다”고도 했다. 외신을 통해 전해지는 카불 사진에 대부분 남자만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A는 전했다. “(여성에게) 무섭고 두려운 상황이지만, 다른 선택이 없다”면서다. “여자라면 절대 밖에 나갈 수 없는 환경”이라고 했다.
탈레반이 과거와 달리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이슬람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했지만 이를 믿는 카불 시민은 없다고 한다. A는 “탈레반이 주민 의견을 묻고 다녔지만, 우리 모두가 그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할 수 없었다”며 “누군가 탈레반에 만족한다고 말하면 99% 거짓말이다. 우리에게 아무 짓도 안 한다고 했지만, 그런 약속을 과거에도 너무 많이 어겨서 이번에도 지킬 거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A는 탈레반 정권에서 아프간 여성에 대한 인권 탄압은 예견된 수순으로 보는 듯했다. “우리는 반드시 히잡을 써야 하고 그것이 일상적인 히잡은 아닐 것이다. 탈레반은 여성들이 학교에 가고 밖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으나 여자에게는 남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고 A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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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잃고 우리는 죽어간다”
A는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으로 도피하면서 카불을 ‘버려진 도시’로 만든 데 대해서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떠난 것에 대해선 사람들이 오래도록 원했던 일이라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다”면서도 “대통령이 떠나고 우리 모두는 너무 슬펐다. 우리를 버리고 도망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와 대통령은 우리를 버렸고, 나라를 위해 싸우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절망감을 나타냈다.
국제사회의 도움과 관심을 A는 원했다. 그는 “우리는 희망을 잃었습니다. 왜 우리에게 비자를 주지 않는지 묻고 싶습니다. 조국을 떠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발 우리에게 가혹한 행동을 멈춰주세요”라고 했다.
비자가 없어 카불에 묶인 현재 상황을 비판한 그는 “아무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도움을 청해왔지만, 아무도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사람들이 우리가 말없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건 가슴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SNS 등 한국 온라인을 통해 A가 처한 것과 비슷한 아프간 여성들의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 여성 인권이 침해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이다. 아프간 상황을 전하는 외신 기사를 실시간으로 번역해주거나 아프간 내 여성 지도자 등의 안전을 기원하는 글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서울과 약 5100㎞ 떨어져 있는 A에게도 이런 마음이 닿는 듯했다. A는 공포스러운 상황에서도 감사 인사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손을 내밀어 내 마음의 말을 들어준 한국 국민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요. 제가 처한 상황을 물어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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