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의 돌발] 현상금 걸고 기자 사냥 나선 '신종 친여닷컴'

박은주 에디터 2021. 8. 3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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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금 걸고 '반문' 기사작성한 기자 '사냥' 나선 진보세력
혐오부추겨 언론 말살, 정부여당은 왜 입다무나
만일 '대깨문' 신상 폭로하는 사이트 생긴다면? 이것도 '민주행태' 아니다

문재인과 민주당, 조국씨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현상금을 걸고 그들 개인정보와 비리를 캔다는 사이트가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들어 친여인물, 정부여당에 불리한 기사를 썼거나, ‘불손한 태도’를 보인 기자들의 얼굴과 기사 등을 나열해서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가 있었다. 이 모델에 ‘현상금’을 더한 것이 ‘마이기레기닷컴’ 모델이다. 제보는 A, B, C등급으로 나뉜다. ‘A급제보’는 각종 비리,불법, 탈법, 위법 사항, 학교 폭력 등으로 30만원, ‘B급제보’는 경범죄, 방역수칙 위반 등으로 20만원, ‘C급제보’는 현재 사진, 과거 정보, 잡다한 제반 정보 등으로 10만원이다. 타깃이 된 1~5위 기자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10만~30만원의 현상금을 준다는 얘기다. 운영진은 “일단 현상금은 운영진 사비로 충당 되지만 언젠가 후원을 받아 현상금을 많이 올려서 좀더 고급정보가 들어올 수 있게 추진해보려 한다”고 했다. 사이트에 들어가면 후배들 얼굴이 여럿 보인다. 이 사이트는 이미 초상권 침해, 개인정보위반, 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다.

마이기레기닷컴 캡쳐.

기사가 아닌 ‘기자’를 공격하는 행태는 진보인사의 ‘발명품’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조국씨는 불편한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을 캡쳐해 페이스북에 올렸다. 지지자들은 기자의 이메일, 휴대전화번호를 통해 악담, 저주, 협박을 쏟아냈다. 음식컬럼니스트 황교익씨도 비슷하게 행동했다. 팬이 많고 영향력이 큰 인물들이 이런 행태를 하자, 유행으로 번졌다. 우파를 자처하는 이들도 유튜브를 통해 기사 대신 ‘기자’를 비판하는 일에 합류했다. 도처에서 비슷한 행태가 벌어진다.

‘기자 사냥’은 어느 정도 ‘타격감’이 있을 것이다. 문제의 사이트를 보면, ‘모욕’이라는 말도 부족하다. 자칫 소송으로도 비화할 취재를 위해 이런 험한 꼴을 감수할 이들이 얼마나 될까 걱정이다. 물론 이 글을 쓰는 기자를 포함, 기자 한 명 한 명은 때로 혐오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기자가 만드는 보도, 언론, 자유 언론은 민주주의의 토대라는 걸 보통 사람은 다 안다.

끔찍한 것은 기자 목에 현상금을 거는 행위다. 혐오를 유발하고, 뉴스 소비자를 ‘밀고자’로 만든다. 그렇게 정보를 수집해서 ‘정의’를 실현한다는 구상은 그들이 그토록 저주한다는 군사정권의 언론 탄압보다 사악하다.

2020년 1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함께 조국수호 검찰개혁' 주최 시민참여 촛불문화제./장련성 기자

이런 기치를 내건 사이트가 만들어졌다고 상상해보자. <문빠조빠닷컴:비리 있는 ‘문빠’ ‘조빠’를 기자 털 듯이 털어, 그들 입에서 ‘문빠질 못해먹겠네’ ‘조빠질 못해먹겠네’라는 말이 나오게끔 만들어 한국사회를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만들어보자.>(이 문장은 마이기레기닷컴의 모토를 변형한 것이다) ‘조국 수호’ 집회에 나가 물티슈로 자동차를 닦아 주는 교사의 얼굴 사진을 찍고, 그의 재직학교와 가족 얼굴,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고, 자기 동창과 식당에서 밥먹는 사진을 찍어 올리면 ‘현장검증’해서 경찰에 고발한다. 명문대 나와 대기업과 거래하면서 페이스북에서 재벌해체, 재벌놈들 외치는 ‘이중인격자’들도 색출한다. 기업 대표로 언론에 소개되니 반(半)공인이라 하겠다. 그가 대기업이나 지자체에서 받은 사업비를 공개하고, ‘현상금’을 걸고 그 회사 직원으로부터 사장 비리를 수집하는 거다. 야권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는 아예 ‘대깨문이력닷컴’을 만든다. 정치적으로 반대편인 자들의 사회적 평판을 한번에 날려버리고, 잘 하면 사법처리까지 가는 거다. 현상금은 덤이다.

‘기자 사냥’이 아무리 거세진대도, 이런 사이트를 찬성하는 기자는 없을 것이다. 찬성한다면 기자 자격이 없다. 민주주의와 법치를 부정하고, 나라와 사람을 찢어발리는 행위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여당이 ‘언론징벌법’ 통과시키려는 시점에 딱 맞춰서 이런 사이트가 나왔다. 기분이 어떠신가. 혹 지원군처럼 든든하게 느껴지시나. 그래서 진보세력 일동은 아예 입을 다물고 계시는 건가. 정말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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