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4개꼴로 쏟아지는 여론조사..결과가 왜 이리 달라요?

장나래 2021. 8. 1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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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대선]여론조사 이면을 보다 ①

△전국지표조사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

다자대결 이재명 23%, 윤석열 19%, 이낙연 12%, 홍준표 5%, 최재형 3%

양자대결/이재명 41%> 윤석열 33%

△리얼미터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

다자대결 윤석열 26.3%, 이재명 25.9%, 이낙연 12.9%, 최재형 6.1%, 홍준표 5.4%

양자대결/윤석열 42.1%> 이재명 35.9%

지난 12일 같은 날 발표된 서로 다른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다. 1~2위 주자와 양자대결 모두 결과가 판이한데다 양자대결은 오차범위를 넘어서고도 우열이 엇갈린다. 전국지표조사(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는 전화면접에 무선 100%로 조사한 반면, 리얼미터는 자동응답시스템(ARS) 방식에 유선 10%를 포함하는 등 조사 방법론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조사 기간은 리얼미터가 지난 9~10일, 전국지표조사가 9~11일로 하루 차이뿐인데다 발표 날짜도 같다. 또 지난 15일 발표된 한국리서치의 여야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18.1%의 지지율로 오차범위를 벗어난 2위를 기록했지만, 다음날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는 30.6%로 1위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유권자들은 어떤 조사 결과를 믿어야 할까.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결과가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지난 7월 한달 동안 유권자들은 하루 1.4개꼴로 새로운 여론조사 결과를 접했다. 결과가 들쑥날쑥하다 보니 각 후보 캠프에서는 유리한 결과만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아전인수식 해석을 늘어놓기 일쑤다. 대선을 앞두고 다양한 정보값이 대량으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경쟁적으로 조사 결과를 줄줄이 쏟아내면서 여론조사가 정치적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부풀리고 왜곡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한 달간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등록된 대선 여론조사는 모두 44건이다. 지난 1월부터 6개월 동안은 155건의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유권자가 매일 0.8개꼴로 여론조사를 접했지만, 대선이 차츰 가까워지면서 점점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양만큼 조사의 정확성이란 ‘질’도 담보되는 걸까.

7월 조사 방식을 분류해봤더니 자동응답시스템을 활용한 여론조사 비율이 70.4%(31건)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반면 전화면접조사는 12건(27.3%)이었다. 인터넷조사는 1건(2.3%)이었다. 자동응답 방식의 조사 비율이 많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비용이 저렴해서다. 여론조사업계에서 정확한 수치는 공개하지 않지만 응답자 1000명 규모를 기준으로 하면 전화면접은 1000만~1500만원가량 들지만, 자동응답은 200만~400만원까지 단가를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여론조사는 언론사 입장에서 ‘가성비’ 높은 기사 아이템이다. 지난달 발표된 조사 가운데 언론사가 의뢰한 것은 79.5%(35건)에 육박한다. 여론조사는 기사 조회수를 높여주는 구실을 하고, 여론조사기관은 언론 보도를 통해 업체 홍보 효과를 노릴 수 있어 경쟁적으로 언론사 의뢰 조사에 뛰어든다. 현재 여심위에 등록된 여론조사 업체는 79개에 이른다. 최근엔 전화면접 장비나 자동응답 시스템을 ‘소유’하지 않고 ‘임차’가 가능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치열해진 경쟁 속에 조사업체는 대부분 원가에도 미치지 않는 금액으로 여론조사를 계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티비에스>(TBS) 누리집에 공개된 올해 정례 여론조사 용역 계약 내용을 보면, 한국사회여론연구소와 5141만원에 계약한 것으로 나와 있다. 자동응답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조사 1개당 111만원(총 46회)에 불과하다.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업체 관계자는 “티비에스는 그나마 서울시 재단이기 때문에 비용을 많이 지불하는 편이다. 영세 업체가 많다 보니 업체 홍보 효과가 크다는 이유로 아예 무료로 조사를 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심화된 경쟁의 여파로 ‘조사 가격 낮추기’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조사를 하다 보니, 자동응답 방식뿐 아니라 전화번호를 얻는 방식에서도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특정 지역에 한정된 여론조사를 제외하고 자동응답 방식으로 이뤄진 26건의 여론조사 가운데 임의전화걸기 방식(RDD) 조사는 76.9%(20건)에 달했다. 통신사에서 가상번호를 구매하는 방식의 ‘안심번호 조사’는 단 6건에 불과했다. 안심번호는 연령·거주지·성별 등 인구 규모에 비례한 정보를 받기 때문에 정확도가 높은 편이지만 비싸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안심번호는 올해 기준 한건당 308원(사용기한 20일 기준)으로 책정되어 있다. 보통 조사에 이틀 정도 소요되므로, 한건당 33원(부가세 포함)의 비용이 든다. 하지만 응답자 규모의 20~50배의 전화번호를 사야 하므로 최소 규모(1000명)이더라도 100만원가량이 추가로 든다. 안심번호를 이용해 조사를 진행하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이강윤 소장은 “한 달에만 400만~500만원의 추가 비용이 들지만, 우리나라 인구 분포와 비슷하게 맞춰 조사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방법론을 연구하는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무작정 랜덤하게 전화를 돌리는 아르디디 방식이 가상번호보다 효율성도 떨어지고, 덜 정확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짚었다.

이렇게 여론조사가 매일같이 쏟아지는 것을 두고 다양한 정보가 거의 날마다 제공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는 긍정 평가도 있지만, 과도한 ‘밴드 왜건’(대세를 따라가는 현상) 효과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엇갈린다. 특히 언론사 의뢰 조사에서 이른바 ‘잘 팔리는 기사’를 위해 특정 주자 간의 양자대결만 의뢰하거나 현직 공직자 등 정치에 입문하지 않은 인사들까지 대선 후보군에 넣는 일이 벌어진다. 실제로 지난달 조사로만 봐도 언론사 의뢰로 이뤄진 조사에서 양자대결 의뢰가 68%(24건)로 높게 나타났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대선이 아직 7개월가량 남아 있는데 단지 지금 다른 후보들에 비해서 좀 앞서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부만 양자대결을 붙일 경우 그들의 정보만 더 많이 제공되고, 선거 구도에 대한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고 짚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최소한 선거 여론조사는 본인이 출마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사람에 대해 한정해야 한다”며 “단발적인 조사는 위험하기 때문에, 단순 수치보다는 정기적으로 조사를 진행하는 기관의 지지율 추이가 어떤지 흐름을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 이번 보도를 계기로 <한겨레>도 지금까지의 대선 여론조사 기사에 문제가 없었는지 점검하고 더 나은 보도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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