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의 금융CAST]현실이 돼가는 일본 역전

김유성 2021. 8. 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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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내 혐한 여론, 한국의 위상↑ 무관치 않아
日에 의존적이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한국 자신감↑
아일랜드의 영국 역전이 선례, 지금은 격차 커져
한국이 亞 다른 나라에 역전당한다면?..고민해야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견원지간. 개와 원숭이의 관계라고 읊습니다. 사이가 안 좋은 원수지간을 동물 간의 관계로 비유할 때 쓰입니다. 비단 사람 뿐만 아니라 집단, 더 나아가 나라 간에도 견원지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한국과 일본은 어려울 때 서로 돕곤 합니다. 경쟁 관계이면서도 긴밀한 협력관계이기도 합니다. 이웃 나라이니까요.)

한국과 일본 간의 관계는 어떨까요? 이웃 나라끼리 사이가 좋은 경우가 드물다고는 하지만 요새 들어서는 유독 악화일로인 것 같습니다. 가까이로는 도쿄올림픽에서 멀리로는 일본의 침략전쟁과 관련된 일로 감정을 붉히곤 하고 있습니다.

성화 봉송 코스를 소개하는 일본 지도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해 논란을 빚었던 2020년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공식 사이트에서 독도를 삭제한 것처럼 보이지만 확대하면 그대로 남아 있다고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지난 6월 13일 공개한 사진. 오른쪽은 사진을 확대한 모습. (사진=서경덕 교수 제공)
이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일본내 ‘혐한’ 세력입니다. 단순히 일본을 싫어하는 ‘반일’과 달리 혐한은 인종주의적 편견까지 섞인 감정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2010년대 이르러 역사 논쟁이 커지면서 이들의 활동도 활발해졌습니다.

그들은 한국이 일본에 근대화의 빚을 졌다고 주장하곤 합니다. ‘이전까지 가만히 있다가 왜 새삼 역사 논쟁을 일으키냐’고까지 주장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이면 배워야 한다’라는 앞 세대와 달리 당당히 일본과 비교하고 ‘어느 면에서 우리가 더 났다’고까지 합니다. 반성하지 않는 그들을 규탄합니다.

2010년대 이후 새삼 불거진 역사 논쟁. 그리고 일본내 혐한. 사회·문화적인 시각을 배제하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더블린의 넬슨 동상과 서울의 총독부 건물

유럽에서 우리나라처럼 강대국에 둘러 싸여 있거나, 수백년간 ‘당하고 살았던’ 나라들은 수두룩합니다. 대표적으로 폴란드가 꼽힙니다. 대서양을 접하고 있는 나라 중 아일랜드도 이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가면 높다란 탑(더 스파이어, The Spire)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2003년에 건립된 탑입니다. 2003년은 아일랜드의 1인당 GDP가 영국을 역전한 해이기도 합니다. 영국에 늘 무시받고, 지배받기까지 했던 아일랜드가 ‘영국을 이겼다’라는 자신감의 상징이란 얘기도 있습니다.

더 스파이어 (사진 : 위키피디아)
원래 이 탑의 자리에는 대영제국 초입에 있던 전쟁영웅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서 있었습니다.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를 몰락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잉글랜드의 영웅의 상징물이 아일랜드 중심부에 서 있었던 것이죠.

아일랜드 사람들 입장에서는 치욕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동상은 1966년 테러 테러로 폭파되게 됩니다. 이런 점을 봤을 때 더 스파이어의 상징성이 영국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1966년 폭탄 테러로 해체된 넬슨 제독의 동상 (사진 : 위키피디아)
한국도 비슷합니다. 1996년을 생각하면 됩니다. 조선 식민지배의 중심 조선총독부 건물이 해체됐고 그 자리에 경복궁이 복원됐습니다. 나름 역사의 치욕을 걷어내고 우리의 자부심을 올려 놓겠다라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죠.

1966년의 아일랜드가 그랬듯, 1996년의 한국도 강력한 이웃 나라 경제권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대일 무역적자 뿐만 아니라 금융과 자본 등에 있어서 일본 자본의 입김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1990년대 들어 일본 경제가 휘청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세계경제 2위 대국이었고, 엔화는 달러 다음으로 선호되는 국제 화폐였습니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 (사진 = 위키피디아)
한국도 일본에 상당한 자본 의존을 했습니다. 차관도 상당했고요. 민간 부문에서도 저리의 일본 자본이 들어와 국내 대부업계 주요 세력으로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손을 벌려야 했던 나라가 미국 아니면 일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게는 얄밉게도, 우리가 절대절명의 위기 때, 일본은 그 손을 놓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직전을 들 수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냈던 김인호 씨의 회고록을 보면 IMF 구제금융을 피하기 위한 대안으로 일본 중앙은행과의 통화스와프를 요구하고, 일본 금융사들이 한국에서 자금을 회수하지 않도록 요청하자는 안이 나옵니다.

한국은행은 일본은행(일본의 중앙은행) 총재에게 직접 긴급자금지원 협조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합니다. 결국 당시 한국은행 실무진에서는 IMF 구제금융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김인호 전 경제수석의 회고록 중 50페이지 일부
일본도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이후 경제가 가라앉고 있던 때라 섣불리 한국의 외환위기에 물리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한국 경제나 금융이 고속 성장을 하면서 상당 부분 일본에 의존했고, 많은 일본계 자금이 한국에서 투자활동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일본이 손을 놓아버리자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던 게, 어쩌면 당시 한국 경제의 현실이었을지 모릅니다.

이런 경향은 각 개인들에게도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던 세대가 보기에 1960년대 전후 일본은 부흥과 영광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들 세대를 가르쳤던 그 앞선 세대도 일제시대 세대다보니 ‘이래서 일본한테 배워야 한다, 이래서 한국(조선)은 안된다’식의 말을 되뇌었을지도 모릅니다.

1964년 도쿄올림픽 포스터
2019년 일본이 나름의 무역제재를 가한다면서 타격을 주려고 했던 것도, 과거 수십년의 기억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한국은 일본 경제에 예속돼 있고, 우리가 압박하면 굴복할 것이다’라는 생각인 것이죠.

한국의 서울에 ‘더 스파이어’가 만들어질 날이 올까

1997년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혹독한 외환위기와 후유증을 겪었지만 한국은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일본은 침체를 겪어왔습니다.

50년은 날 것 같았던 격차는 점점 줄었습니다. 국민 소득은 물론 구매력 부분에서도 한국은 일본에 뒤처지지 않습니다. 그 나라의 부도 가능성을 계량화한 크레딧디폴트스왑(CDS)프리미엄도 한국과 일본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해외 유명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상황을 더 높게 치기도 합니다.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평가에서도 한국이 일본을 앞섰다는 것은 이미 구문(舊文)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7년 구매력평가지수(PPP) 기준 한국은 일본을 앞섰고 2020년까지 이 추세가 이어져 왔습니다.

아직 1인당 GDP는 일본이 앞서 있고 전체 GDP도 일본이 월등히 한국을 앞서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마 인구와 경제 규모면으로 봤을 때 한국이 일본을 앞설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1인당 GDP와 삶의 질, 국격 면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앞설 날도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드러난 양국 간 사회 시스템만 놓고 봤을 때 한국이 더 나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활로를 찾기 어려운 일본, 그래도 꾸준히 성장한 한국.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듯이, 일본내 혐한은 이 같은 자신감의 상실일 것이라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덧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한국과 거기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들은 예전 부모나 할아버지 세대처럼 일본에 주눅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일본도 이제는 한국의 성과에 대해서 인정을 해야겠지요.

물론 일본보다도 더 심각한 저출산 상황, 남북 간 대치 상황 등은 한국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일본 역전의 순간에서 주저 앉을 수도 있습니다. 한반도 내부의 쌓인 문제 때문이지요.

(물론 이런 게 극복된다면 한국은 더 큰 성장을 할 것입니다. 북한과의 긴장관계가 풀어지면 우리의 경제영토가 더 넓어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고.진짜 일본역전의 계기가 되는 것이지요.)

역으로우리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봅시다

생각해볼 게 있습니다. 우리도 일본을 쫓고 있는 것처럼 다른 나라도 우리를 뒤를 쫓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나라 중 하나가 베트남이 될 수 있습니다.

베트남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고 주요 생산기지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요청으로 한국군이 파병됐던 곳이 또 베트남이기도 합니다. 한국군이 수많은 전공을 올렸지만, 의도치 않은 실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인도네시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들도 있습니다. 수많은 아시아 각국에서 한국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건너와 일하기도 했습니다. 이 중에는 한국에 대해 고마워하는 이들도 있지만, 한국에 반감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일본이 20세기 초중반에 아시아 나라들에 자행했던 전쟁범죄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새발의 피’에 비견하기도 힘들죠. 그렇다고 해도 그들의 후손 중 누군가는 우리의 실수를 인정하라며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역지사지는 내가 요구할 수도 있지만, 내가 요구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일본 역전 이전에 우리가 생각해야할 부분입니다.

김유성 (kys4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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